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술년 새해 동대산 시산제 산행
솔길 남현태
파란만장 하던 정유년 한 해가 허무하게 지나갔다. 대통령의 세월호 일곱 시간 의문과 최순실 국정 농단 사건을 꼬투리 잡은 좌파 정치인들이 촛불 집회로 민심을 흔들어 박근혜 전 대통령을 탄핵하여 구속시키고 어부지리로 정권을 차지하더니, 적폐청산이란 미명 아래 보수의 씨를 말리려는 망나니 칼춤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는 비겁한 보수들의 모습이 안쓰럽기만 하다.
남한이 복수혈전으로 집안 싸움이나 하고 있는 와중에 북한의 김정은은 핵개발을 완성하고 핵탄두를 미국 본토까지 날려낼 수 있는 장거리 미사일 실험에 성공하여, 오천만 남한 국민을 핵 인질로 삼아 미국을 위협하니, 발끈한 미국이 북한을 선제 타격 하겠다고 하는 한반도에 전운이 깊게 드리워진 어느 날, 갑자기 포항에는 진도 5.4의 대지진이 발생하여 영일만 사람들의 삶의 터전을 허탈하게 바꾸어 놓았다.
말 그대로 다사다난 하기만 했던 어지러운 정유년이 지나고, 늘 그랬듯이 모두가 황금 개띠의 해라고 칭송하며 희망이 부풀어 오른 무술년 새해를 맞이하여, 올해 첫 산행은 포항의 명문 산악회인 포산사(산을 닮고 싶은 포항 산사람들 모임)에서 실시하는 동대산 시산제 산행에 동참하기로 한다.
포항 포산사 산악회는 오래 전에 정상석이 없이 한적하기만 하던 동대산 정상에 회원님들이 무거운 정상석을 번갈아 가며 등에 매고 올라가서 어렵게 설치하여, 동대산을 산악회의 모태산으로 정하고, 매년 1월 첫째 주 일요일에는 어김없이 동대산 정상을 찾아 시산제를 올리고 있는 뿌리 깊은 산악회이다.
동대산은 백두대간의 천의봉에서 동쪽으로 가지를 친 낙동정맥이 남쪽으로 뻗어가는 도중에 내 고향 상옥을 지나는 성법령에서 동쪽으로 가지를 드리운 내연지맥이 괘령산, 매봉, 향로봉, 삼지봉을 거쳐 왼쪽에 오십천을 끼고 강구 앞 바다를 향해 달려가다가 풍경 좋은 명당자리에 우뚝하게 솟아 올라 사방으로 길게 드리운 능선들과 경방골, 마실골, 물침이골, 회동골등 아름다운 골짜기를 품에 안고 있는 명산으로 산속으로 들어서면 무엇 하나 빠진 것 없이 골고루 다 갖추고 있는 풍부한 자연의 보고 이다.
아침 7시 30분에 포항시 남구 종합 운종장에서 출발한 버스가 45분경에 북구 학산 파출소를 거쳐 나루끝 신동아 아파트 앞으로 지나간다고 하여, 집에서 제일 가까운 학파 앞에서 탑승하기로 하고 일찌감치 7시 20분경에 마눌의 차를 타고 출발하여 가다가 보니 시간이 너무 이른 것 같아 근처 길가에 잠시 정차하고 기다렸다가 시간에 맞추어 약속 장소로 나가니, 산악회 회장님과 산행 대장님, 그리고 낯익은 산님들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서로 인사를 나누고 잠시 후에 도착하는 버스에 올라 쟁암리로 향하는 도중에 화진 휴게소에 잠시 들렸다가 출발하는 버스 안에서 사무국장님의 소개로 잠시 일어나 마이크를 들고 우리 고운산정 산악회 소개를 하고 있는데, 막 끝나갈 무렵 내 전화벨이 시끄럽게 울리더니, 종가 집에 여든이 가까운 조카님에게서 걸려온 전화다.
다짜고짜 '아재, 오늘 계중 모임에 오는기요.' 하기에, '산악회 시산제가 있어서 참석을 못하게 되었니더' 하고 나니, 마음이 영 편치가 않다. 이렇게 주말마다 산에만 다니다 보니, 일년에 한번 1월 첫째 주 일요일에 친척들이 모이는 계중에는 대부분 참석을 하지 못하는 형편이고 보면, 산꾼이 되고부터는 사람이 해야 할 도리를 다하고 살기가 참으로 어렵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동해안 7번 국도를 따라 북으로 올라 가던 버스는 영덕군 장사면 해수욕장에서 좌 회전하여 쟁암리 마을을 지나, 아침 9시경에 산행들머리 주차장에 도착하니, 조금은 차갑게 느껴지는 날씨가 다행이도 바람이 고요하여 산행하기에 참 좋은 듯하다. 많은 시산제 제물을 각자 배낭에 조금씩 분산하여 배낭을 꾸린 후 총산행 대장님의 구령에 맞추어 가볍게 준비 체조를 하고 모두 동대산을 향하여 힘찬 발걸음을 이어간다.
우측에 잘 단장된 별장 앞으로 지나는 길 작은 바위에 곡청정을 알리는 안내판이 걸려있다. 정원이 잘 다듬어진 별장 앞을 지나 시원한 아침 공기를 마시며 시멘트 도로를 따라 시산제 산행을 가는 여유로운 발걸음이 이어진다. 바람 고요한 날씨에 골짜기로 접어들어 임도처럼 잘 단장된 등산로를 따라 가파르게 올라가는 양지바른 길에서 오늘 날씨가 춥다고 하여 두껍게 입고 온 등산복이 거추장스럽게 느껴지고 생각보다 땀을 많이 흘리게 한다.
이정표가 세워진 능선에 올라 바데산으로 가는 길과 만나는 삼거리에 도착하여, 바람 서늘한 곳에서 땀을 식히며 잠시 쉬어간다. 이어지는 참나무 능선길 따라 낙엽 밟으며 오르는 길은 동대산 아래 삼거리 이정표에서 우측으로 동대산을 향하여 오른다. 옛날에 반공호를 쌓았던 돌무더기들이 돌탑으로 변해가는 길을 지나 원형이 그대로 남아 있는 반공호 앞에서 잠시 걸음을 멈춘다.
동대산의 반공호는 사변 후 자주 출몰하는 공비 토벌을 위해 만들어 놓은 일종의 현대판 산성이라고 해야겠다. 어릴 적에 이곳 동대산에는 특히 무장공비가 많이 출몰하여, 산꼭대기 마다 헬기장을 만들고, 길목 마다 반공호를 만들어 사흘이 멀다고 공비 토벌 한다며 군부대가 자주 상옥으로 들어와 마을 뒷산에 주둔하였다.
어린 시절에는 모두가 빨갱이라고 하는 공비가 마치 멧돼지나 호랑이처럼 흉악하게 생긴 괴물인줄로 알았는데, 상옥에서는 포수들이 멧돼지를 잡아오는 것은 여러 번 보았지만, 공비를 잡았다는 소문은 들어보지를 못했다. 어린 나이에 국군아저씨들이 하도 신기하고 용감무쌍 하게만 보여 야전 부대에 쪼르르 몰려 놀러 가기도 했는데, 예쁜 누나가 있다고 거짓말을 해야 건빵이라도 몇 개 더 얻어 먹을 수 있었던 그 시절의 추억이 새롭다.
포근하게 낙엽 쌓인 길 따라 동대산 정상에 올라 각자 배낭에 지고 올라온 제물들을 모아서 시산제 준비를 하는 동안 동대산 정상에서 바라본 동해의 조망이 아련하게 펼쳐진다. 시산제 제물을 차리고 있는 아담한 동대산 정상석은 오래 전에 오늘 산행을 온 포산사 회원들이 짊어지고 올라와서 세웠다고 한다.
산악회에서 정갈하고 푸짐하게 준비한 제물로 시산제 제사상이 차려지고, 산악인의 선서에 이어 포산사 회장님의 주제로 강신, 참신에 이은 산행대장님의 초헌, 무술년 한 해동안 포산사 회원님들의 건강과 행운을 바라며, 모두의 안전산행을 기원하는 독축에 이어 아헌, 종헌 순으로 동대산 신령님께 제사를 올린다.
각 산악회에서 온 대표들이 차례대로 잔을 올리는 시산제를 마치고 정상석 앞에 모여서 단체로 기념사진을 찍는다. 포산사를 이끌고 있는 임원진들의 열정에 파이팅을 보내며, 마루금산악회팀 등 타 산악회에서 오신분들 기념사진을 찍은 후 우리 고운상정 팀도 기념사진 한 장 남겨본다.
넓은 정상에 자리를 펴고 시산제의 마지막 절차인 제물을 골고루 나누어 먹는 음복을 한다. 오늘 바람이 별로 없는 날씨가 포근하기는 하여도 밤부터 비가 온다고 하더니, 옅은 구름이 차츰 햇살을 가리기 시작하고, 올라올 때 흘린 땀이 식어서인지 막걸리를 마시는 동안 으실으실 한기를 느끼게 한다. 동대산 정상에서 푸짐하게 음복을 나눈 후 모두 일어나 산정을 깨끗이 정리를 하고 내연산 삼지봉을 향하여 산행 길을 이어간다.
동대산에서 삼지봉으로 가는 길은 포항시와 영덕군의 경계를 가르는 호젓한 능선 길이며, 봄이면 온갖 야생화들이 곱게 피어나고, 무더운 여름철에는 동해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이 있어 걷기가 즐거운 길이 가을에 참나무들이 뿜어내는 단풍 빛이 곱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지금 겨울철에 능선을 융단처럼 덮은 바스락거리는 황금빛 낙엽 천국이 좋다.
낙엽 바스락거리는 능선 길에 정겹게 이어지는 발걸음들 잠시 오르막 길 올라서면 평온한 내리막 길과 무릎까지 차오르는 부드러운 낙엽이 이어진다. 전국에 수많은 산길을 다니고 있다지만, 이곳 보다 더 좋은 낙엽 길을 걸어본 적이 없는 것 같은 부드러운 낙엽 위에서 뒤를 돌아보니, 마하님이 따라 오다가 걸음을 멈춘다.
아래쪽으로 질러 가는 길이 있는 곳에서 낙엽이 덮여 지름길을 발견하지 못하고 가파른 비탈길을 헤집고 올라서니, 커다란 반공호가 있는 덕골과 뒷골이 갈라지는 삼거리 봉이다. 넓은 반공호 위에서 잠시 멈추었던 걸음은 황금빛 낙엽길 따라 부드럽게 내려선다. 평온하게 오르락 내리락 이어지는 능선 길은 헬기장이 있는 동지봉(778m)을 지나고 낙엽 따라 부드러운 길 잠시 걸으면 덕골 삼거리 고개에 내려선다.
오색 리본이 펄럭이는 덕골 삼거리를 지나고, 문수봉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나 삼지봉으로 향하는 길에도 오늘은 산님들이 보이지 않더니, 삼지봉에 올라 두 사람의 산꾼을 만난다. 삼지봉에서 만난 낯선 산님에게 부탁하여 마하님과 같이 기념사진 찍혀보고, 이곳 삼지봉에서 바로 하산을 하지 않고 마하님과 둘이 향로봉 쪽으로 가다가 좌측 청하골로 내려가는 길을 만나면 폭포 쪽으로 둘러서 가기로 한다.
향로봉으로 향하는 길에서 첫 번째 만나는 길에서 좌측으로 내려서니, 가파른 경사 길은 깊은 골짜기로 떨어진다. 낙엽 쌓인 골짜기에서 이리저리 낙엽 속에 묻힌 길을 찾아가며 내려서니, 제 작년에 하산을 하던 길과 만나는 거무나리골로 내려선다. 옛날에 화전민들이 작은 부락을 이루고 살았던 흔적이 많이 남아 있는 거무나리골은 여기저기 축대를 쌓은 집터와 작은 밭뙈기들이 보이고 계곡으로 몰려든 초록의 미라들이 오금까지 차오른다.
잡목 우거진 사이로 옛사람들의 삶에 터전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거무나리골은 아마도 옛날 이 거무나리골에서 어려운 살림을 꾸리며 살던 사람들은 세월의 무게 속에 대부분 고인이 되었을 것이고, 코 흘리게 어린 자식들은 민들레 홀씨처럼 도회지로 뿔뿔이 흩어져 제각기 번듯한 일가를 이루고 살다가 중년이 넘은 지금쯤은 가끔, 어릴 적에 살던 이 산골짜기의 바위와 돌담들을 어렴풋이 떠올라 고향의 향수를 그리워하며 씁쓸한 소주잔을 기울이고 있지 않을까 싶다.
계곡 너덜겅에 황금빛 낙엽이 소복이 쌓여있는 골짜기 정성스럽게 석축을 쌓아 올린 계단식 밭뙈기 마다 자갈밭 일구며 김을 매던 거친 아낙네들 한숨 소리 들리는 듯하고, 신우대 울타리 살아 남은 옛 집터에는 소곤소곤 다사로운 겨울 햇살이 맴돈다. 골짜기에 살던 사람들이 수없이 오르내리던 무릎까지 차오르는 낙엽길 걸어 청하골 은폭포 상류 쪽에 내려서고, 며칠 전 추위에 꽁꽁 얼어 있는 청하골을 건넌다.
청하골 개울은 오랜 가뭄으로 폭포의 물줄기는 가늘어져 있고 꽁꽁 얼어버린 깊은 소 위에는 낙엽 이불이 덮여있다. 개울을 건너는 출렁다리가 있던 곳에는 어느새 새롭게 설치된 철교를 건너고, 은폭포 상류를 지나 은폭포 아래에 내려서니, 폭포에는 멋진 고드름이 달려 있고 은폭 아래 깊은 소에는 얼음이 꽁꽁 얼어 있다.
제8폭포 '은폭포'는 여성의 음부를 닮았다 하여 음폭이라 하다가 상스럽다 하여 은폭으로 고쳐 불렀다고도 하고, 용이 숨어 살았다 하여 흔히 '숨은용치'라고도 하였는데, 이에 근거하여 은폭으로 불렀다고도 한다. 은폭에 달린 멋진 고드름 풍경 바라보며, 잠시 머물던 걸음은 시간이 많이 지체된 것 같아 얼어 있는 청하골을 서둘러 내려선다.
낙엽 속에 얼어 있는 연산폭포 상류 골짜기를 지나 추모비 2개 세워진 비하대 위에 올라서니, 건너 학소대 위에 전망대가 설치되어 있는 모습이 보이고, 내려다 본 관음폭포 아래 청하골 풍경은 한산하기만 하다. 한가로이 겨울 잠든 청하골은 낙목한천에 독야청청 솔빛 푸르르니, 청하골의 으뜸인 선일대 모습 더욱 의연하고, 관음폭포 아래 찾아와 청하골의 겨울 풍경을 즐기는 사람들 모습이 여유롭다.
제 6폭포 '관음폭포' 비하대 아래 있는 관음굴에서 유래되었으며, 폭포 옆에 비하대, 감로당, 관음굴이 있다. 관음폭포 아래를 지나 연산폭포 쪽으로 향하여, 출렁다리를 건너니, 청하골의 최대 폭포인 연산 폭포도 꽁꽁 얼어 붙은 몸 속으로 가는 물줄기를 흘려 보내고 있다. 음지에 있는 연산폭포 주변은 꽁꽁 얼어있고, 양지쪽에 있는 관음 폭포는 얼음이 녹아 가느다란 물줄기 흘러 수면 위에 파장을 일으킨다.
우뚝한 선일대 풍경 바라보며, 연산폭포를 돌아 내려와 작은 무풍폭포 옆으로 지난다. 제 5폭포 '무풍폭포' 갈라진 바위 틈으로 물이 흘러 '바람을 맞지 않는 폭포'를 의미한다. 걸음은 쌍생폭포 상류를 지나 바위 사이에 두 개의 얼음 기둥이 만들어진 쌍생폭포 아래로 내려선다.
제1폭포 '쌍생폭포'는 쌍둥이 폭포라는 의미 1688년 5월 내연산을 찾은 정시한의 '산중일기'에도 '사자쌍폭'으로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여행객들이 즐기고 있는 쌍생폭포를 뒤로하고, 서둘러 청하골을 빠져 나오는 길에 돌아본 바람 잠잠한 겨울 청하골은 잿빛 속에 독야청청 활갯짓으로 청춘을 노래하는 노송들 환희의 웃음소리 골짜기 가득 넘쳐 흐른다.
걸음은 보경사 안으로 들어가 종각 앞을 지나, 보경사 오층석탑 앞에서 잠시 멈춘다. "보경사 오층석탑은 고려시대 5층 석탑으로 높이는 약 5m이며, 일명 금당탑으로도 불리며, 보경사 금당탑기에 의하면 도인, 각인, 문원 등이 고려 현종 14년에 건립하였다고 한다."
울룩불룩한 근육질을 자랑하는 보경사의 멋진 소나무 앞에 잠시 멈추었다가 서둘러 발걸음을 돌린다. 살얼음이 둥둥 떠있는 시원한 감로수 한 바가지 마시고, 한산한 보경사 앞 소나무 숲길을 지나 서두른 발걸음은 보경사 매표소 앞을 지나고, 일주문을 나서면서 오늘의 산행길은 종료된다.
포산사 회원들과 동대산 정상에서 느긋하게 시산제를 올린 후 낙엽 능선을 따라 내연산 삼지봉을 지나, 마하님과 둘이 거무나리 골짜기를 돌아오는 약 14 Km 거리에 6시간 40분 정도 소요된 미니 산행을 마치고, 오후 3시 40분경에 주차장으로 돌아와 산악회에서 예약한 식당에 들러서 해물 파전에 동동주로 시작하여 닭백숙까지 푸짐하게 하산 주를 나눈다.
아침에 산악회에서 배부한 등산지도에 매겨진 번호로 경품을 추첨하는 깜짝 행사에서 과분한 선물까지 받으며 즐거운 하산 주를 마치고, 저녁 7시경에 포항으로 돌아와 아침에 탑승한 학산파출소 앞에 내려, 기다리고 있던 마눌의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오늘 시산제 준비에 수고하신 산악회 임원진들에게 축하의 말씀을 전하며, 무술년 새해 아침에 포항의 명문 포산사와 함께한 동대산 시산제 산행 길을 절찬리에 갈무리해본다.
(2018.01.08 호젓한오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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