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락산 암릉길 걸으며
솔길 남현태
회원으로 몸담은 산악회를 따라 도락산으로 산행을 가는 날이다. 느지막이 일어나 가고 싶은 곳으로 훌쩍 떠나는 호젓한 산행을 즐기다 보니 사전에 시간이 약속된 단체 산행은 늘 부담이 간다. 아침 일곱 시에 포항에서 출발한 버스가 오전 11시경에 충북 단양에 있는 도락산 자락의 상선암 주차장에 도착하여 단체 사진을 찍고 등반대장의 구령으로 간단한 체조를 마친 후 상선암 쪽으로 삼삼오오 줄을 지어 도락산 산행길에 오른다.
아담한 상선암을 지나 초록의 오솔길을 따라 잠시 비지땀을 흘리며 능선에 올라서니 바위와 노송들이 어우러진 풍경이 눈 안에 들어오고 돌아본 고사목 사이로 보이는 맞은편 골짜기와 초록 능선엔 바위들이 엎드려 숨을 죽이고 산자락에 달라붙은 올망졸망 작은 마을의 정겨운 모습이 시원스레 펼쳐진다.
밧줄이 달린 바위를 쳐다보니 뿌리를 드러낸 체 암봉 끝에 어렵게 매달려 허덕이는 깡마른 노송들의 고단한 삶이 도락의 절경인데 생사의 갈림길에서 망설이는 노송을 붙들고 사진을 찍는 철없는 아낙들이 보인다. 처음 한 명이 올라가더니 이어 두명 세명 연달아 올라 오랜 가뭄 속에서 고단하게 연명하는 노송을 뿌리째 흔들어가며 이쪽의 남자 찍사와 서로 사인을 주고받으며 모델이라도 된 것처럼 저마다 온갖 폼 다 잡아가며 교태를 부린다.
가뭄에 말라가는 소나무를 바위에서 흔들어 놓으면 죽으라는 것과 마찬가지가 아닌가? 자연은 그냥 제들끼리 그대로 놓아두고 우리네 인간들은 잠시 지나가면서 눈요기로만 즐기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다. 마치 제 서방 어르듯 끌어안고 매달려 앙상한 가지마다 비비 꼬는 저 아낙들의 게살 굿은 모습에서 산에 올라올 자질이 좀 모자라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씁쓸한 마음으로 카메라를 거두고 돌아서서 구시렁 걸음으로 도락산을 오른다.
반들반들한 상처투성이 노송의 낡은 뿌리들이 갈증에 물을 찾아 엉금엉금 기어다니며 집요하게 바위 품속을 파고들다가 산꾼들의 발아래 잡혀 꿈틀대며 아린 고통 삼키느라 찡그린 얼굴 노란 떡잎을 식은땀처럼 줄줄 흘리며 고된 삶에 발버둥치고 있다.
산들바람이 불어 주는 초록의 꽃길을 따라 신선봉에 올라서니 덩그런 바위에 작은 웅덩이가 하나 패여 있고 여자가 이 웅덩이에 물을 퍼내면 금방 소나기가 내려서 물을 다시 채워 준다는 전설이 있다는데 실제로 확인해 보기는 곤란하지만, 이 가뭄에 푸른 이끼가 낀 물이 가득 고여 있고 비단개구리가 여러 마리 일가를 이루어 붙박이로 살아가며 고단한 재롱을 부려가며 산꾼들을 불러모으는 것으로 보아 물이 마르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신선봉을 지나 도락산으로 가는 우측 바위 소나무 그늘에 여러 명이 둘러앉아 점심을 먹는 것으로 보아 단체로 온 일행인듯 한데 한쪽에서 버너를 피우고 라면인지 찌개인지 열심히 끌이고 있다. 요즘 같이 날씨가 건조하여 전국적으로 산불이 많이 나서 산림 훼손 심각한 상황인데 아직도 저런 사람들이 산에 다니고 있다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바위에서 간들거리는 소나무 흔들어 가면서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나 메마른 산에서 버너로 취사행위를 하는 사람들을 보니 오늘 산행길이 그리 아름답지는 못하다.
올망졸망 바위 달린 능선길을 밟은 도락산 제일 신선봉 바위에 걸터앉은 늙은 난쟁이 소나무 주렁주렁 솔방울 달고 긴 세월의 고단함을 노래하건만 발아래 엎드린 작은 봉우리들 서로 키 자랑하느라 분주하다. 바위 끝에 졸고 있는 노송 아래 지친 다리들 옹기종기 모여들어 점심 도시락 펼치고 휴식을 취하니 가지마다 주렁주렁 가뿐 숨소리 열리고 뼈만 남은 고사목이 생전의 위용을 자랑하듯 앙상한 가지 끝에는 채운봉의 녹음이 다시 열린다.
세상사 그렇듯이 어렵게 올라가면 다시 내려가는 길 위태롭고 고사목이 제아무리 하늘 쳐다보며 그 옛날 부귀와 영화를 자랑하고 온갖 자태를 잡아 보지만 망상에서 깨어나면 그들은 죽은 지 오래된 썩은 나무일 뿐이다. 바위가 하도 커서 작은 카메라로는 도저히 감당이 안 되고 바위 봉우리 오르는 걸음들은 더디기만 하다. 청풍명월의 조화로 도락을 깨우치니 속세의 발아래 찌든 암봉들의 비린 속살을 짙어가는 녹색 치마가 슬며시 가리워 준다.
도락산 정상은 사방이 수풀이 가리어 별로 내세울 만한 조망이 없어 정상석에 사진 몇 장 찍고는 바로 돌아 나오다가 신선봉에서 그늘을 찾아 점심을 먹는데 총무님과 후미 회원님들이 이제야 올라온다. 식사 후 다른 일행들이 정상에 다녀오는 동안 미리 출발하여 도락의 아름다움을 카메라에 골라 담아가며 천천히 즐기는 걸음으로 하산을 한다
암릉을 미리 건너 와서 돌아보니 따라오는 발길들이 재미있게만 보이고 오르막을 오르는 발걸음들이 고달파 보이는데 신선봉 위에는 개미 같은 사람들이 바위마다 달라붙어 꼼지락거린다. 모습이 고상한 전망 바위에 올라서 내려다보니 월악산 쪽으로 시야가 확 트이고 어디서 온 산님들인 지는 몰라도 발걸음들이 정겹다. 꼬불꼬불 바위 고개를 넘으면 올망졸망 바위가 달린 능선길이 이어지고 무슨 인연인지 사람들은 그곳을 줄을 지어 땀 냄새 풍기며 스쳐만 간다.
사방을 둘러보며 사진을 찍어대는 나의 발걸음이 몇 번 위태로움을 느낄 즈음 바위에 구멍을 뚫고 안전 손잡이를 설치한 갸륵한 정성도 보인다. 자연의 조화에 인간이 점을 찍으니 더 아름답고 배배 꼬면서 올라가는 노송들 인고의 세월은 도락산의 진수를 보여주어 고단한 발걸음 가볍게 해 준다. 아예 바위에 드러누워서 사는 게으른 소나무 와송도 있고 바위에 뿌리박고 매달려 사는 작은 노송은 가지 끝에 제법 실한 솔방울을 달고 활기찬 삶의 의지를 보여준다.
느릿느릿 오후 3시경에 버스에 도착하니 차 문이 잠겨 있고 아무도 없다. 혼자 개울가에 내려가서 냇물에 발 담그고 머리감으며 잠시 기다렸다 돌아오니 몇 명이 내려와 있다. 모두 하산을 완료한 오후 4시경에 서서히 하산주가 시작이 된다. 도락산의 즐거운 산행길을 축하하는 푸짐한 하산 주를 주고받으며 이어지는 건배의 잔이 넘친다.
오후 다섯 시에 상선암을 출발하여 포항으로 돌아오다가 영천시 고경면에 차를 멈추고 산악회에서 칼국수와 촌 두부로 저녁 식사까지 해결해 준다. 저녁 아홉 시가 조금 지난 대체로 이른 시간에 포항에 도착하면서 아름다운 도락산 산행길을 사고 없이 즐겁게 다녀올 수 있도록 성심을 다해주신 산악회 임원진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하며 도락산 산행길을 갈무리해 본다.
(2009.05.10 호젓한오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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