금남정맥수필

고운산정 금남정맥 2구간 (피암목재~ 백령고개)

호젓한오솔길 2017. 7. 21. 20:34

 

 

고운산정 금남정맥 2구간 (피암목재~ 백령고개)



                                                        솔길 남현태



북극한파가 블로킹현상이라며 한반도에 유입되어 유난히 극성을 부리던 동장군이 영원히 봄은 없을 듯이 몸과 마음을 꽁꽁 얼려놓더니, 때가 되면 계절은 어김없이 돌아와 어느덧 대동강물이 풀린다는 우수를 금요일에 넘기게 된다. 어느 이름 없는 산골짜기에 야생화라도 피우려는 듯 설을 쉰 후로는 그리 추운 날이 없이 대체로 푸근하게 이어지는 기분이다.

 

이월 셋째 주는 지난 달에 이어 고운산정 산악회의 금남, 금강정맥 2구간 산행에 동참하기로 하였는데, 요즘처럼 기온의 변화가 심한 환절기에는 옷차림에 신경이 쓰인다. 최근 날씨가 포근한 것 같아 이번 산행부터 등산복을 얇은 옷으로 입고 가려다가 갑자기 일요일 날씨가 추워지고, 산행 예정지인 전북 진안군의 최저 기온이 포항 보다 5도 낮은 영하 6도가 된다는 예보가 있어 다시 겨울 옷으로 준비한다.

 

이번 주에 산행하게 될 금남정맥 2구간은 전북 진안군의 '피암목재'에서 충남 금산군의 '백령고개'까지 약 20Km 의 산행 거리에 그리 이름을 드러낸 명산이나 봉우리는 없지만, 장군봉과 백암산의 바위 벼랑 길이 조금 위험하고, 늘어선 칠팔백 고지들을 수 없이 오르내리는 고도 차가 심하여 다리를 피곤하게 하는 구간이라고 한다.

 

토요일 저녁 주말 드라마가 끝나고 밤 11시경에 휴대폰 알람을 새벽 3시에 맞추어 두고 잠자리에 들었는데, 깜빡 한숨 자고 난 잠결에 부엌에서 마눌이 도시락 준비를 하는 소리에 잠을 깨어 배낭을 꾸리고 이른 아침을 먹는다. 아침을 먹고 있는데, 마눌이 태워다 주려고 옷을 입고 나오기에 지난 번처럼 집 근처에서 제무국장님 차로 카풀하여 간다고 하니, 말을 해야 알지 한다. 부부 간에 그만큼 대화가 부족했다는 생각을 해본다.

 

새벽 3시 55분에 약속 장소로 나가니 제무국장님 차가 기다리고 있다. 네 사람이 탑승하고 연하재 주차장에 도착하였는데, 제무국장님은 간밤에 집안에 상을 당하였다는 연락을 받아 산행을 못하게 되었으면서도 북구에 사는 회원들을 태워주기로 한 약속 때문에 연하재까지 왔다가 준비한 하산주를 내려놓고 버스가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대원들에게 잘 다녀오라는 인사를 하고 돌아가는 배려에 그저 감사 할 따름이다.

 

도착하는 버스에 오르니, 오늘 산행에 참여한 대원들이 이런저런 사유로 여러 명이 빠지고 예상 보다 적은 18명이라고 한다. 지난 달에 이어 이번 달에도 과감하게 멀미 약을 먹지 않고 출발했더니, 가는 도중에 휴게소를 두 번 들리며 고속도로를 달리는 도중에는 별로 불편함을 몰랐는데, 고속도로에서 내려 피암목재로 향하는 꼬불꼬불한 시골길에서 갑자기 온 몸에 진땀이 흐르면서 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한다.

 

다행이 별 탈없이 아침 8시가 조금 지난 시간에 넓은 주차장이 텅 비어 있는 피암목재에 도착하니, 예상 보다 날씨가 그리 차갑지 않아 겉 옷을 벗어 배낭에 넣고 겨울 티 하나만 입는다. GPS 트렉을 돌리고 행장을 챙겨 모두 모여 잘려나간 피암목재를 배경으로 잠시 기념 사진을 찍은 후 울렁거리는 속을 달래가며 차가운 겨울 나무 사이로 비탈길을 오른다.

 

가파른 오르막길 잠시 치고 오르니 금남정맥 675.5봉임을 알리는 준.희님의 팻말이 달린 봉우리를 지난다. 여느 산과 같은 능선을 따라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겨울 낙엽이 바스락거리는 길은 잠시 가파른 숨을 토하게 하더니, 넓은 헬기장이 있는 787봉에 오른다. 오늘 산행길 중에 세 번째로 높은 봉우리이지만 아무런 표지석이 없고 트렉상으로는 '성봉'이라고 표기된 곳이다. 헬기장을 지나 산죽길을 잠시 헤집으니 산정을 두른 듯한 무너진 옛 산성의 흔적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산성이 있어서 '성봉'이라고 부르는가 보다.

 

잔설이 남은 산성터를 내려서니 미끄러운 산죽길이 이어지고, 눈 앞에 장군봉과 이어지는 능선 따라 멀리 우측에 태평 봉수대가 있는 오늘의 최고봉인 성재봉이 보인다. 정면으로 가마득히 하늘 맞닿은 곳에는 다음 달에 찾아갈 대둔산 마루금이 아련하게 펼쳐진다.

 

전기 없는 마을 '밤목리'로 가는 길, 삼거리에 종이로 만들어 비닐커버를 한 전주덕진소방서 119구조대 이정표가 어설프기만 하다. 장군봉을 바라보며 잠시 낮은 곳으로 내려갔다가 기념 사진을 찍으며 바위 비탈을 따라 장군봉 오르는 길에 돌아본 풍경이 지난 달 1차 구간 산행 때 눈보라 속으로 걸어오느라 아무것도 보지 못했던 연석산과 운장산의 아름다운 마루금 모습이 추억처럼 펼쳐진다.

 

바위 웅덩이에 얼음이 얼어 있는 위태로운 전망 바위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니, 방금 걸어온 부드러운 성봉 능선과 피암목재 건너 지난 달에 걸어온 운장산은 추억이 되고, 연석산에서 이어지는 아기자기한 골짜기와 능선들이 정겹게 어우러진다. 장군봉 오르는 좌측 완주군 쪽으로 펼쳐지는 올망졸망한 산봉우리들 풍경과 우측으로 진안군 주천면 대불리 마을이 가깝게 느껴진다. 돌아 본 연석산과 겹겹이 이어지는 능선의 잔설 위에 봄 기운이 꿈틀대는 듯하다.

 

좌측 벼랑이 아찔하고 아름다운 장군봉 암릉은 걸음이 멈추는 곳 마다 시원한 전망바위 인데, 전북 완주군 쪽으로 올망졸망한 산들이 겹겹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멀리 전주시와 익산시가 보이는 전망 바위에서 흑표대장님 덕분에 어설픈 폼으로 독사진 한 장 찍혀보고, 벼랑 끝 바위에 올라서니 그냥 오금이 저린다.

 

장군봉으로 이어지는 꼰드랍은 바위능선 '말잔등바위'지나 정상석이 있는 장군봉에 도착하여, 기념사진 찍어주고, 함께 찍혀본다. 장군봉 전망바위에서 바라본 이어진 암릉들 저기 가다가 좌측으로 암릉 아래 어디쯤 멋진 '해골바위'가 있다고 하여, 오늘 처음 온 사람들은 다리 품을 팔아 들렀다 가기로 한다.

 

금남정맥을 함께 걷고 있는 대간 동지 다섯 명(호젓한오솔길, 민트님, 알파인님, 산이좋아님, 당산님)이 모여 기념 사진을 찍으면서, 오늘부터 팀산행을 하기로 해놓고 3명은 자꾸 앞에 내뺀다고 꾸지람을 듣는다.  장군봉 정상에 모여 잠시 기다리며 당산님이 가지고 온 꿀막걸리 골고루 한 잔씩 나누어 마시고, 장군봉을 내려서는 바위 빙판길 장난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그러나 든든한 로프팬스와 체크플레이트 발판이 만들어져 있어 생각 보다 그렇게 위험하지는 않아 보인다.

 

돌아본 오늘 최고의 난코스 바위벼랑 길, 곧 무너져 내릴 듯 위태롭게 붙어 있는 장군봉의 바위들을 발보며, 아름다운 바위 길은 이어진다. 가야 할 바위 능선은 양지쪽이라 겨울 볕에 아지랑이 피어 오르는 듯한데, 다시 로프가 매어진 바위벼랑 길 내려서고 잠시 고도를 낮추었다가 다시 올라서면 운장산, 성봉, 장군봉 걸어온 봉우리와 능선들이 시원스럽게 펼쳐진다.

 

좌측으로 트인 시원한 조망 바라보며, 다시 잔설이 남아 미끄러운 길 내려서고 잠시 포닥한 낙엽 밟는 오르막 위에 봉우리에서 좌측으로 400미터 거리에 해골바위가 있다는 어설픈 이정표가 붙어있다. 해골바위로 가는 길은 로프를 타는 바위벼랑 길이고 금남정맥 길이 아니므로 희망자만 다녀오라고 한다.

 

언제 이 곳에 또 오랴 싶어 배낭을 풀어놓고 카메라만 챙겨 들고 내려가는 바람에 배낭 속에 핸드폰을 그냥 두고 가서 GPS 기록이 누락된다. '해골바위'로 내려가는 바위 벼랑 길은 로프 시설이 잘 되어있고, 커다란 바위에 구멍이 쑹쑹 뚫린 해골바위는 바위 구멍에 사람이 들어갈 수 있다. 해골바위 아래서 기념사진 찍어주고, 찍혀보고 다시 바위 벼랑길 따라 삼거리 봉우리에 돌아와서 낙엽 위에 잔설 밟으며 작은 봉우리들 오르락 내리락 하는 정겨운 금남 길은 이어진다.

 

건너 산봉우리 바라보며 고갯길 큰싸리재를 건너, 만만치 않는 가파른 낙엽 길 치고 오르니 금강정맥 분기점, 금만봉에 도착한다. 금만봉(금남, 금강정맥 분기점: 755m)은 큰싸리재와 작은싸리재 사이에 있으며 금강과 만경강의 분수령임을 착안해서 작명한 것이라고 한다.

 

금남정맥을 끝내고 다시 금강정맥 종주를 위해 이 곳에 올라와야 하는 인연이 깊은 금만봉에서 점심을 먹고 가기로 한다. 산죽이 둘러 쌓인 포근한 낙엽 위의 삼거리에서 점심을 먹고 가기로 하고 도시락을 펼친다. 둘러 앉아 점심을 먹고 건너 태평봉수대가 있는 성재봉을 바라보며, 작은싸리재로 내려서는 길은 잔설이 남은 가파른 낙엽 내리막 길 다음 금강정맥 산행시 접속 구간으로 이 길을 다시 올라와야 한다.

 

임도가 있는 작은싸리재(579m)는 전북 진안군 주천면 대불리와 완주군 운천면 고당리를 연결하는 고개로 싸리나무가 많아 유래되었으며, 일반적으로 싸리재 하면 큰싸리재가 아닌 이곳 작은싸리재를 지칭한다. 작은싸리재에서 성재봉 오르는 길은 빼곡한 참나무 사이로 가파른 길이 이어지고, 성재봉 삼거리에 올라서서 잠시 170m 거리에 있는 태평봉수대로 갔다가 다시 돌아와야 하는 길은 잔설이 제법 남아 있다.

 

태평봉수대는 전북 진안군 주천면 대불리와 무능리, 완주군 운주면 고당리의 접경인 성제봉(830m)에 있는 삼국시대에 축조한 것으로 추정되며, 조선 중기 선조 때 보수하여 네모난 축대가 거의 완전한 상태로 남아 있다. 전라북도 기념물 제36호로 지정되었으며, 태평산성과 전주 감영에 신호를 보내기 위해 축조된 봉수대로 추정된다.

 

봉수대 위에서 바라보니 방금 건너온 금만봉과 다음에 걸어갈 금강정맥 마루금이 펼쳐지고, 북서쪽으로 멀리 다음 달에 걸을 대둔산 모습이 아련하기만 하다. 꼬불꼬불 이어진 오늘 걸어갈 능선 길은 마지막의 백암산이 보일 듯 말듯 한 첩첩 산중인 봉수대 위에서 사방을 둘러보고 돌계단을 내려선다.

 

이어지는 능선길 좌측으로 임도가 있는 골짜기 건너 다음에 가야 할 왕사봉과 금강정맥 능선이 펼쳐진다. 가파른 내리막 길은 낙엽 위에 잔설이 남아 미끄럽고, 오르막은 폭신한 낙엽이 미끄럽게 느껴진다. 봉우리 올라서면 다시 미끄러운 빙판길 내려서고, 목쟁이 건너 다시 낙엽 오르막 길은 칠백 전후의 고지들로 이어진다.

 

좌측으로 트인 시원한 조망과 빼곡한 산죽길 지나 낙엽 길이 고도를 높이는가 싶더니, 수목 우거진 볼록한 봉우리에 올라선다. 정상석이 없는 봉우리에 도착하여 신선봉(790.0m)이라고 적힌 비닐코팅 된 종이 표시판을 들고 사진을 찍으니, 만약 종이가 바람에 건너 산으로 날려 간다면 거기가 신선봉이 되지 않을까 싶다!

 

선야봉으로 갈라지는 포근한 삼거리 봉우리에 도착하니, 도 상으로 전라북도와 충청남도를 가르는 도경계에 위치한 무명봉인데, 금남정맥 왕사봉(713.5m)이란 표지판이 달려 있어 조금 전 금만봉에서 갈라진 금강정맥에 있는 왕사봉(718m)과는 위치가 달라 해깔리게 한다.


함께 가던 대원들을 먼저 보내고 어제 과부하 운동으로 인한 컨디션 난조로 뒤에 처진 대간 동지 일행이 오기를 기다렸다가 같이 가기로 한다. 전망 바위에서 바라본 이어지는 능선 길 멀리 마지막 백암산 모습이 보인다. 소나무 아래서 간식을 먹으며 잠시 쉬고 나서, 낙엽길 봉우리 마다 올라서면 격전을 치르던 반공호의 흔적들이 남아 있고, 돌아 보니 걸어온 능선 길이 석양에 아련하다. 작은 안내판과 산님들의 리본이 주렁주렁 달린 백암산(654m) 정상에 올라선다.

 

백암산(654m)은 충남 금산군 남이면에 있는 산으로 6.25전쟁 때 치열한 싸움이 있었던 600고지로 유명한 산이다. 대둔산에서 운장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에 있는 지형적 여건으로 빨치산이 이곳을 중요 요새로 삼았고, 군경 합동작전의 토벌 과정에서 양편 모두 2,500명 이상의 군인이 희생되었다.

 

백암산 정상에서 기념 사진을 찍고, 바위 능선을 따라 바위 봉우리에 노송과 돌탑이 있는 독수리봉에 도착하니, 멀리 백령고개에 주차된 우리 버스가 보인다. 다시 바위와 낙엽길 따라 소나무 몇 그루 서 있는 서암산(610m) 바로 전에 우측으로 하산길은 기울어진다. 기념 사진을 찍고 잠시 내려가다 보니, 맥주를 짊어지고 마중을 올라오는 흑표대장님을 만나 맥주 한 잔씩 마시고 미나리 안주를 먹으며 기념사진을 찍는다.

 

임도가 있는 고개를 건너 오르막길 오르니 산성이 있는 작은 봉우리에 올라서고, 이 곳이 '백령산성'이라고 한다.

금산 백령성은 충남 금산군 남이면 역평리에 있는 산성으로 충남기념물 제38호로 지정되었다. 백제시대에 견휜이 남이면 대양리에 경양현을 설치하고 금산의 서남방면을 방어하기 위해 수축한 성으로, 6.25전쟁 때의 백암산의 육백고지 전승탑 뒷산에 있으며, 축조 당시에는 4Km에 달하는 테뫼식 석축산성이었으나 현재는 서벽, 남벽, 동벽 등 400m만이 남아 있다.


백령성지 표지석을 지나고, 육백고지 전승탑' 앞에 내려선다. 육백고지 전승탑은 충남 금산군 남이면 역평리 백암산 기슭 백령성 아래 6.25 때 전적을 기리고, 희생당한 민, 경, 군 영령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세운 기념탑이다. 백암산은 한국전쟁 이후 5년여에 걸쳐 빨치산과 군, 경 합동 토벌대와의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곳으로 당시 '600고지'라고 불렀던 곳으로 양쪽을 합쳐 모두 2,563명이 목숨을 잃었다.

 

버스가 기다리는 백령고개에 도착하여, 기념사진을 찍으면서 오늘 금남정맥 2구간 산행 길은 종료된다. 약 22Km의 거리에 9시간 40분이나 소요된 산행을 마치고 백령고개에 도착하니, 왕사봉에서 일행을 기다리는 동안 앞서간 대원들이 몇 명 하산하여 있다. 배낭에 핸드폰을 꺼내니, 해골바위로 갈 때 폰을 배낭에 두고 몸만 갔다 온 관계로 GPS 트렉이 엉터리로 되어버렸어 함께 걸은 알파인님의 트렉을 다운 받아 올리기로 한다.

 

배낭에 남은 식수로 간단하게 고양이 세수를 하고 버스에서 맥주 몇 잔 마시면서 후미를 기다리는데, 후미 대장님이 다리에 쥐가 나서 산행이 많이 지체되고 있다고 한다. 모두 걱정하며 기다리는데 날이 어두워질 쯤에 하산을 완료하여, 저녁을 먹을 곳을 찾아보지만 시간이 너무 늦어서, 금강 휴게소에 전화로 예약을 하고 오는 길에 들러 매운탕과 돌이뱅뱅 안주로 저녁을 먹으면서 하산주를 나눈다.

 

저녁을 먹은 금강 휴게소를 출발하여 포항으로 오는 도중에 대구 와촌휴게소에 들려서 마눌에게 마중을 나오라고 전화하고, 밤 11시경에 아침에 탑승한 연하재에 도착하여, 마중 나온 마눌의 차로 아침에 같이 타고 온 회원님들을 태워 드리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고운산정과 함께한 금남정맥 2구간 산행 길을 성공리에 갈무리 해본다.

(2016.02.21 호젓한오솔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