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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린 추억

호젓한오솔길 2009. 5. 16. 13:24

 

 

 아린 추억

 

 

                솔길 남현태

 

 

눈동자 움직이면 따라다니는 이상한 놈이 있다. 피로해서 그런가 보다 하고 별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 자고 나도 계속 정신을 혼란케 한다. 주말 아침 일찍 근처 안과를 찾았는데 눈동자 키워놓고 이리저리 딜다 보더니 과거에 눈을 치료한 적이 있느냐며 처음에 치료한 병원으로 가서 정밀 검사를 받아 보라며 찜찜한 소견서를 건네준다. 

 

나이 서른여섯 되던 황금 시절 가을비 내리는 어느 날 경북 울진군에 있는 불령 계곡으로 회사 야유회를 가려고 미니버스를 타고 가던 중 울진군 기성면 7번 국도 커브 길에서 마주 오던 냉동 트럭과 충돌하여 아홉 명이 부상하는 사고를 당하는 와중에 중상을 입어 오랫동안 고생을 하고 인생의 전환기가 되어버린 아픈 기억을 더듬어 본다.

 

일요일 아침에 일어나 회사 야유회를 갈려는데 왠지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 부산에서 직원 결혼식이 있어 다녀와야 한다고 회사에다 몇 번이나 건의를 해 보았지만, 사장님의 사업부별 간부 사원들과 만남의 자리로 이번 주는 주조부와 중기부가 대상이니 전원 무조건 참여하라고 한 터라 집을 나서니 구름이 많이 끼어 있고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져 내릴 것 같은 날씨에 투덜대면서 개인 준비물인 돗자리 하나 걸머메고 약속 장소인 육거리 시공관 앞으로 택시를 타고 간다.

 

사장님이 워낙에 술을 좋아한 터라 매번 직원들에게 폭탄주를 꼭 돌린단다. 지난번 광산기계 사업부 야유회 때에는 모두 폭탄주에 얼 반 죽었다는 이야기가 전설처럼 떠돌아 모두 차를 타기 전에 겁부터 먹고 가게에 들어가 한창 유행하는 술 취하지 않는다는 드링크제를 함께 싸서 마시고 만반의 준비를 하고 미니버스에 올랐다.

 

내가 앉은 곳은 좌측 창문으로 맨 뒷자리 바로 앞자리로 발아래 타이어가 있어 앉기가 좀 불편한 자리였다. 모두 타고 출발하기 전 인원을 점검한 결과 다른 일로 불참한 용감한 2명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 용기에 감탄한다. 순간 결혼식에 가도 되는걸 괸시리 왔다는 생각을 하며 찜찜한 마음으로 출발하는 길에는 어느덧 비는 두둑 두둑 내리고 어설프기 그지없는 날씨다.

 

사장님이 탄 그랜저 승용차와 만나기로 한 화진휴게소에 내려서 모두 용변을 보고  기다리는 동안 파도 치는 바닷가에서 돌을 던져가며 기분 전환을 하고 부사장님은 버스에서 내려 승용차를 타시고 총무부장은 승용차에서 버스에 옮겨 타고 버스에 자리가 모자라 더러는 통로의 간이 의자에 앉았다. 잠시 후 벌어질 사고에 대해 알지 못하고 순간의 선택이 잠시 후에 희비가 엇갈리는 순간이다.

 

달리는 차 안에서 캔 맥주를 나누어 마시고 아무런 생각 없이 멍하니 차창 밖으로 비 오는 풍경을 감상하고 있는데 어느 순간 휘청거리면서 우지직 소리와 함께 의자 밑으로 처박히고 말았다. 비명이 들리고 나도 모르게 비명을 지르며 일어나려고 하니 왼쪽 팔이 말을 듣지 않으며 양쪽 눈과 얼굴에 유리 조각이 들어가 박히어 눈을 뜰 수가 없고 얼굴에는 빗물인지 핏물인지 줄줄 흘러내리는 것을 느낌이 온다.

 

정신은 있었으나 앞을 보지 못하는 공포 속에서 사고가 이런 것이며 사람이 죽을 때 이러다가 죽는구나 하는 무서운 생각이 든다. 의자 밑에서 허우적대며 기어 나오니 동료들이 차 밖으로 들어내었다. 나도 모르게 으으으 내 팔이 부러진 것 같다는 부상 정도를 알렸다. 앞은 볼 수가 없었으나 왼팔이 부러진 것과 안면이 많이 파손된 것을 느꼈으며 감각으로 보아 이슬비가 내리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으며 눈은 어떻게 되었는지 알 수가 없다.

 

지나가는 승용차에 태워져 포항 쪽으로 달리면서 빗길이라 미끄러워 빨리 달리지는 못하는 것 같았으며 전신에 추위를 느끼며 오는 도중에 파출소에서 사고 신고를 하는 등 장시간이 소요되어 영덕 아산병원에 도착하여 상의를 모두 가위로 잘라내는 순간 옆에 서 있는 동료들의 놀라는 기척을 듣고 왼쪽 팔의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알수 있었다.

 

나중에 느낀 것이지만 소매가 긴 티셔츠 위에 스포츠용 땀복을 입은 관계로 관절 파상골절에 대한 상황 판단을 못 하고 그냥 팔이 부러진 줄 알면서도 피가 많이 나는 얼굴에만 수건으로 누리면서 팔은 그대로 부축 되어 2시간 이상 후송된 것이 후유증을 남기는 잘못된 방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얼굴과 눈을 세척하니 밝은 빛이 눈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느끼면서 일단 안심이 되어 어떠냐는 의사의 질문에 괜찮은 것 같다는 대답을 할 수가 있었다. 아산 병원에서 응급치료를 마친 후 119 구급차에 태워져 포항 선린 병원으로 후송되는 도중에 몰려드는 한기에 입으로는 계속 토해낸다. 도중에 119 구급차가 다른 차와 접촉 사고를 내어 보상하라는 상대방 차에게 우리 동료들이 돈을 지불하는 소리가 들렸으며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포항 선린 병원 응급실에서  CT 촬영 등 종합검사를 마친 후 상처부위에 세척 및 봉합 시술을 할 때는 얼마나 고통이 심한지 이를 악물고 비명을 질러야만 했다. 중환자실에 입원하여 이튼날 까지 눈이 보이지 않다가 3일째 되는 날 눈이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안과의사 소견서를 받아 대구 영남대학병원으로 옮기기로 중론이 모아진 모양이다.

 

영남대학병원 응급실에서 하루를 지내고나서 정형외과에 입원하여 왼쪽 팔이 상처가 아물도록 치료를 한 후 다시 절개하여 금속 내 고정 수술를 받으며, 안과에서 눈이 망막 파열 및 초자체 출혈이란 진단을 받고 수차례에 거처 양쪽 눈에 레이저 시술을 받고는 안과 치료가 끝나는 시점에 포항의 정형외과로 내려와 입원 치료를 하다가 12월 말에 퇴원을 하여 약 2년간의 통원치료와 금속 내 고정 제거 시술을 받아야만 했던 아린 추억이 주마등처럼 이어진다. 단비가 발목을 잡은 주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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