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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영일대 해수욕장 무술년 해맞이

호젓한오솔길 2018. 1. 6. 19:55

 

포항 영일대 해수욕장 무술년 해맞이



                                         솔길 남현태



세상을 홀랑 뒤집어 놓은 큼직한 사건들이 한반도에 연이어 일어나 말 그대로 다산다난 하게 요동치던 정유년의 한 해가 허무하게 지나고, 늘 그랬듯이 올해도 새로운 희망으로 시작하는 황금 개띠의 해 무술년을 맞이하게 된다. 한 때는 태백산까지 가면서 이곳 저곳 신년 해맞이를 뻔질나게도 다녔지만, 언제부터 인가 그 것도 지겨워져서 인지 매년 새해 아침에는 늦잠만 자곤 하였는데, 올해는 마눌과 같이 가까운 바닷가로 잠시 해맞이를 나가보기로 한다.


무술년이 되는 올해는 58년 개띠들이 환갑을 맞이하게 된다고 하니, 내가 벌써 이렇게 됐나 싶은 찹찹한 기분이 든다. 별로 한 것도 없이 어영부영 살다 보니 훌쩍 나이만 먹어버린 지난 세월이 허무하게 느껴진다. 아버님 시절에만 하여도 환갑이 되면 오래 살았다고 동네 사람들 불러다가 잔치를 하곤 하였는데, 요즘은 세상이 좋아져서 인생은 60부터 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격동기에 별 탈 없이 살만큼은 살아온 허접한 인생이라는 생각이 든다.


포항에는 아침 7시 34분경에 해가 뜬다고 하여, 몇 년 만에 마눌과 같이 새해 일출을 보기 위해 이것 저것 두터운 옷으로 껴입고 7시가 조금 지난 시간에 집을 나선다. 집에서 걸어 10분 거리에 있는 영일대 해수욕장 쪽으로 걸어가는데, 골목마다 두툼한 복장을 몸에 두른 사람들이 몰려 나와 마치 어느 종교 행사를 가는 듯한 행렬을 이루어 바닷가로 몰려간다.


골목길을 지나 대로를 건너고 파도가 잠잠한 영일대 해수욕장 해안가로 내려서니, 어느새 호미곳 위에 동쪽 하늘이 벌겋게 달아오르고 있어, 영일대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보기 위해 우측으로 이동하여 자리를 잡아본다. 영일대 해수욕장을 빼곡하게 메운 해맞이 객들은 추위에 떨면서 해가 떠오르기를 학수고대 하고, 오랫동안 기다린 사람들은 추위에 모닥불을 피우는 모습이 보인다.


일출을 기다리느라 숨을 죽이고 있는 듯 잠잠한 영일만은 슬그머니 몰고 온 파도를 모래톱에 찰싹 인다. 해수욕장에 모래톱에 빼곡하게 들어찬 해맞이 인파들 손에 손에 휴대폰과 카메라를 들고 환희의 한 순간을 추억으로 담기 위해 초조한 마음으로 새해 일출을 기다리고 있다. 


울렁거리는 파도 너머로 호미곳 산 위에 하늘빛이 점점 붉어지더니, 무술년의 새해가 서서히 얼굴을 드러내기 시작하고, 주위에 환희에 찬 탄성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날씨가 하도 맑아서인지 무술년의 첫해는 떠오르자 마자 눈이 부신다. 새로운 희망을 알리 듯 찬란한 빛을 발산하는 무술년 새해 일출은 싸늘한 영일만을 불게 물들이고 수평선 위에 붉은 터널이 열린다. 영일대 위의 성급한 사람들은 갈 길이 먼지 벌써 발걸음을 돌리기 시작하고, 눈부신 일출을 향해 모두가 부지런히 셔터를 눌러 본다. 


아침 햇살에 떠밀리 듯 슬며시 다가오는 짓궂은 파도가 해안가 모래톱을 은근슬쩍 찝쩍거리며 간지럽히는 희망찬 영일만의 새해 아침, 지난 정유년 한해 동안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에 이은 북핵 위기 속에 방황하는 대한민국과 이곳 포항에 발생한 규모 5.4 대지진으로 삶을 완전히 바꾸어버린 영일만 사람들의 아린 상처를 파도에 깨끗이 실어 보내고, 평창 동계 올림픽이 열리는 무술년 새해에는 모든 사람들의 건강과 북핵 위기 속에 위태롭기만 한 한반도의 평화를 염원하면서 영일대 해수욕장을 가득 매운 사람들 모두가 눈부신 새해 일출을 바라보며 카메라와 휴대폰을 겨누고 열심히 셔터를 눌러댄다.


집에서 잠시만 나오면 이렇게 만날 수 있는 새해 일출을 가까이서 너무 자주 보면 실증이 나는 것이 인지상정 인지 그간 몇 해 동안은 오는 새해의 반가움 보다 지난 한 해의 아쉬움이 더 많아서 인지 밤늦게 까지 놀다가 아침에 늦잠을 자느라 해맞이를 하지 못하였는데, 오래 만에 새해 아침에 일출을 마주하니, 기분이 새롭다는 생각이 든다.


눈부신 무술년의 새해 아침 열기가 영일만 가득 퍼져나가는 환희의 순간에 어디서 날아 든 헬기 2대가 영일만 상공을 비행하며 해맞이 객들에게 축하 인사를 하니, 작은 어선 한 척이 덩달아 신이 난 듯 바다를 가로 질러 뒤를 따른다. 황금 개띠 무술년의 아침 햇살이 영일만을 벌겋게 달구는 시간 찾아온 해맞이 객들은 발길을 돌리면서 다음 기해년 해맞이를 기약한다. 아침 햇살에 활활 타오르는 영일대를 뒤로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복잡한 도로는 거의 주차장이 되어있고, 새벽 바람에 떨다가 보금자리로 돌아가는 발걸음들 분주하다.


아침에 잠시 집 근처 바닷가로 나가서 지난 앙금들을 훌훌 털어내고 새로운 희망을 담은 신년 해맞이를 마치고, 눈이 부시는 무술년 아침 햇살을 등에 받으면서 집으로 돌아오니, 어제 밤 친구들과 늦게까지 놀다가 새벽에 들어와 곤하게 자고 있는 작은 아들을 깨워 떡국을 끓여 함께 아침을 먹으면서 무술년 한 해를 새로운 마음으로 열어간다. 

(2018.01.01 호젓한오솔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