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방산(1577.4m), 이승복 이야기
* 위 치 : 강원도 홍천군 내면, 평창군 진부면
* 일 자 : 2008.02.10(일요일)
* 동행자 : 경포산악회 동참(45명)
* 산행코스 : 운두령 - 깔딱고개 - 계방산(1577.4m) - 도동계곡 - 이승복 생가 - 아랫삼거리
* 산행거리 : 약 12 Km
* 산행시간 : 3시간 40분 소요
남한에서 다섯 번째로 높다는 계방산 산행을 오늘 경포산악회를 따라서 가기로 예약하고 새벽에 집을 나선다. 아침 6시 40분에 포항시 북구 두호동사무소 앞에서 출발한 버스는 죽도시장내 산악회 사무실과 포항 공설운동장을 경유하여 계방산으로 향한다.
동해안 국도를 따라 계방산으로 가면 거리도 짧고 시간도 단축 되겠지만 아침에 산님들의 차 멀미를 염려하여 먼 거리인 중앙고속도로를 경유한다. 가다가 청통 휴게소에서 산악회에서 준비한 따끈따끈한 시락국과 김치 반찬으로 아침식사를 하고 먼 길을 가다가 휴게소에서 두번을 더 쉬어가면서 계방산 운두령에 도착하니 정오를 넘어서 12시 30분경이다 각자 행장을 챙기고 단체 사진을 찍은후 12시 40분경에 산행길에 오른다.
겨울철 계방산 산행은 눈이 많고 눈꽃이 피어야만 제멋인데 오늘 산행길은 생각 보다 눈이 그리 많지가 않다. 바닦에 쌓인눈을 제외하고는 눈꽃이 없어 뭔가 시작은 허전한 기분이 든다. 산행길 내내 뽀드득 거리는 눈을 밟으며 걸을수는 있었으나 오름길 양지쪽 비알과 계방산 정상에는 눈이 다 녹아버렸으며 때로는 갈바닦이 눈이 녹아서 물이 줄줄 흐른다.
남한에서 랭킹 5위에 들어 가는 태산이면서도 바위가 별로 없는 육산이며 뚜렸한 특색을 찾아볼수 없는 계방산이다. 산행도 우리나라에서 자동차로 오를수있는 최고의 고개인 운두령(1089m)에서 출발을 하다 보니 오르기가 수월하다. 다행이 정상에서 하산길인 도동계곡에는 눈이 많이 쌓여서 아름다운 주목과 어우러진 겨울산행의 흥취를 느끼기에 충분하다.
마지막 하산길에는 1968년 12월 무장공비 침투로 9살의 어린 나이에 무참히 살해된 이승복 생가에 들러서 분단된 역사 아픈 상처를 잠시 드려다 본다. 살아있었으면 나보다 한살 아래인것 같은데..... 부지런히 걸어서 오후 4시 20분에 아랫삼거리에 도착을 하니 몇몇분은 산행을 하지 않고 하산주를 준비하느라 분주하다. 커다란 찜통에는 오뎅국이 부글부글 끓고있는데 오뎅과 계란 떡국등 온갓 양념을 넣고 우러 낸 오뎅국은 추운 겨울 산행 후 하산주 안주로는 제일이다.
즐거운 하산주를 마치고 오후 5시 30분에 계방산을 출발하여 포항으로 돌아 오는길은 강릉을 경유하여 동해안 7번 국도를 따라 내려오는데 강릉에서 삼척 싸이의 고부랑길에서 차가 얼마나 뱅뱅 도는지 아침에 멀미약을 먹고 왔는데도 속이 울렁 거린다. 차 멀미로 진땀을 흘리면서 토하기 지직전에 파김치가 되어 밤 10시 30분에 포항 북부 해수욕장 앞에 내리면서 속이 뒤틀리로록 힘들었던 계방산 산행을 마무리 해봅니다....ㅎㅎ
* 바람도 쉬어 넘는..운두령 고개에서 산행을 시작합니다..
* 계방산 오름길에서 돌아본 운두령고개 풍경..
* 초입의 길은 질퍽질퍽합니다..
* 고개를 올라서니 미끄러워 아이젠을 착용합니다..
* 길 바닦이 반들반들 하네요..
* 다져진 눈위를 걸어갑니다..
* 저 멀리에 계방산 정상이 보이네요..
* 깔딱고개를 올라서니 넓은 헬기장에 도착합니다..
* 계방산 정상과 능선이 보입니다..
* 정상이 바로 보이는 1,492봉 헬기장에서 ..
* 오후 2시에 점심을 챙겨 먹습니다..
* 먼저 올라와 서둘러 먹고는.. 앞서 계방산으로 올라갑니다..
* 먼저 출발하여 정상에 오르면서 돌아보니..가물가물 멀리에서 아직도 식사를 하고 있네요..
* 앙상한 가지끝에.. 눈꽃이 없는 아쉬움에..
* 몇 장 담아봅니다..
* 요기에 눈꽃이 피면 얼마나 멋 있을까..
* 드디어 계방산 정상입니다..
* 눈이 다 녹고 없네요..
* 제2 야영장 쪽으로 갑니다..
* 올라온 길 돌아보고..
* 걸어가는 앞 길에는 눈이 많이 쌓여 있네요..
* 오대산 쪽 능선이 가물거립니다..
* 다저진 눈길 능선을 걸어서..
* 주목 삼거리에 도착하여.. 계곡으로 하산합니다..
* 삼거리 풍경..
* 늠늠한 주목 풍경입니다..
* 계방산의 주목들의 위용..
* 생천년 사천년...
* 독야청청하네요..
* 유구한 세월을 한결같이 살아갑니다..
* 회원님들이 따라오네요..
* 검은 복면을 한 산행대장님의 등장입니다..
* 세월의 주름살은...
* 깊어만 가고...
* 세월속에 지친몸.. 아예 누워서 살아갑니다..
* 사진을 찍는동안..
* 일행들이 몇 명 추월해 갑니다..
* 뒤 모습들이 더 정겹습니다..
* 얼음이 얼어붙은 개울가에서는..
* 잠시 동심이 발동합니다..
* 잎이 새파란..소나무 숲 길을 지나고..
* 쭉쭉 뻗은 낙엽송 길을 지납니다..
* 청소년 야영장에 세워진 등산 안내판입니다..
* 이승복 생가에 도착했네요..
* 집 뒤에서 바라본 풍경입니다..
* 추모비입니다..
* 추모비 앞쪽입니다..
* 추모비 뒤쪽입니다..
이승복이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찾아서 올려봅니다..
이승복
* 이승복 (1959년 12월 9일 ~ 1968년 12월 9일)은 북조선 무장간첩의 희생자이다. 이승복은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지금의 용평면) 도사리에서 태어나 1967년 3월 2일에 속사국민학교 계방분교에 입학했다. 1968년 11월 2일 삼척시의 바닷가를 통해서 대한민국으로 무단 침입한 북조선의 무장간첩에 의해서 12월 9일 밤 어머니, 남동생, 여동생과 함께 살해당했고 그의 형과 아버지는 크게 다쳤다.
12월 11일 조선일보는 3면에 이 사건을 〈“共産黨(공산당)이 싫어요” 어린 抗拒(항거) 입 찢어〉라는 제목의 기사로 다뤘다. 이 기사는 현장을 목격한 이승복의 형의 증언을 인용하며, 무장공비가 이승복에게 북조선이 좋으냐, 남한이 좋으냐고 묻자 이승복이 “우리는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대답하여 공비가 그의 입을 칼로 찢어 죽였다고 보도했다. 12월 13일에 제작된 대한뉴스 제705호 〈남침공비를 무찌른다 - 제3신〉 편에서는 이 사건을 “공산당이 싫다고 해서 어린 젖먹이를 돌로 때리고 입을 찢어죽인 이들의 만행”이라고 보도하면서 일가족의 시신을 공개했다.
이후 이 사건이 국민학교(지금의 초등학교) 도덕 교과서에 실리고, 국민학교마다 이승복의 동상이 세워지는 등 반공정신의 상징처럼 되었다. 교과서에서는 이 내용이 제6차 교육 과정에서부터 빠졌다.
* 의혹 제기
계간 저널리즘 1992년 가을호에 당시 미디어오늘의 편집국장 김종배는 〈“공산당이 싫어요” 이승복 신화 이렇게 조작됐다〉라는 기사에서, 당시 조선일보의 기사가 허위라고 주장했다. 그는 조선일보 기사에서 이승복의 형의 이름을 잘못 기록했다는 점, 후에 이승복의 형이 조선일보 기자를 만난 적이 없다고 밝힌 점을 지적했고, 이승복 시신의 입이 찢어져 있지 않았다는 주민의 증언을 인용하면서 조선일보의 기사를 “작문”이라고 비판했다.
1998년 당시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총장인 김주언은 서울과 부산에서 ‘오보 전시회’를 열어 김종배의 기사를 전시했고, 이후 10월에는 미디어오늘과 월간 말을 통해 더 많은 근거를 들어 오보 내지는 작문이라는 주장을 했다.
1998년 11월 조선일보는 김주언 김종배 두 명을 명예훼손으로 형사 고소했다. 1999년 7월 서울지방검찰청은 두 명을 불구속 기소했고, 2002년 형사 1심에서 두 명에게 각각 징역 6월과 10월을 선고했다.
2004년 10월 28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있었던 항소심에서는 김주언 씨에게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 김종배 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을 통해 조선일보의 기사는 사실에 기초한 것으로 판단되지만, 거기에 대한 의혹보도 역시 충분한 구체성을 가지고 있다면 언론의 자유에서 용인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2006년 11월 24일 대법원에서 원심을 유지하기로 결정함에 따라 사건이 마무리되었다
이승복 사건의 진실 |
◇68년 12월 13일 제작된 대한뉴스 ‘남침공비를 무찌른다-제3신’에 실린 이승복군의 시신 사진. 오른쪽 입술 끝부터 귀밑까지 찢어진 상처가 있고 뺨 중간과 귀 근처에 +자 형태의 상처 2개가 뚜렷하다. 68년 12월 10일 오전 9시쯤 찍힌 이 사진은 현장에 대한 최초 기록이다./대한뉴스 자료사진
◇北공비에 살해당한 이승복군 일가족 강원도 평창군‘이승복 기념관’에 전시된 일가족 시신 사진. 북한 무장공비에 의해 살해된 이승복(당시 9세), 남동생 승수(당시 7세), 여동생 승자(당시 4세), 어머니 주대하(당시 33세?사진 위쪽부터)씨 시신이 나란히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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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복 '공산당이 싫어요'는 진실" |
1968년 12월 9일 밤 이승복군 가족 4명이 북한 무장공비에 의해 무참히 살해된 사건은 “공산당이 싫어요”라는 이승복군의 발언이 발단이 됐으며, 이 사실은 조선일보 기자들의 현장 취재를 통한 특종보도로 세상에 알려졌음이 법원의 형사 항소심 재판에서 재확인됐다.
◇북한 무장공비에 의해 무참히 살해된 이승복군 가족의 기사가 실린 1968년 12월 11일자 본지 사회면. 법원은 28일 이승복군 사건에 대한 조선일보의 최초 보도는 역사적인 진실이며, ‘이승복 사건 조작설’은 명백한 허위라고 재확인했다. /조선일보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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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복 왜곡12년 유족은 피멍 |
◇29일 전북 무주에서 만난 이승복의 형 이학관씨는 “당시 상황이 가짜라는 주장이 제기된 지난 12년 동안 겪은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용수기자 hejsue@chosun.com
◇29일 강원도 평창군 용평면 노동리에 있는 이승복기념관을 찾은 관람객들이 당시 자료사진 앞에서 기념관 황태병 장학사의 설명에 귀기울이고 있다. / 최순호기자 choish@chosun.com
◇29일 이승복기념관을 찾은 관람객들이 이승복 동상을 바라보고 있다. /최순호기자 choish@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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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이승복의 진실, 세상에 다시 알려져야 |
서울중앙지법은 1968년 무장공비들에게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말했다가 참혹하게 살해된 이승복군 사건이 역사적 진실임을 인정했다. |
* 이승복 생가 터를 뒤로 하고 돌아오는 발걸음은 왠지 무겁고 씁쓸하기만 합니다..
* 눈길을 부지런히 걸어서..
* 오후 4시 20분에 아랫삼거리에 도착합니다..
* 하산주를 준비하느라 분산하네요..
* 과메기 회에 술상이 마련됩니다..
* 따끔따끈한 오댕 국물은 감칠맛을 더합니다..
* 오늘 산행의 즐거움으로 이야기 꽃을 피우며 주고 받은 하산주에 모두들 근아하게 취해 가고 오후 5시 30분에 계방산을 출발하여 강릉시를 경유하여 7번 국도를 따라... 밤 10시 30분에 포항 북부 해수욕장에 도착 하면서 경포산악회 23차 정기 산행을 성공리에 마무리합니다.
2008.02.10 호젓한오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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