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봉산 눈꽃
솔길 남현태
원래 계획에 없던 자투리 산행에 대박이 터졌다. 일요일 태백산 산행 계획을 세우고 기다리던 중 포항 근처에 눈이 내려서 바라보이는 먼 산엔 온통 눈으로 덥혀 있고 날씨가 따뜻해 눈이 다 녹을 것 같아 어제는 일손이 잡히지 않았다. 어제밤 잠자리에 누워 눈덮힌 주위에 산들을 하나 하나 상상의 페이지를 넘기며 갈곳을 정하다 결국 면봉산으로 결정하고 자투리 산행을 계획한다.
아침에 들뜬 마음으로 살 같이 포항을 빠져나가면서 기계 봉좌산과 운주산을 바라보니 눈이 덮여 있다. 그러나 죽장 골짜기에 들어서는 순간 아풀사 잘못 왔구나 눈이 없다. 이번 눈은 해안가 위주로 내린 것 같다. 죽장면 두마리쪽으로 들어서니 온통 메말라 있다. 돌아갈까 그냥 갈까 수없이 망설이면서 가는 길이 자동차도 더 털썩 거리고 엔진 소리가 짜증스러워진다.
그러나 잠시 후 두마리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와 ~~ 있다. 두마리 골짜기는 바싹 말라 있는데 멀리 일천 고지 이상 되는 면봉산과 보현산은 머리에 하얀 눈꽃 모자를 쓰고 업드려 있다. 좌측 보현산과 우측 면봉산이 나란히 어서 올라오라고 하얀 얼굴로 서로 손짓을 한다
다사로운 햇볕에 눈꽃이 금방 녹아 내릴 것 같아 서두른다. 가슴이 두근두근 두마리 학교 앞에서 여유고 낭만이고 마음이 급하여 그대로 차를 몰고 곰내재 까지 밀고 올라간다. 곰내재에 다 올라왔어 따뜻한 산소 앞에 주차하고 눈길을 뛰어서 면봉산으로 오른다. 잔설이 깔린 곰내재 전경 신경을 쓸 겨를이 없다. 추운 겨울에 눈 위를 한여름 산행처럼 비지땀을 흘리며 숨이 막힐 정도로 헉헉 대며 산행 시간을 최대한 단축하니 30분 만에 눈꽃 속에 셔터를 누르며 들뜬 마음을 차츰 평정한다.
소나무는 온통 눈으로 떡칠을 하여 꽁꽁 얼어 있고 맞은편 보현산에도 온통 눈꽃이 하얗게 피어 있다. 정상에서 바라본 죽장면 두마리는 눈꽃 아래서 고요히 아침잠을 덜 깬 얼굴로 피곤한 눈을 비비고 있고, 영천 화북면 보현리도 부연 눈빛 아래서 늦잠을 깬듯하다. 보현산은 면봉산보다 조금 높은 형님 행세를 하며 느긋하게 건너다보고 하얀 얼굴로 빙그레 웃고 있다.
청송군 텃새에 밀려 정상에서 포항 쪽으로 내려앉은 포항의 제일 봉이라 하던 면봉산 정상 석은 쫓겨난 서러운 마음을 하얀 눈 위에 토해내니 정상석 주위에 눈꽃들이 정상석의 쓰린 마음을 달래준다. 산행 온 부부에게 한 장 부탁하여 정상석과 함께 사진을 한 장 찍혀본다. 오늘 현재까지 이렇게 백설이 아름다운 면봉산에서 만난 사람은 단 3명이 전부이다.
정상석 뒷면에는 "산이 높아 조수가 쉬어가는 곳이라 하여 면봉산이라 부르며 또한 능선이 완만하여 면봉산이라 불리어 지기도 하고 옛날에는 운봉산이라고도 불렀다는 이산은 여러 종류의 야생화가 자생하고 있다." 등등 적혀 있다.
하얀 자태에 햇빛이 비치는 영롱한 얼음 꽃 그 아름다움에 나는 그냥 매료되고 있다. 자연이 만들어놓은 예술품 더이상 아름다울 수도 있을까? 그냥 감탄사를 연발하면서 연방 셔터를 누르고 있다. 하얀 분칠을 한 소나무 아가씨 그녀들의 모습도 너무나 창백하여 아름답고 화사하다. 청송군 쪽 능선 전경을 바라보면서 아쉬운 발길을 돌린다.
이런 전화위복이 또 있을까 잘못 왔다고 후회하면서 한발 한발 찾아온 곳에 이런 비경이 숨어 있을 줄이야 이번 겨울에는 눈꽃 대박 터졌다. 재약산 덕유산에 이어 오늘 면봉산까지 하얀 눈꽃을 선사한다.
포근 한 날씨에 녹아 떨어지는 눈꽃을 아쉬운 마음으로 바라보며 내일 태백산 산행도 있고 하여 오늘 산행은 속전속결로 마무리한다. 절경을 담은 영화 한 편 본듯한 짧은 시간에 충분한 운동량과 즐거움을 만끽한 엑기스 같은 산행이었다. 가져간 점심은 배낭에 넣어 지고만 다니다 집으로 가지고 오고 산에서 먹은 것이라곤 한 홉의 물과 사과 한 개가 전부이고, 집으로 돌아오는 자동차 소리도 조용하다. (2006.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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