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축년 새해 일출
솔길 남현태
매년 그러하듯 신년 해맞이 길은 유난히도 춥다. 수년 전 까지는 해맞이 장소로 내연산수목원 전망대가 있는 산꼭대기에 새벽부터 올라가 추위에 벌벌 떨어야 했는데 그러다가 해가 구름 속으로 자취를 감추고 얼굴을 내밀지 않을 때면 허탈한 기분으로 돌아오기가 일수였다. 이제 그것도 개을러져 몇 년 전부터는 집 근처 영일만 내에 있는 환호공원에 올라가서 맞이하다가 작년부터는 파도가 있는 해안가 쪽으로 장소를 이동하게 되었다.
작년 무자년 일출맏이도 엄청 추웠는데 오늘 기축년 해맞이도 날씨가 무지 춥다고 하여 작년과 같이 등산복을 겹겹이 껴입고 꼬깔모자 푹 눌러쓰고 등산용 얼굴 가리개로 단단히 복면까지 하고서는 일출시간 7시 32분에 맞추어 6시 50분경에 마눌 과 함께 집을 나선다. 아이들이 어릴 적에는 함께한 추억도 있건만 지금은 작은 아들은 군대에 입대하여 8사단 오뚜기 부대 박격포 보병으로 추위와 싸우면서 고생하고 있고, 큰 아들은 재대하여 복학 준비 중인데 지금 국토대장정 전국일주 여행 중이라 전남 해남에 머물면서 일몰 일출 구경을 즐기고 있단다.
누가 보아도 못 알아볼 정도로 두루 뭉실하게 덕지덕지 차려입고 해안가로 걸어가는데 더러는 이불 같은 것으로 둘둘 말아 걸치고 가는 사람 모두들 제각기 추위를 막을 수 있는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하여 차가운 갯바람과 싸우고 있다. 대체로 옷을 허술하게 입고 발발 떨며 뜨는 해를 기다리던 젊은 연인들이 하는 말 "이렇게 춥다가도 해만 올라오는 것을 보면 금방이라도 몸이 누그러 지겟다"고 속삭이는 기대에 찬 모습들이 아름답다.
해안가 도로를 따라 걸어가는데 환호공원 앞 도로는 이미 몰려온 외지의 차들로 주차장이 되어있고 더러는 차안에서 숙식을 해결한 듯 날카로운 새 밑 추위에 초췌해진 모습들이다. 해안가 모래톱에 촛불을 여러 개 켜놓고 해가 떠오르기를 기다리며 바다 쪽을 바라보며 연신 절을 하면서 소원을 빌고 있는 십여 명의 무리도 있다. 많은 구경꾼들이 꾸역꾸역 모여들고 있는 환호공원 입구를 지나 해안가를 따라서 작년에 해맞이 하던 그 곳으로 걸어간다.
영일만 어귀에도 선잠을 깬 무역선들이 무리로 정박해 있고 어느덧 시간은 일출 시간에 이르러 하늘은 대체로 맑은 편인데 해가 솟아올라야 할 동녘 하늘에는 검은 구름 띠가 가리 워 저 기축년 새해 일출을 방해하고 있는 것은 무슨 조화인가 호랑이 꼬리위의 구름 사이가 벌 것 게 변하고 해는 문틈 사이로 빼꼼히 고개를 내밀다가 새악시 처럼 선잠 깬 부시시 한 얼굴 부끄러워 잠시 화장을 고치려는 듯 자취를 감추니 기다리다 지루함을 참지 못해 날아 올라간 갈매기의 마중으로 모습을 드러내는데 보드라운 새빨간 그 아미 간곳없고 이내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영일만을 달구며 귀여운 어린시절 추억 없이 갑자기 커 버린 징그러운 아이처럼 그렇게 기축년 새해 아침을 열어간다.
새 정부 출범 등으로 희망이 가득했던 작년 무자년 일출은 쥐가 구멍에서 '짱' 하며 나오듯 빨갓고 동그란 고운 자태를 다소곳이 밀어 올려 많은 구경꾼들의 환희와 갈채를 한 몸에 받았는데, 작금의 어려운 경제와 처진 민심을 말하듯 오늘 기축년의 일출은 황소가 마구간에서 고삐에 끌려 나오기 싫어 바동대며 버팅기 듯이 구름 사이로 나왔다 들어갔다 쭈빗 쭈빗 거리며 시간을 끌다가 환희와 희열도 없이 어느덧 몰골이 흐트러진 히 멀건 모습으로 슬그머니 떠올라 심기일전이라도 하려는 듯 차가운 영일만 깊숙이 따뜻한 햇살 드리우고 뜨겁게 달구어 올리는 모습이다.
일렁이는 영일만은 한반도의 심장 박동소리 알리듯 몰아친 파도 데트라포트에 대가리 드리박고 힘차게 튀어 오르며 새해를 알리고는 다소곳이 밀려간다. 새해의 아침에도 쉴 새 없이 분주한 포철의 굴뚝 아가리는 연신 연기를 뿜어내고, 파도는 팅겨 오르면서 돌아서는 발길들을 멈추려고 안간힘을 쓰면서 재주를 부려 보건만 돌아 갈길 바쁜 구경꾼들의 엔진 신음 소리와 함께 영일만은 그렇게 또 경인년을 기약한다. 우리들 보금자리가 있는 북부 해수욕장 주변의 아파트 단지에도 기축년 새해의 다사로운 햇살이 가득 비칠 때 갈매기도 신이 나서 수면 위를 빙빙 비행하면서 영일만 새해 아침을 알린다.(2009.01.01 호젓한오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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