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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산 눈바람에 취하여

호젓한오솔길 2009. 7. 13. 15:21

 

 

동대산 눈바람에 취하여

 

 

                                솔길 남현태 

  

 

한 며칠 포근하던 날씨가 소한 땜을 한다고 어제 오후부터 찬 바람이 불며 춥다고들 야단이다. 일기예보에 눈이 온다고 했는데 아침에 일어나 하늘을 보니 맑기만 한 것이 기다리는 눈은 올 것 같지가 않다. 그동안 얼마나 갈구했던 산행인가 지난해 11월 25일 내연산 덕골 산행 이후 무려 42일 만에 산행을 하려니 배낭 꾸리는 일부터 어색하기만 하다.

 

눈이 올 것 같지가 않으니 눈 산행도 안 되고 요즘은 산불 경방 기간이라 산행이 허가된 곳 아니고는 마구잡이로 아무 데나 갈 수도 없고 하여 혼자 호젓하게 즐길만한 곳을 찾아 이리저리 뒤지다가 결국은 지난여름에 다녀온 경방골 암봉들의 아름다운 나체 풍경과 동대산에서 바데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의 바스락거리는 낙엽길을 떠올리며 슬슬 집을 나선다.

 

아침 9시경에 출발하여 7번 국도를 따라 영덕 쪽으로 올라가다 삼사 해상공원 입구의 고개를 조금 지나 바로 첫 번째 신호등에서 좌회전하여 10시 20분에 옥계 계곡의 옥녀교에 도착하니 주위가 너무 조용하여 왠지 쓸쓸해 보인다.

 

오늘도 호젓한 산행을 기대하면서 산행 날 머리인 옥녀교 위에 덩그러니 주차를 하고 들머리인 경방골 입구를 향해 걸어가며 뒤돌아보니 홀로 남은 애마가 잘 다녀오라고 손짓을 한다. 경방골 입구 다리 건너서 좌측으로 새로 지은 민박집을 통과하여 들어가는 경방골 입구에는 민박집에서 땔감용으로 잡목들을 마구 베어서인지 입구가 어찌 어수선 한 것이 예전보다 설렁해 보인다.

 

얼음 속에 발을 담근체 쪼글시고 앉은 버드나무가 시린 발 구르며 새봄을 기다리고 있는 경방골 골짜기에는 너무 지나치게 맑은 물이 햇살을 받으며 흐르고 꼬불꼬불 가느다란 실 폭포는 바위 홈을 따라 졸졸 정겹게 미끄러져 내려간다.

 

추운 삼 동에 홀랑 벗고 속살을 드러낸 아름다운 암봉들이 눈에 들어오면서 경방골의 아름다운 자태가 절정에 이르는데 오늘따라 심술 굳은 바람이 얼마나 거세게 불어대는지 바람 소리에 귀가 먹먹하다. 바위에 달라붙은 노송들도 찬 바람이 싫은지 괴성을 지르며 야단들이다. 소한 추위에 이성을 잃고 설쳐대는 골짜기 바람에 머리 위에서 위태롭게 간들거리는 암봉들이 우르르 무너져 내릴까 봐 마음 졸이며 살금살금 들어가는데 때로는 몸도 가눌 수 없을 정도로 흔들려 사진을 찍을 수가 없다.

 

폭포의 물이 바람에 떠밀려 거꾸로 기어올라 가는 듯 얄랑대는 모습이 걸음을 멈추게 한다. 경방골 최고의 명물 호박소도 여름의 그 아름답던 모습은 간곳없고 낙엽과 얼음에 덮여 휑한 바람에 썰렁하기만 하다. 잠시 낙엽 계곡을 따라 올라가다 계곡이 갈라지는 곳에서 우측 물침이 골로 접어드니 바위틈에 뿌리를 박고 바위의 배를 가르는 고목의 열정에 가지들은 울울창창하다.

 

 

군데군데 아름다운 낙엽들이 목욕을 하는 물침이 골을 뒤로하고 동대산으로 올라선 능선에는 노송의 커다란 몸뚱이에 페인트칠 한 대단한 이정표 누구의 솜씨인지 만년 구찌다. 싸락눈 발이 날리며 거세게 불어대는 능선의 찬 바람은 볼을 에이는 듯하다. 이번 겨울 들어 처음 보는 눈이라 비록 싸라기라도 무척 반갑기만하다.

  

경방골을 출발한지 두 시간 소요되어 동대산 정상에 도착하여 동해 쪽을 바라보니 뿌연 눈보라가 내연산 향로봉 방향도 마찬가지다. 바람이 하도 차서 볼이 얼얼하니 오솔길은 덜덜 떨고 있다. 동대산 정상에서 바데산으로 가기 위해서는 내연산 쪽으로 직진하여 삼거리까지 가야 한다. 삼거리에서 좌측으로  쟁암리로 하산하는 길로 따라가는데 자연이 만들어준 폭닥한 자리를 두고 이 깊은 산 속에 슬 데 없는 나무 의자와 식탁을 만들어 놓은듯하다.

 

다시 갈림길에서 좌측은 바데산 우측은 쟁암리다. 좌측 바데산 쪽으로가야 한다. 옛날에 이정표가 없을 때 오후에 쟁암리에 주차하고 잠시 동대산 왔다가 바로 내려간다는 것이 좌측으로 가버렸어 우거진 숲 속에서 헤매다가 따스네 마을로 하산하여 무더운 한여름에 아스팔트 위를 2시간 이상 더 걸어서 저녁 늦게 쟁암리에 세워둔 자동차로 돌아간 아린 추억이 있다.

 

바람이 없는 따뜻한 양지쪽을 찾아 낙엽 위에 앉아 점심을 먹고 다시 출발하는데 갑자기 눈보라가 밀려온다. 야호~ 이번 겨울 들어 처음 맞이하는 첫눈을 집에서 낮잠을 자다 맞이하는 것보다야 이렇게 산행 중에 걸으면서 직접 맞이하는 것이 산꾼으로서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하늘에서 사랑과 행복이 펑펑 내리고 있다. 주위가 안 보일 정도로 잠깐 내리니 길바닥은 이내 흰색으로 바뀌고 바위의 이끼 위에도 하얗게 쌓인다.

  

불어대는 눈보라에 볼이 얼얼하더니 갑자기 눈이 뚝 그친다. 하기야 이 바람에 무슨 많은 눈을 기대하려고 우측의 따스네 마을 전경이 아늑하다. 눈꽃도 피다가 말았다. 바데산 쪽도 하늘이 청청 언제 눈이 왔드냐는 듯 시치미를 뚝 뗀다. 잠시 눈 내린 흔적이 여기저기 아름답다. 쓰러져 죽은 나무의 이끼 위에도 아름다움의 조화가 흐르고 눈이 하얗게 달라붙은 졸참나무는 아랫도리가 설렁하니 춥다고 가지마다 휘파람 소리를 내며 엄살을 부린다. 

 

 

길을 막은 커다란 쌍 봉우리 바위가 눈앞에 나타난다. 저 바위 위에서 바라보는 동해의 전망이 참 좋은데 그러나 오늘은 시야도 흐리고 무엇보다 바람이 하도 거세게 불어서 잘못 올라갔다간 포항까지 날아가서 자동차 회수하러 다시 돌아와야 하는 번거로운 수고를 해야 하기에 오늘은 그냥 통과다.

 

바위 옆에서 경방골로 내려가는 좌측에 오색 리본이 여럿 달린 선명한 길이 있으나 바데산으로 직진한다. 돌아본 두 개의 바위 봉우리 위에도 하늘이 청명하다. 그러나 곳 바로 경방골 쪽에서  뿌옇게 2차 눈보라가 밀려오더니 아까 보다 조금 많이 내리는데 이번에는 싸라기눈이다.

 

낙엽길이라 신발은 눈 투성이인데 바위에 이끼는 계절을 모르고 푸르게 자라고 있다. 신기하게도 눈도 그 위에선 바로 녹아 버린다. 이 추위에 여름처럼 생생하게 자라고 있다. 무슨 조화인가 혹시 불로초인가 보다. 버섯에도 눈 싸라기 고물이 뿌려지고 떡갈나무 잎에도 싸라기 눈이 쌓인다. 바데산 정상에 오르니 또 하늘이 맑아진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어느덧 바람이 좀 잠잠해지는가 싶더니 이제 3차로 앞이 안 보일 정도로 제대로 된 함박눈이 내리고 산길이 미끄러워진다.

  

배낭에서 무릎 관절 보호대를 꺼내어 양쪽 무릎에 바짝 동여맨다. 바위길에 낙엽이 덮이고 그 위에 다시 눈을 뿌려 대단히 미끄럽고 위험하다. 눈보라 속으로 걸어온 길 돌아보며 사진을 찍는데 눈이 너무 많이 내려 허리에 차고 있던 카메라가 고장이 났다.

  

 

갑자기 카메라가 작동이 안 되는 걸 보니 렌즈에 눈이 들어가고 습기가 차서 얼어버린 모양이다.

품속에서 휴지를 꺼내서 닦고 입김으로 호호하며 아무리 조몰락 거리고 달래도 안된다.

건전지를 바꾸어도 안된다.

폭설 속에서 품 안에 품고 열심히 닦아도 끼릭끼릭 소리만 내고 작동이 안된다.

할 수 없이 내 몸에서 가장 뜨거운 심장 가까이 싸늘한 놈을 깊숙이 품고 겉으로 주무르고 애를 태우며 한참을 내려오다 살며시 꺼내어 셔터를 눌러보니 찰깍 소리가 난다.

햐~~ 이 기쁨과 환호... 지금부터 찍은 사진은 지극한 정성에 감동하여  덤으로 얻은 것이다.

 

세찬 눈보라에 방향 감각은 자꾸 없어지는데 낙엽 위에 눈이 덮여 희미한 길에는 군데군데 미끄러운 바위 복병이 엎드리고 있다. 소나무에도 제법 눈꽃이 만들어져가고 바위들도 하얀 분칠을 하고 예쁘게 단장한다. 모든 것이 순식간에 새로운 세계로 변해가는 신기한 자연의 조화에 감탄하며, 적막강산인 빽빽한 숲 속을 걸을 땐 저절로 룰루랄라 십팔번 노래가 흘러나온다.

  

부지런한 태양은 어느덧 서쪽 하늘가 구름 속에서 또 하나의 멋진 작품을 만들고 있다. 나뭇가지 사이로 상영되는 아름다운 석양은 태양과 구름의 종합예술이다. 눈 덮인 산천은 그저 황홀하기만 한데 갑자기 후닥닥 놀라서 달아난 노루 한 마리 놈이 얼마나 놀라서 달아나는지 보폭이 3미터도 훨씬 넘는다. 나도 놀라기만 하고 뭐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제 혼자 정신없이 달아나다 혹시 눈길에 미끄러지지나 않았는지.. 눈 위에 선 노송의 의연한 자태가 돋보인다.

 

소나무 숲 눈꽃이 만개한 화단을 지나 옥녀교 위에서 분 단장을 하고 주인을 기다리는 애마 곁에 돌아오니 오후 4시 40분이다. 오늘 6시간 20분 산행 동안 수없이 바뀌어 가는 변덕스러운 자연의 마술을 체험하면서 마음껏 즐긴 산행이다. 산행 중에 산꾼을 한 사람도 구경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옥계 계곡에 들어와서 한대의 움직이는 자동차도 마주한 적 없는 너무 지나칠 정도로 호젓함을 즐긴 눈 산행이었다. 저녁 태양은 서쪽 산 위에 마지막 그림을 그리고 옥녀암 쪽도 하얀 눈 세상을 열었다. 옥녀교 아래 아름다운 풍경을 뒤로하고 힘차게 애마의 시동을 건다. (2007.07.06 호젓한오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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