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오산 겨울비 촉촉한 낙엽길 따라
솔길 남현태
한반도를 덮친 때이른 북극 한파가 73년 만에 12월 중순에 한강물을 꽁꽁 얼려버렸다는 신유년의 한 해도 기울어 일년 중에 밤이 가장 길다는 동지가 지나고, 주말이 성탄절로 이어진 12월 넷째 주 일요일에는 원래 팀산행으로 진행 중인 호남정맥 14구간 산행을 가려고 하였는데, 호남정맥 산행을 하루 미루어 크리스마스 날에 가기로 하고, 일요일에는 포항의 명문 산마루클럽 산악회의 구미 금오산 송년 산행에 고운산정 이름으로 4명이 참여하기로 한다.
포항에서 그리 멀지 않는 곳에 위치한 구미 금오산은 여러 번 가본 곳이지만, 김천시 부상고개에서 시작하는 이번 코스는 산행이 처음이라 기대가 된다. 어릴 적부터 금오산 하면 맨 먼저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이 떠오르는데, 금오산의 정기를 받고 태어났다는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은 국민들이 배고픔에 허덕이던 시절 경제개발 5개년 계획과 새마을운동으로 보릿고개를 없애는 등 누가 뭐래도 가난한 대한민국을 부강한 경제대국으로 끌어올린 한강의 기적을 이룩하여, 훈민정음을 창제하신 세종대왕 이후 최고의 지도자로 꼽힌다.
일요일 아침 7시 흥해읍에서 출발하는 산악회 버스를 지정된 장소가 아닌 집 근처로 지나가는 길목에서 타기 위해 조금 일찍 나가서 기다리기로 하고, 아침 5시 50분에 알람을 맞추어두고 잠자리에 들었는데, 마눌이 먼저 일어나 도시락을 준비하는 소리에 일찌감치 일어나 아침을 먹은 후 산행 준비를 하여 6시 45분경에 집을 나선다.
오늘 12시경부터 비가 온다고 하여 우의와 우산을 모두 배낭에 챙겨 넣은 우중 산행을 준비하고, 버스가 지나가는 두산위브 사거리에서 잠시 기다리다가 도착하는 버스에 오르니, 기사님이 우리 고운산정에 오시는 분이라 처음 산행에 참여하는 산악회가 낯설지 않게 느껴진다. 시내를 경유하여 우리 일행이 탑승하는 이동 사거리에서 마지막으로 회원님들을 태우고 고속도로를 진입한다.
가는 도중에 영천 휴게소에 들려서 산악회에서 준비한 아침을 먹고 가자고 한다. 정맥을 다니는 우리 고운산정에는 아침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각자 아침을 먹고 출발하기에 습관 대로 집에서 아침을 든든하게 먹고 온 터라 뜨끈한 육개장 국밥을 조금 받아서 맛있게 먹는다.
오후부터 비가 온다고 하더니 잔뜩 찌푸리고 있던 날씨가 아침 9시 27분경에 산행 들머리인 경북 김천시에 위치한 무상리 고개에 도착하니 비가 내리기 시작하여 금방 빗줄기가 거칠어진다. 버스에서 내려 다급하게 우중 산행 준비를 하는데, 다행이 바람이 불지 않는 날씨에 군립공원 이라 길이 좋을 것 같아 답답한 우의는 배낭에 넣어 두었다가 바람이 많이 불면 입기로 하고, 사진을 찍으며 느긋하게 우산을 들고 걷는 산행을 하기로 한다.
비가 내리는 속에서 각자 산행 준비를 하고, 마을 시멘트 길을 따라 '가은산업' 공장 옆 골목을 지나 '투엔원 모텔' 앞을 지난다. 마을을 지나 등산로 입구에 모여 오늘 비가 와서 산행을 포기하고 버스에 남은 사람과 산행을 하는 인원 파악을 잠시 하고, 겨울비가 스며드는 촉촉한 등산로에 접어든다.
누렇게 말라있던 낙엽이 물기를 머금고 부풀어 오르는 길은 금오산 정상이 3.8Km 남았음을 알리는 이정표를 지나고, 전망 바위의 조망은 하얀 안개가 가리었다. 낙엽 비탈을 따라 오르는 길 어느덧 아랫도리는 축축하게 젖어오고, 우산을 때리는 빗방울의 연주를 들으며 한발한발 밟아 오르니, 이정표가 세워져 있는 능선으로 올라선다.
예상대로 등산로가 잘 정비되어 있어, 우산을 들고 걷는데 별로 불편함이 없는 길은 덩그런 바위 봉우리에 올라서니, 조망이 좋아 보이는 절벽 아래 사방에 안개가 가리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자욱한 안개 속으로 이어지는 능선길은 제1 전망대 아래 도착하여, 안개로 조망은 없어 보이지만 올라가보기로 한다.
나무 계단으로 올라와 전망대로 내려서는 길은 비를 피할 정자라도 있는 줄 알았는데 아무것도 없고, 사방에 왔다갔다하는 안개가 가리어 조망이 별로 시원치가 않다. 올라온 골짜기 쪽과 올라갈 제2 전망대 쪽으로 잠시 조망이 트여 둘러보며 사진 몇 장 찍어본다.
골짜기에 모락모락 피어 오르는 하얀 안개를 바라보며 잠시 머물다가 안개가 넘나드는 바위 봉우리 당산님의 도움으로 기념사진 한 장 찍혀보고, 올라온 회원님들 기념사진 찍어본다. 전망대 위에 김천시 쪽으로 시원한 조망 안내판이 세워져 있지만, 오늘은 안개가 가리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아쉬움을 남기고, 걸음을 돌려 나무계단 길을 내려서서 낙엽 능선길 따라 제2 전망대 쪽으로 향한다.
덩그런 바위 봉우리 제2 전망대에 올라서니, 사방에 자욱한 안개가 가리어 아쉬움만 보이는 허공에 그냥 셔터만 눌러보고, 발걸음을 돌려 나무계단 길을 내려서니, 제2 전망대 바위 아래쪽에 추녀처럼 움푹 들어간 비바람을 피할 곳이 보여, 세 사람이 배낭을 풀고 물 한 모금 마신 후 이제 오전 11시가 막 넘어가는 조금 이른 시간이긴 하지만, 오늘은 산행 거리도 짧고 가다가 비를 피할 곳도 만만치 않을 것 같아 아예, 이 곳에서 일찌감치 점심을 먹고 출발하기로 한다.
점심을 먹고 나니 땀이 식어 으실으실 추워지는 발걸음 자욱한 안개 속으로 낙엽 능선 길을 달려 올라가니, 허물어진 산성을 넘어 산성 길을 따라 잠시 이어지던 걸음은 안개만 자욱한 서봉(887m)에 올라선다. 성안으로 이어지는 낙엽 촉촉한 길은 사방으로 안개가 가리어 보이는 건, 발아래 촉촉한 낙엽과 안개의 속살을 파고든 앙상한 겨울나무 가지들뿐 아쉬운 발걸음은 금오산 정상이 1.1Km 남았음을 알리는 이정표를 지나 금오산성 안내판이 설치된 성안을 지난다.
비가 내리는 안개 속으로 이어지는 발걸음은 속은 얼어 있고 겉만 녹아 미끄러운 길을 잠시 가파르게 밀어 올리더니, 통신 시설이 있는 금오산 정상 현월봉에 올라선다. 금오산의 최고봉인 현월봉의 옛날 정상석을 지나 더 높은 곳에 새로 설치된 현월봉(976m) 정상석 앞에 도착한다.
새로 설치된 현월봉 정상석 앞에서 영일만님의 도움으로 일행이 세 사람이 함께 기념사진 찍혀보고. 다시 구 정상석 앞으로 돌아 내려와 안개 자욱한 미끄러운 길 따라 약사암 쪽으로 향한다. 약사암 동국제일문을 통과하여, 바위 사이로 난 나무계단 길 따라 약사암 앞에 내려서니 사방에 자욱하게 안개가 가리어 약사암 바로 뒤에 있는 바위조차 잘 보이지 않는다.
조용한 약사암에는 한 쪽에 커피 포트를 설치하여, 지나는 중생들이 따뜻한 커피를 한 잔씩 마시고 갈 수 있도록 공양을 하고 있다. 약사암에서 바라본 희미한 안개 속에 종각이 있는 곳 예전에는 이 곳이 출입이 금지되어 있었는데, 오늘은 새롭게 정비한 출렁다리를 개방하였기에 건너 가보기로 한다.
출렁다리 건너 종각에 달린 커다란 범종에는 '호국통일대범종'이라는 한문이 새겨져 있고, 고 박정희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 박근혜, 박근영, 박지만 비운의 두 부녀 대통령 가족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어, 험난한 시대를 함께 살아온 보는 이들의 마음을 아리게 한다.
그리고 육군대장 진종채, 육군중장 노태우, 육군중장 유상종 국무총리 신현확 등 수 많은 이름들이 아래쪽이 빼곡히 새겨져 있다. 행여, 지금도 고 박정희 대통령의 동상 건립을 반대하고 있는 무자비한 좌파들이 이 것도 적폐청산의 대상으로 해코지나 않을까 염려가 된다. 울적한 마음이 유난히 출렁거리는 다리를 건너며, 따라 오는 일행들 사진을 찍어본다.
이틀 전에 동지라고 약사암에서 팥죽 공양을 하는데, 조금 전에 점심을 먹은 터라 알파인님과 나는 그냥 지나쳐서 마애불 쪽으로 걸음을 옮긴다. 커다란 바위 가랑이 사이로 석간수가 줄줄 흐르는 곳을 지나면서, 돌아본 바위는 하도 커서 안개 속에서는 그 덩치를 알 수가 없다. 비를 피할 수 있는 커다란 바위 아래 자연석으로 멋지게 쌓은 작은 돌탑이 있고, 깊숙한 바위 동굴에 석간수가 고여있는 곳을 지난다.
자욱한 안개 속으로 이어지는 낙엽길, 잠시 소강상태를 보이는 비를 맞으며, 한 무리의 산님들이 점심을 먹고 있는 곳을 지나 잠시 이어지던 걸음은 금오산 마애불상 앞에 도착한다. 커다란 바위 귀퉁이를 다듬어서 만든 금오산 마애불 안개 속에 자비로운 모습으로 바위에 기대어 있다. 바위 속에서 살며시 나왔다가 어지러운 세상이 보기 싫어 다시 들어가려는 듯한 마애불을 뒤로 하고 오형돌탑이 있는 곳으로 향한다.
금오산 고사목으로 만든 대문을 통과하니, 커다란 바위 벼랑 위에 10년 세월 동안 손주를 그리는 할아버지의 애절한 정성이 벼랑 끝에 자연석으로 정성껏 쌓아 올린 돌탑들이 빼곡하게 세워져 있다.
"소나기
뭐 라꼬/ 또 래요/ 오늘의 고통은/ 먼 훗날/ 추억이 되고/ 나의 역사가 된다/ 오늘의 고통은/ 지나가는 소나기다."
"오 형 돌탑
큰 돌 작은 돌/ 잘생긴 돌 못생긴 돌/ 차곡차곡 등에 업고/ 돌탑으로 태어나서/ 떨어질까 무너질까/ 잡아두고 받쳐주며/ 비바람을 이불 삼아/ 산님들을 친구 삼아/ 깨여지고 부서져서/ 모래알이 될 때까지/ 잘 가라 띄워 보낸 / 낙동강을 굽어보며/ 못다 핀 너를 위해/ 세월을 묻고 싶다/ 석아"
"고사목
생존엔 금오산 지킴이/ 사후엔 돌탑 지킴이/ 어이 세월아/ 죽어도 쓸모가 있어 좋다. -문지기-"
어린 손자를 잃은 할아버지의 애끓는 사연이 금오산의 명소로 승화된 오형돌탑을 뒤로하고, 잠시 이어지던 길은 정상에서 내려오는 등산로와 만나 명금폭포가 있는 골짜기를 향하여 걸음을 서두른다.
그렇게 붐비던 금오 산천엔 겨울 비 속에 찾아 드는 산님들 하나 없고 떨어지기 서러워 가지에 붙은 채 붉은 미라가 되었다가 빗물에 촉촉하게 불어난 단풍은 다시 생기를 찾은 듯 떨어진 낙엽과 함께 어울려 한가로운 겨울 산천을 아름답게 수 놓으니, 지나가는 산 객은 계절을 망각한 체 떨어지는 빗소리에 걸음 마다 콧노래만 흥얼댄다.
삼동 속에서 만추의 향기에 취하여 흥얼대던 걸음은 안개 자욱한 할딱고개에 내려서고 나무계단 길 따라 가파르게 이어진 걸음은 붉은 단풍 뒤에 숨어 꽁꽁 얼어 붙은 하얀 얼음 기둥으로 변한 대혜폭포에 내려선다. 올 겨울 지난 주까지 날씨가 워낙에 추워서 폭포를 꽁꽁 얼렸다가 오늘 날씨가 풀리고 비가 내리니 얼음폭포 속으로 졸졸 흐르는 물소리가 들린다.
폭포에서 조금 내려오다가 도선굴을 알리는 이정표 앞에서 오늘은 비가 내리고 안개가 심하여 도선굴은 들리지 않기로 하고 바로 주차장으로 향하여 걸음을 재촉한다. 두 개의 돌탑 아래 깔린 붉은 낙엽이 하얀 안개와 어우러져 멋스러운 가을 분위기를 연출하는 길을 지나 금오산성 대혜문을 통과한다.
대혜문을 뒤로하고 서두르는 발걸음은 아직 가을의 여운이 소복이 남아 있는 돌탑 앞에서 잠시 멈추었다가 금오산성 사적비 앞을 지난다. 금오산 케이블카를 타는 곳에는 손님이 한 사람도 보이지 않으니, 아마도 오늘은 케이블카 운행을 중단한 듯하다. 노송 어우러진 공원길 따라 '자연보호 운동 발상지' 표지석 앞을 지나고, 공원관리사무소 앞을 지나 아래쪽에 상가가 있는 대형버스 주차장으로 돌아오면서 산행길은 종료된다.
아침 8시 27분경에 김천시 부상고개에서 산행을 시작하여, 약 9.6Km 거리에 약 4시간 32분이나 소요된 우산을 쓰고 걸은 느긋한 산행을 마치고, 오후 1시경에 구미시 금오산 군립공원 주차장에 도착하여 버스에서 젖은 옷을 갈아입고 약 2시간 정도 기다리니 후미 대원들이 하산을 완료한다.
모두 버스를 타고 미리 예약한 맛 집 식당으로 이동하여, 얼큰한 황태찌개와 간고등어 구이 반찬으로 저녁을 먹으면서 푸짐하게 하산 주를 나누고, 오후 5시경에 포항으로 출발을 한다. 저녁 7시 30분경에 포항에 도착하여, 아침에 역순으로 회원님들이 내리면서 흥해 쪽으로 가는 길에 집근처 두산위브 사거리에 내려 집으로 돌아오면서, 포항의 명문 산마루클럽 산악회와 함께한 금오산 우중 산행 길을 갈무리해본다.
집으로 돌아와 축축한 신발과 배낭을 풀어 말리며, 새벽에 떠날 호남정맥 14구간 산행 준비를 하는데, TV 에서 크리스마스 이브 어쩌고 저쩌고 방송을 하니, 마눌이 우리는 이브고 뭐고 아무것도 없다고 하는 소리에 미안한 마음이 든다. 젖은 카메라 속에 오늘 찍어온 사진들을 컴퓨터에 옮긴 후 휴대폰 알람은 새벽 1시 50분에 맞추어놓고 잠시 눈을 붙이기 위해 밤 10시경에 잠자리에 들었지만 평소에 늦게 자는 버릇이 있어 잠이 오지 않아 뒤척인다.
(2017.12.24 호젓한오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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