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왕산, 수달래 축제..가메봉
* 위 치 : 경북 청송군 부동면
* 일 자 : 2009. 05. 03(일)
* 날 씨 : 맑음
* 동행자 : 토끼와 거북이
* 산행 코스 : 주왕산 주차장- 제3폭포- 내원동- 가메봉- 후리매기- 제2폭포- 대전사- 주차장
* 산행 거리 : 약 14.2 Km
* 산행 시간 : 약 6시간 소요
오월 일일 근로자의 날이 주말로 이어져 3일 연휴가 된다. 몇일 전에 마눌이 TV 에서 청송 주왕산에 수달래 축제를 한다고 하더라면서 은근히 가고싶어 하는 눈치를 보이길레 일요일날 같이 다녀오자고 약속을 하였는데.. 어제 저녁 부터는 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비가오면 우산을 들고 라도 다녀오자고 하면서 아침 일찍 출발하기로 해놓고 또 늦은 시간 잠자리에 들다보니 아침에 일어나니 이미 출발 약속 시간인 7시가 지나버렸다.
서둘러 준비하여 8시가 조금 지나서 집을 나서니 비 그친뒤의 날씨가 차츰 차츰 맑아지더니 이내 무서운 뙤약 볕이 내려 쫗이고 결국은 한 여름의 무더운 날씨로 변해 버린다.
오전 10시 30분경에 주왕산 주차장에 도착하여 조금 비싼 주차료 5,000원을 주고 수달래 축제장에 들러보니 아직 모인 사람들이 별로 없다. 먹거리 푸짐한 상가 골목을 지나서 대전사 앞에서 문화재 관람료 명목으로 인당 2,000원씩 4,000원을 지불하고 본전 뽑을라고 대전사 안으로 들어가 둘러보고 사진 몇 장 담아가지고는 이내 암봉들이 즐비한 주왕산 골짜기로 스며들어 간다.
골짜기 입구 개울 물가에 철쭉을 닮은 수달래 꽃이 피어있기는 한데 가까이 접근을 할수가 없으니 사진도 찍을수 없고하여 당겨서 흐릿하게 몇장 담아보고는 계곡 양쪽에 초록 치마를 두르고 앉아있는 주왕산의 암봉들을 열심히 카메라에 담아가면서 제3폭포 까지 둘러보고는 내원동을 거처 가메봉에 올라서 절골 풍경을 내려다보며 점심을 먹고는 후리메기 골짜기로 내려선다..
* 주왕산 수달래 축제장 입구 풍경..
* 축제장 안은 아직 설렁하네요..
* 개울 건너에 알록달록 수달래 아가씨들인가 봅니다..
* 기념품.. 먹거리 즐비한 상가를 지나서..대전사 쪽으로 올라갑니다..
주왕산 국립공원 : 면적 105.6㎢. 주왕산(721m)은 기암절벽이 병풍처럼 둘러 있다 하여 석병산(石屛山)이라고도 하며, 주방산(周房山)이라고도 한다. 중심부는 금은광이산(812 m)과 주왕산을 잇는 지역이며 태행산(太行山:933m)·연화봉(蓮花峰)·장군봉(將軍峰) 등을 거느리고, 이들 사이를 월외(月外)·주왕·내원(內院) 등의 계곡이 흐른다. 대전사(大典寺)·광암사(光岩寺)·연화사 등의 절과 주왕암 ·백련암(白蓮庵)·연화암 등의 암자와 기암(旗岩)·석벽암·급수대(汲水臺)·정암(淨岩)·아들바위 등의 기암과, 주왕굴·무장굴(武藏窟)·연화굴 등의 굴, 제1·2·3 폭포 외 월외·주산 폭포 등이 주요 관광자원을 이룬다.
망개나무·눈측백나무 등 393종의 식물이 자라고, 59종의 산짐승, 콩새 등 산새 100여 종이 서식한다. 주왕산 4대명물의 하나인 수단화(水丹花)를 비롯하여 망개나무·고양목·산작약 등이 봄에 만발하며, 복령(茯笭)·백출(白朮) 등의 약초와 송이버섯도 유명하다. 산허리에 높이 6 m의 자하성(紫霞城)이 15km 가량 뻗쳐 있고, 괴내[塊川] 중류에 있는 달기물 약수터도 찾는 사람이 많다.
주왕산은 1976년 3월 12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고 그다지 높지는 않지만 산세가 웅장하고 특이한 기암괴봉으로 이루어져 있어 장관이다. 설악산 및 영암 월출산과 더불어 남한의 3대 암산으로 손꼽히기도 한다. 주방천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대전사에 이르러 주왕산의 진면목이 펼쳐지기 시작하며. 절에서 오른쪽으로 계류를 끼고 올라가면 우람하게 치솟은 기암을 필두로 암벽과 기암괴봉이 치솟아 마치 바위병풍을 두른 듯하다고 하여 석병산(石屛山)이라고 불렸다.
그러다가 주왕산으로 이름을 바꾼 것은 다음과 같은 전설에 의해서다.
중국 당나라 덕종 15년(799년, 신라 소성왕 1년), 후주천왕(後周天王)을 자칭하고 난을 일으켰던 주도(周鍍)가 당나라 군사에게 패하여 쫓겨 신라의 석병산으로 숨어든다. 석병산의 천연암굴에 숨어 있던 주도는 암굴 입구의 벼랑에서 떨어지는 물줄기에 세수를 하러 나왔다가 당나라 마(馬)장군의 화살에 맞아 죽는다. 이에 따라 주도가 숨었던 암굴을 주왕굴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또한 그 후 나옹화상(1320∼1376)이 석병산을 주왕산으로 고쳐 불러야 이 고장에 복이 온다고 하여 산이름을 바꾸었다는 전설이있다.
* 대전사에서 바라본 기암 모습..
* 아름다운 접벗꽃으로 감싸봅니다..
* 접벗꽃이 참 아름답습니다..
* 탐 스럽게 늘어지네요..
주왕산 유래 : 주왕산은 역사적으로 신라시대에는 석병산, 신라말부터 주왕산으로 불리었으며 조선시대에는 주방산 또는 대둔산(시증동국여지승람1530, 대동여지도1861,청송군읍지1861), 주왕산(양양기구록1757, 주왕산지1833)으로 불리었다. 이러한 기록은 관에서 발간된 문헌들은 주방산, 대둔산으로 불렀으나, 민간에서 발간되 문헌에서는 주왕산으로 불린 것을 알 수 있으며 이는 주왕전설에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있다. 그 후 청송군지(1937)에서 공식적으로 주왕산으로 기록한 후 정식적으로 지명을 가지게 되었다. 신라 선덕왕의 후손인 김주원이 이곳에 와 있었다 하여 주방산이라 하였고 , 신라말엽 중국 당나라 사람 주도가 자칭 주왕이라 칭하고 반란을 일으켰다가 패한뒤 이곳에서 은거하였다하여 주왕산으로 불리고 있다.
주왕의 전설 : 진나라에서 복야상서 벼슬을 지낸 주으라는 사람의 9대손으로 태어났으며, 이름이 주도였던 그는 어려서부터 천품이 범상치 않았을 뿐 아니라, 5세때 이미 글을 배워 11세 때에는 육도삼략(六韜三略)을 통달하였고 천문지리에도 능했다고 한다.
주도는 이때부터 왕후장성을 꿈꾸면서 “황하강의 물을 들이마시고 태산을 갈아 없애겠다”고 말했다 한다. 그러나 주도는 진나라의 후손 중에 큰인물이 없음을 한탄했는데, 그는 성인이 되자 장사 1백명을 거느리고 웅이산에 들어가 1만여 명의 군중을 모와 남양땅에 웅거하며, 이때가 당나라 덕종15년(799년, 신라 소성왕1년)이었다.
진나라의 후예인 주도가 후주의 천황임을 자청하며, 반기를 들고, 당나라의 수도 장안을 쳐들어가 대패하였다. 싸움에 패배한 주도는 숨을 곳을 찾아 요동을 통하여 신라로 도망을 왔다고 한다. 그때 주도를 따르는 군사는 1천여 명에 불과할 뿐이었다.
그 후 관동지역을 거쳐 진성(지금의 청송군 진보면)에 다다른 주왕은 석병산(주왕산의 옛이름)이 매우 깊고 험준하다는 말을 듣고 이곳에 숨어들었으나, 식량이 없었으므로 인근 주민의 식량을 약탈하는 등 노략질을 일삼게 되자 석병산에 많은 산적이 살고 있다는 소문이 온 나라안에 퍼졌다. 이때 당나라 조정에서 주도가 신라땅으로 도망갔음을 알고 신라에 주도를 잡아 줄 것을 부탁해 왔다. 당나라로부터 주도를 잡아달라는 부탁을 받은 신라황제는 석병산 일대의 산적들이 주도와 그의 군사들임을 뒤늦게 알아차리고 마일성 장군과 그의 5형제들에게 명하여 주도를 잡아들이라고 명령하였다. 결국 마일성 장군에게 패한 주도는 화살을 맞아 죽었다.
* 화사한 목단꽃이 경내를 비춥니다..
* 이것이 진짜 모란꽃 색깔이네요...ㅎ
주왕산 대전사 : 대한불교조계종 제10교구 본사인 은해사의 말사이다. 672년(신라 문무왕 12) 의상(義湘)이 창건하였다. 919년(고려 태조 12) 눌옹(訥翁)이 창건하였다는 설도 있다. 절이 있는 산과 절의 이름은 주왕의 설화에서 유래한다. 《주왕내기(周王內記)》에 따르면, 중국 당나라의 주도(周鍍)라는 사람이 스스로 후주천왕(後周天王)이라 칭하고 군사를 일으켜 당나라에 쳐들어갔다가 크게 패하고 신라로 건너와 주왕산에 숨었다. 이에 당나라에서 신라에 주왕을 없애달라고 부탁하자 마일성 장군 오형제를 보내 주왕의 무리를 죽였다고 한다. 그 뒤부터 주왕이 숨었던 산을 주왕산이라 하고, 절은 주왕의 아들 대전도군(大典道君)의 이름을 따서 대전사라 하였다는 것이다. 절 이름은 나옹화상 혜근(惠勤)이 붙였다고 한다.
신라의 주원왕(周元王)이 수도했던 산이라서 주왕산이라고 부른다는 설도 있다. 주원왕은 태종무열왕의 8대손인 김주원(金周元)을 말하는데, 김주원이 김경신(뒤의 원성왕)에 밀려 왕위에 오르지 못하자 이곳에서 수도를 하다가 명주(지금의 강릉)로 가서 강릉 김씨의 시조가 되었다는 것이다.
창건 이후 자세한 연혁은 전하지 않는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주방사(周房寺)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임진왜란 때는 사명대사 유정(惟政)이 승군을 훈련한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조선 중기에 불에 탄 것을 다시 중창하여 오늘에 이른다. 부속 암자로는 백련암(白蓮庵)과 주왕암(周王庵)이 있다. 이 중 백련암은 주왕의 딸 이름에서 유래하며, 옛날에는 이 암자에 큰 종이 걸려 있어 아침 저녁으로 은은한 종소리가 울려퍼졌다고 하나 지금은 걸려 있지 않다. 주왕암은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나오는 주방사로 추정되며, 나한전과 가학루·산령각 등이 남아 있다.
대전사 건물로는 보광전(普光殿)과 명부전·산령각·요사채 등이 있고, 유물로는 보광전 앞 삼층석탑 2기와 사적비·부도 등이 남아 있다. 이 중 보광전은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02호로 지정된 정면 3칸의 다포계 맞배지붕 건물이다. 내부에 임진왜란 당시 이여송(李如松)이 유정에게 보냈다는 친필 서신을 목판으로 음각한 것이 보관되어 있다. 보광전 앞의 석탑은 근처에 흩어져 있던 석탑재를 짜맞춘 것이다.
절 오른쪽 밭에는 우물을 메운 자리가 남아 있는데, 이 우물에 얽힌 전설이 전한다. 본래 이 절에서는 부처에게 올리는 물을 매일 냇가까지 가서 길어오곤 하였다. 이를 귀찮게 여긴 승려들이 조선 중기에 앞뜰에 우물을 파고 그 물을 길어서 청수(淸水)로 사용하였다. 그러나 곧 불이 나서 전각이 불에 타고 말았다. 뒷날 한 도사가 와서 불이 난 이유를 설명하기를, 이 절의 지세는 배가 바다에 떠서 다니는 부선형(浮船形)인데 우물을 판 것은 마치 배 바닥에 구멍을 낸 것과 같다고 하였다. 이 말을 듣고 다시 우물을 메웠다 한다. 이밖에 노루가 우물에 빠져 죽은 뒤 메웠다는 설도 있고, 이 물을 마신 승려들의 힘이 넘쳐 난폭해지는 바람에 인근 주민들의 원성이 많아지자 메웠다는 이야기도 있다. 절이 들어선 산은 1976년 3월 26일 주왕산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 주왕산의 대표선수 기암
주왕산의 기암 : 주왕산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고개를 들어 보이는 것이 바로 이 기암으로 산에 들어서는 사람을 압도하는 위엄을 갖추고 있다. 주왕이 신라 마장군과 일전을 벌일때 이바위에 이엉을 두르고 쌀 뜨물을 흘러 보내 적을 현옥시켰다는 전설이 있으며 그 웅장한 자태는 주왕산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준다.
* 대전사 경내풍경..
* 대전사 후문옆에 세워진 커다란 돌탑..
* 골짜기로 들어가는 산행로가 한산 한 편입니다..
* 아들바위에 피어난 수달래
아들바위 : 기암에서 내부로 깊숙히 이어지는 길옆 냇가에 큰 바위가 하나 있는데 이름하여 아들바위란 것이다. 왼팔로 던진돌 이 그 바위에 얹히게 되면 생남을 한다는 전설이 있어 호기심에서 누구나 한번씩 왼손으로 돌을 쥐고서는 바위 반 대편에 돌아서서 양다리 사이로 던지고 지나간다. 그래서 그 바위에는 언제나 넘치도록 자갈이 쌓여져 있다. 봄이면 수달래가 아들바위를 스쳐가는 여울물에 반사되어 아름다운 조화를 이룬다
* 간 밤에 내린 비로 초록은 싱그러움을 더하고..
* 주왕의 암봉들은 초록 치마를 두르고 있네요..
자하성 : 제1팔각정 앞으로 해서 성재에 이르기까지 산성의 흔적이 아직도 남아있으며, 산성이 지나가는 성재를 고려시대에는 자하동이라 불렀기 때문에 그 이름을 따서 자하성이라 불리고 있다
* 촛대봉 : 주왕암 뒤편의 봉우리..
* 관음봉 : 관음봉(觀音峰)은 주왕암 뒷편에 있는 묘한 암봉으로, 그 생김새가 관음보살을 닮았다고 하여 관음봉이라 부른다
급수대 : 급수대는 망월대에서 50m지점에 위치해 있으며 신라37대 선덕왕이 후예가 없어서 무열왕 6대손인 상재 김주원을 38대왕으로 중대 및 각부대신들이 추대하였는데 즉위 직전에 돌연 김경신이 왕위에 오르고자 내란을 일으킴으로 김주원이 왕위를 양보하고 석병산으로 은신하여 대궐을 건립한 곳이다.
대궐터는 급수대 정상이라고 전해지며 지금도 유적이 남아있다. 김주원이 대궐을 건립하여 은둔생활을 할 당시 산상에는 샘이 없었으므로 계곡의 물을 퍼올려서 식수로 하였으므로 급수대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급수대앞 오솔길을 지나노라면 계곡쪽으로 기울어진 깍아지른 절벽이 금새 무너질듯하여 식은 땀조차 흐르게 된다.
* 신록이 우거진 산책길..
* 돌아본 급수대..
* 시루봉..
시루봉 : 시루봉은 그 생김새가 떡을 찌는 시루같아서 시루봉이라 불리우는데 밑바닥에서 불을 때면 연기가 시루봉 전체를 감싸면서 봉우리 위로 치솟는다고 한다. 옛날 어느 겨울철 도사가 이바위 위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신선이 와서 불을 지펴 주었다는 전설을 간직하고 있으며 멀리서 보면 마음씨 좋은 할아버지처럼 보인다.
* 산사 음악회가 이제 막 시작되었습니다..
학소대 : 경사 90도의 가파지른 절벽의 모습을 한 학소대는 급수대와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다. 해방전 이 정상지점에 청학, 백학 한쌍이 살고 있었는데 어느날 일인(日人)포수가 백학을 쏘아 잡아 버린 후, 날마다 슬피 울며서 부근을 배회하던 청학마저 자취를 감추어 버리고 지금은 옛 보금자리만 남아있다고 전해져 온다. 이처럼 학소대는 애닯은 사연이 얽혀 있으며, 주왕산의 경관을 한결 돋보이게 하는 기암이기도 하다. 오른쪽의 바위는 마치 병풍을 세운듯하여 병풍바위라 부른다.
* 이제 본격적인 암봉의 절경속으로...
* 나무 다리로 든든하게 만들어진 길은..
* 옛날에 바위 허리를 깍아서 만든 길위에 놓여져 있네요..
* 주왕산 제1폭포(선녀폭포)
학소대를 조금 지나면 제1폭포(일명: 선녀폭포) 입구가 보인다. 옛날에는 이 폭포에 다다르자면 쇠사슬을 붙잡고 겨우 오르내렸는데 일제강점기 무렵 내원에다 제탄전습소(製炭傳 習所)를 설치하기 위하여 차도를 개설하느라고 그토록 아늑하고 신비하기 그지없었던 자연의 신비경을 훼손하여 버렸다.
폭포 주위는 암벽으로 둘러 싸여져서 바람한점 없이 고요하며, 다만 그 정적을 깨뜨리는 것은 영원히 끊이지 않을 폭포소리뿐이다. 그 물보라 속에는 항시 오색무지개가 어리고 있어 당장 이라도 선녀가 하강할 듯 절경을 이룬다. 소(沼)는 70평 남짓하게 이루어져서 물고기떼가 놀고 있으며 옛 전설에 의하면 소 깊이가 명주꾸리 하나를 다 풀 정도로 깊었다고 한다. 암벽 틈바구니에는 기화요초가 보석같이 아름답게 피어 있으며, 암벽사이로 트인 구만리 장천엔 구름이 뭐 그리 바쁜지 쏜살같이 지나간다. 폭포 바로 위에는 선녀탕과 구룡소가 있으며, 선녀가 내려와 목욕을 하고 신선대로 간다고 한다. 산 아랫마을 상의리에 가뭄이 심할 때면 이곳에 와서 기우제를 지내면 3일 이내에 비가 왔다고 한다.
* 수량이 많지 않아서.. 그리 실감은 나지 않습니다..
* 가다가 돌아보니..
* 제1폭포 바로 위에..선녀탕과 구룡소가..
* 구룡소..
* 주왕산 제3폭포 : 상, 하 2단으로 되어있다..
* 물이 많이 줄어있습니다..
* 제 3폭포.. 상단 폭포 풍경..
* 물이 졸졸.. 폭포 흉내만 내고 있네요..
* 가메봉 쪽으로 발길을 옮깁니다..
* 내원마을 철거 표지석..
내원마을 : 마을이 상의리에서 가장 안쪽에 위치하고 또한 내원사라는 절이 있었다고 하여 내원마을이라 불린다.
* 그 누구가 만들었나.. 정성을 들인 돌 탑이..
* 개울 건너 집터 주변에도 여러개의 돌탑이 세워져 있네요...
* 마을 오솔길을 지나서..
* 골짜기를 따라서 가메봉 자락으로 올라갑니다..
* 이제야 싱그러운 녹음이 제대로 하늘을 가려주네요..
* 고추나무꽃...?
* 초록 물결에 가슴이 탁 트입니다..
* 돌아보니..
* 너덜길을 올라갑니다..
* 벌께덩굴..
* 높이를 알수없는 쭉쭉뻗은 낙엽송들...
* 입은 둥글레 처럼 생겼는데..꽃이...?
* 노란꽃...독초라고 하던데...?
* 저기 사거리 목쟁이가 보이네요..
* 이제 가메봉이 다되어 가네요...
* 각시붓꽃인데...?
* 하얀꽃은 처음봅니다..
* 연달래...
* 가메봉 정상은.. 절골로 올라온 산꾼들로 붐빕니다..
석름봉(가메봉) : 언제부터 가메봉으로 지명이 바뀐 것은 알 수 없으나 산지당의 중턱에 있는 가마를 닮은 가메바위에서 이름이 유래된 것으로 추측된다 .
* 이 바위 봉우리가.. 석름봉인가 봅니다..
* 내려다 본 절골 풍경...
* 여기에 돌탑도 있네요..
* 절벽과 노송이 바라 보이는.. 요기서 점심을 먹습니다..
* 하산길에는 연달래가 한창입니다..
* 골짜기에 내려오니..
* 여기가 사창동인가 봅니다..
* 초록을 비추는 개울물..
* 어두울 정도로 우거진 골짜기 입니다..
* 후리메기를 지나다.. 돌아보니..
* 이폭포를 지나온 전망 바위에서 내려다본..
* 주왕산 골짜기입니다..
* 태양의 방향이 바뀌니..
* 올라갈때 와는 다른 풍경을 연출합니다..
* 시루봉 모습도..
* 선명하게 달리 보이네요..
* 급수대...
* 급수대 풍경.. 여러장 담아봅니다..
* 주왕암과 뒷쪽 촛대봉 풍경..
* 개울가의 수달래..
주왕의 피가 꽃이 되었다는 수달래 : 오랜 세월을 두고 냇가에 뿌리를 박고 있지만 붉은 수단화는 그 아름다운 자태를 잃지 않은 채 슬픈 사연을 안고 다소곳이 꽃을 피우고 있다. 수단화 또는 수달래란 이 꽃은 다른 지방에선 좀처럼 구경할 수 없는 꽃으로 여기 주왕산 계곡에서만 피는데 꽃 빛깔은 진달래와 비슷하나 약간 더 붉은 편이며 생김새는 철쭉(연달래)과 비슷하고 그 키나 나무의 생김새도 철쭉이나 진달래와 닮은 데가 많다. 5월초에 계곡을 따라 수단화가 피면 꽃이 냇물에 비춰 붉은 물이 흐르는 듯해서 볼 만 하다.
이와 같이 아름다운 수단화에는 남모르는 서러움이 숨어 있으니 주왕이 이곳에서 신라군사와 싸우다 힘이 다해 마장군 형제의 화살에 맞아 잡히자 그의 피가 주왕굴에서 냇물에 섞여 계곡을 따라 붉게 흘러 내렸는데 그 이듬해부터 이 주왕산에는 이제까지 보지 못하던 꽃이 계곡과 내를 따라 피기 시작했으며 사람들은 주왕의 피가 꽃이 되어 핀 것이라 해서 수단화(壽斷花)라 이름 하였다고 한다.
그 뒤 해를 거듭할수록 냇가의 수단화는 더욱 퍼져 주왕산을 아름답게 장식해 왔으며 특히 5월이 되면 어김없이 피어나 우아한 모습으로 사람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 아들바위의 수달래..
* 기암..
* 장군봉
장군봉 : 중국의 주도가 쫓겨 주왕산에 와 도적질을 일삼았고, 조정에서 마일성 장군이 상장군(上將軍)이 되고 이성(二聲)은 선봉장(先鋒將),삼성(三聲),사성(四聲),오성(五聲)은 후장군(後將軍)이 되어 군사를 이끌고 나아가 진을 쳤다. 그러나 마장군의 군사들은 선뜻 주왕을 칠 엄두를 내지 못하였다.
주왕의 군사들이 기암봉에 이엉을 씌워 노적가리처럼 위장하여 군량미가 많은 듯이 보이게 하니, 마장군 형제들은 주왕의 군사가 많은 것으로 여기고서 감히 공격하지 못한 것이었다. 오랜 세월이 지난 뒤에야 그 사실을 알게 된 마장군은 장군봉에 올라 위장해 놓은 노적가리를 향해 활을 쏘았는데, 기암의 중간쯤에 바위가 뚝 떨어져 나간 듯한 흔적이 바로 마장군이 화살을 쏘아 바위가 떨어져 나간 것이라고 한다.
* 대표선수..당당한 기암풍경 다시 담아보고..
* 수달래 인지 연산홍 인지는 몰라도..
* 하여간 비슷하게 생겼습니다...ㅎ
* 대전사에서 바라본 기암..
* 접벗꽃과 어우러 담아봅니다..
* 주차장으로 돌아오다가 마지막으로... 장군봉과.. 기암.. 풍경..
가메봉을 돌아서 맨 아래 주차장에 도착하니 오후 4시 30분이다. 수달래 축제장도 어느덧 파장이 가까워져 일부 사생대회 시상식 을 하는 소리는 들리지만 구경꾼들은 없고 상을 주고 받는 사람들 뿐인듯하다. 유료 주차장을 빠져나오니 주왕산 입구 넓은 도로 양쪽에 무료 주차한 자동차들로 꽉 메워져 있는 것을 보니 사람이 많이 왔어 그런지 주차비가 아까워서 노상주차를 했는지는 몰라도 하여간 오늘 사람들이 많이 오기는 왔는가 봅니다. 오후 6시가 넘은 시간에 포항에 도착하면서..오늘 주왕산 가메봉 수달래 축제 산행을 마무리 해본다..
2009.05.03 호젓한오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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