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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눈 내리는 날

호젓한오솔길 2009. 1. 4. 20:31

 

 

 첫눈 내리는 날

 

 

                       솔길 남현태

 

 

주말에는 비가 조금 내리고 일요일은 맑아진다는 기상대 예보와는 달리 겨울 가뭄이 극심한 포항 땅에도 어제 토요일 저녁부터 밤새 제법 많은 비가 내린 듯 하다. 지난주 어머님께서 포항에 나와 계시다가 일요일 날 시골에 들어가신다며 태워 달라 하신지라 어제는 산행을 접고, 오늘 어머님을 시골에 모셔다 드리고 내연산 쪽으로 산행이나 하고 올 요량으로 아침에 좀 서둘러서 마눌 과 함께 셋이 출발을 한다.

 

제법 차창에 비가 내리는 속으로 7번 국도를 따라 청하면에 이르니 비는 점점 하얀 눈으로 변해가며 진갈비가 되어 내리고 유계리를 지나 샘재 아래 이르니 함박눈으로 바뀌어 내린다. 샘재 산 쪽을 처다 보니 그냥 뿌연 눈보라 속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아직 길바닥에 쌓인 눈이 없는데 샘재 길목에서 경찰차가 길을 가로막고 차량 출입을 통제하는 듯 하여 그냥 옆으로 비집고 통과하려고 들이대니 샘재에 눈이 많이 쌓여서 도저히 올라 갈수가 없다고 하며 앞을 막아선다.

 

경찰 아저씨의 벌린 손 넓이로  보아 한 30 센티쯤은 쌓인 듯한데 좀 과장된 표현이겠지만 대충 눈치로 보아 눈이 내리긴 많이 내린 모양 이다. 집이 상옥이라고 하며 꼭 가야  된다고 사정 이야기를 해 봤지만 야속하게도 안 된단다. 속으로 치밀어 오르는 것을 참느라 구시렁대며 할 수없이 차를 돌려 신광면, 기계면, 죽장면을 삐잉 돌아서 가사령을 넘기로 하고 비속으로 투덜대며 달려가는데 어머님은 뒤에서 내가 괜 시리 가자고했어 그렇다고 하시며 마 그냥 포항으로 돌아가자고 하신다. 

그래도 이왕 나온 걸 어떻게 돌아가느냐며 기계면 구지리를 지나 한티재 터널을 통과하여 죽장면에 들어서니 지금까지 내리던 비 대신에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면서 도로에는 눈이 하얗게 쌓여 자동차들이 비실비실 거북이걸음을 하고 있다.

 

얼른 4륜 구동으로 전환하여 눈길을 달려 빌빌대는 승용차들을 추월해가며 죽장을 거쳐 가사령을  오르는데 눈이 제법 많이 쌓여서 벌써 승용차들은 아예 통과가 불가능할 정도인데 함박눈은 계속하여 앞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내린다. 하얀 눈이 펑펑 쏟아지는 가사령에 올라 차를 잠시 멈추고 사방을 둘러보며 낙동정맥 산행 길 주변의 눈꽃 사진을 몇 장 찍은 후 재를 넘으니 고향 마을은 온통 하얀 설국이 아름답게 펼쳐진다.  

 

고향집 뒤로 난 둔세동, 하옥, 옥계 계곡으로 내려가는 신작로 가에 차를 먼저 돌려놓고 시골집으로 들어가는데 앞쪽에 안산도 눈 속으로 들어가 볼 수 없고 고향의 동방을 지키는 오무등과 향로봉도 함박눈 커튼 속으로 꼭꼭 숨어 버렸다. 오래 비워둔 집안 마당에도 장독대 위에도 하얀 떡가루가 소복이 쌓여있고 늙은 대추나무 가지에도  매실 나무 가지에도 하얀 백설 가루가 집안으로 들어온 복덩이처럼 소복소복 쌓인 모습을 바라보며 잠시 어릴 적 옛 추억들을 떠올려본다.

 

어릴 적엔 이곳 고향에 눈이 참으로 많이 왔다. 자고 일어나면 축담까지 수북이 싸이기를 거듭하여 겨울 내내 온 산천을 하얗게 덮은 눈은 늦은 봄까지 이어진다. 매년 11월 말 경에 벌써 이렇게 첫눈이 내리면 집집마다 골목에는 아이들과 강지들이 몰려나와 분산하게 뛰어다니며 각자 눈사람 만들어 놓고 돌아다니며 눈대중 자평회를 한다.

 

산천에 눈이 쌓이면 먹을 것이 없는 산새들이 마을로 무리지어 내려오는데 그 기회를 놓칠세라 바소쿠리 엎어서 그 아래 왕겨 등 새들이 즐기는 먹이를 뿌려서 참새 틀을 만들어 새끼줄 묶은 막대기로 고여서 새끼줄 끝을 방안에 가지고 들어가 문구멍으로 내다  보면서 참새가 들어가기를 기다렸다가 잡아당겨서 참새를 압사시켜 잡곤 했는데 참새는 그래도 꽤가 많아서 잘 안 잡히고 어리석은 촌놈 산새들만 많이 잡혀서 고소한 단백질을 선사했다.

 

검정 고무신에 새끼줄 칭칭 동여매고 지게 작대기 손에 들고 뒷동산으로 산토끼 사냥을 떠난다. 토끼는 꽤가 많아서인지 어리석어서인지 발자욱 만 보고 열심히 따라가다가 보면 잠시 후 제자리로 돌아와 같은 길로 다시 따라가게 되는데 발 자욱이 뒤엉켜서 분간이 어려워져 놓치곤 한다. 한 사람은 길목에 숨어서 지키고 있었으면 될 것을 그것도 모르고 따라 다니기만 했으니 실제로 눈 위에서 산토끼를 막대기로 때려 잡아 본적은 한번도 없다. 모두다 올무를 놓아서 한해 겨울에 수백 마리씩 잡곤 했다.

 

눈 내리는 밤은 포근하다 그러나 초저녁에 한껏 달구어진 온돌방은 새벽이 되면 방구들이 사늘히 식어가고 온 가족이 함께 덮던 커다란 이불 속에서 모인 발들은 온기가 남아 있는 아랫목으로 솔리는 데 너무 꼼지락거리거나 이불을 털썩거리면 찬 공기가 이불속으로 들어온다고 야단이라도 맞으면 새벽에 일어나 눈 쌓인 우물까지 눈길을 치러 쫓겨나야 했으므로 이럴 땐 그저 곤하게 자는 척 눈치를 잘 살피는 것이 상책이다.

 

겨우내 눈이 많이 내리는 겨울이면 집집마다 준비 해놓은 땔감 나무가 떨어지면 집 주위에 울타리를 먼저 뜯어서 때고 그것도 모자라면 눈 위로 나무를 하러 야산으로 올라가야만 한다. 눈이 꽁꽁 얼어붙은 길 위로 나무지게 지고 내려오다가 깊은 발자국에 가루눈 덥힌 곳을 잘못 디디면 그대로 푹 앞으로 고꾸라지면서 나무 짐은 머리위로 날아가고 꼬불친 무릅으로 절룩거리며 그래도 나무 짐을 지고 돌아와야만 했다. 눈 위에서 생솔까지를 베다가 부엌에 불을 집히면 연기가 심하게 나서 온 초가집 안에 눈물 콧물이 줄줄 골물이 말이 아니다.

 

눈이 많이 내려서 녹지 않고 얼어붙은 눈 위에 눈 설매를 타는데 요즘같이 잘 나가는 비닐 포대가 없던 시절이라 보리짚단을 양 다리 사이에 끼우고 막대기로 브레이크를 잡아가며 급경사 진 곳에서 눈 설매를 탇는데 지금 생각하면 위험하기 이를 데 없다. 어찌 국보1호가 온전하게 남아나서 지금까지 다들 가정을 지키고 사는지 신기한 일이다. 겨울이 오기 전에 나무를 잘 다듬어서 나무 스키를 만들어 놓은 아이들은 눈이 오면 제철을 만남 듯 다른 아이들의 부러움을 싸고 스키 한번 태워주고 누룽지든 고구마든 먹거리로 그 댓가를 톡톡히 받는다.....

 

따끈한 커피 한잔을 마시고 나니 이내 안절부절 하시면서 눈이 더 쌓이기 전에 얼른 돌아가라는 어머님 말씀을 뒤로하고 서둘러 무우 시래기랑 먹 거리 잔득 챙겨 실고 포항으로 돌아오는 길에 비닐하우스 풍경이 어우러진 곳에서 고향을 지키며 이 동네 살고 있는 초등학교 동기생 친구를 만나 잠시 내려서 악수를 하고 안부와 이야기도 나누어 본다. 최근 동기회랑 동기생들 경조사 모임에서 종종 만나기는 하지만 시골에 올 때 마다 들려보지 못하고 매번 내 볼일만 보고 몰래 빠져나오다가 오늘은 들킨 기분이라 미안한 생각이 먼저 든다.

  

가사령 오르는 첫 번째 비탈길에서 앞에 산타페와 승용차가 나란히 올라 가다가 산타페는 4륜 구동이라 스멀스멀 잘 올라가는데 뒤 따르던 승용차는 못 올라가고 빌빌거리며 눈가루와 매연을 잔뜩 품어 낸다. 뒤에 멀지 감치 서서 잠시 지치기를 기다리다가 4륜 구동의 진가를 발휘하며 맥이 다 빠져 길길 대며 업드리고 있는 승용차 옆을 유유히 지나서 올라온다. 요즘 경유 값이 많이 올라서 애물단지가 되긴 했지만 그래도 가끔 이럴 땐 한번씩 요긴하게 써먹는다고 하면서 가사령에 올라와 잠시 차를 멈추고 하얀 설국 풍경에 도취되어 사방을 둘러보며 정신없이 여기저기 하얀 눈꽃들을 카메라에 담아본다. 마눌도 몇 장 찍어주고 나도 한 장 찍혀본다.

 

가지 많은 소나무도 앙상한 잡목도 하얀 분 치장을 하고 눈을 잔득 껴안은 나무들은 가지가 무거워서 다소곳이 고개를 숙이니 함박눈은 시샘하듯 계속 내려서 차곡차곡 짓누르며 무거운 고문을 가한다. 시야를 흐리게 하는 눈발을 받으며 죽장으로 내려오는 길에 백설을 뿌려놓은 아름다운 굽이 마다 사진을 찍으려고 미끈미끈 설매 타듯 미끄러지면서 차를 세우니 마눌은 무척이나 불안해한다.  잠시 잠깐 차를 세우고 설경들을 담아가며 눈발이 점점 약해지는 길을 따라 포항으로 무사귀환 한다.

   

모처럼 하얀 눈을 뒤집어쓰고 올라오라고 손짓을 해대는 아름다운 산속으로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야 꿀떡 같지만 마눌은 눈 구경 실컷 했는데 뭣 하러 위험한데 눈 쌓인 산으로 올라가느냐며 무조건 싫단다. 시골을 떠나 올 때 어머님의 심심한 당부도 있고 하여 오늘은 순순히 산행을 포기하고 시키는 대로 다소곳이 포항으로 돌아온다. (2008.12.21 호젓한오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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