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지산 종주, 과욕이 화를 부른다
솔길 남현태
오늘은 한마음 산악회에서 민주지산 산행하는 날이다. 아침 07시에 포항 종합 운동장에서 인원 점검하고 출발하여, 대구에 들러서 3명을 더 태우고 민주지산 물한리로 향한다. 작년 2월 종아리가 빠지는 눈길을 아이젠을 한 채로 아주 힘들게 종주한 기억이 있는 민주지산을 여름 산행을 위해 물한리 계곡에 들어서니 싱그러운 풍경이 새롭게 느껴진다. 그러나 곧 과욕으로 말미암아 고생문이 훤하게 열릴 줄이야.
물한리 주차장에 하차하여 단체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10시 20분경에 산행을 시작한다. 계곡 입구에 설치된 산행 안내판 앞에 모여서 바라보니, 오늘 산악회 산행 계획은 쪽새골로 올라 민주지산, 석기봉, 삼도봉을 거처 물한리 계곡으로 하산하기로 한다.
여기까지 왔어 각호산을 그냥 두고 가기가 너무 아깝고 각호산의 여름 풍경에 미련이 남을 것 같아 안내판을 한참 드려다 보다가 나도 모르게 외로운 각호산으로 오르기 위해 혼자 오른쪽 각호골로 들어서고 있었다. 남들보다 좀 더 열심히 걸어서 외로운 각호산을 맨 먼저 만나보고, 민주지산, 석기봉을 돌아서 오는 길에 삼도봉이나 물한 계곡에서 일행들을 따라잡을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하고 무더위 속으로 홀로 한적한 각호산을 향해 쉴 새 없이 열심히 올라간다.
각호골 입구에 들어서니 비가 내린 뒤의 화창한 햇살이 다사롭다 못해 따가울 지경이다. 후덥지근하게 땀을 칠칠 흘리며 올라가는 길가에 화사하게 핀 싸리나무꽃을 보고 그냥 지나칠 수 없어 급하게 사진을 찍어가면서 훤칠한 낙엽송이 빼곡히 늘어선 숲을 지나서 폐광산 굴인지는 몰라도 커다란 동굴이 있어 안으로 들여다보니 어딘가 모르게 어찌 으스스 한 기분이 든다.
아무도 없는 외로운 각호골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접어들어 혼자 심장이 요동치는 소리와 가쁜 숨소리를 들으며 무료함을 달랜다. 무더위에 열심히 걸어서 드디어 바위 봉우리 각호산 정상이 보이는 맞은편 봉우리에서 사진 한 장 찍고, 각호산 정상으로 건너와 정상석을 사진에 담는다.
주차장에서 1시간 15분을 달려온 각호산은 능선 조망이 참으로 싱그럽고 시원하다. 저 멀리 가야 할 민주지산과 석기봉이 초록 이불을 뒤집어쓰고 꿈틀대며 수줍은 듯 엎드려 있다. 정상에서 내려오다가 다른 곳에서 올라온 산꾼 한 사람을 만나 사진 한 장 부탁하여 찍어주고 찍혀본다.
민주지산 가는 아름다운 나무 계단 길, 우거진 수풀 길, 호젓한 오솔길을 바쁘게 걸어가는데, 군데군데 야생화가 예쁘게 피어 손짓하고 있으나 오늘은 사진을 찍어 줄 시간이 없다. 대충 속사로 몇 장 찍어가며 지나가다가 뒤돌아본 각호산의 그림이 어느덧 멀찌감치 싱그럽다.
각호산은 점점 멀어지고 민주지산 아래 대피소에 소곤소곤 사람 소리를 뒤로하고, 혼자 길가 그늘에 잠시 앉아서 도시락을 처리한다. 드디어 민주지산 정상에 올라서니 걸어온 각호산과 꼬불꼬불 능선이 어우러져 싱그러운 여름 풍경을 연출한다. 멀리 석기봉과 삼도봉도 빨리 오라고 손짓을 한다. 서둘러 석기봉 가는 초록 오솔길 속으로 달려, 석기봉 암벽길을 오르다가.
아차, 큰일 났다. 갑자기 양쪽 다리에 쥐가 내려 뒤틀리면서 통증이 와서 도저히 걸을 수가 없다. 길옆에 앉아서 한참을 주무르고 나서 걸으면 조금 가다 또 뒤틀린다. 그러기를 반복하며 아직 일행들도 따라잡지 못하고 갈 길은 먼데, 도중에서 다리가 고장이나 이 모양이니 마음은 바쁘기만 하다. 고통스러운 산행이 시작된다.
더운 날씨에 초반에 너무 오버페이스 한 것이 화근이다.
아니 그간 체력 관리를 소홀히 한 탓이리라.
아니 너무 과한 산행욕심 탓이리라.
반복되는 고통을 감내하며 다리를 질질 끌고 석기봉 바위길 오르는데, 정상이 바로 곁에 보이지만, 그러나 오늘은 저 길이 멀기만 하다. 석기봉의 마지막 오르는 암벽길을 엉금엉금 기어서 올라간다. 이건 산행이 아니라 완전히 전쟁이고 고행이다. 드디어 석기봉이 올라서니 석기봉엔 정상석이 없다. 걸어온 길 돌아보니 가마득하고 삼도봉이 곁에 있으나 오늘따라 자꾸 멀어만 보인다. 그래도 걸어온 길을 돌아보며 사진에 담으며 애써 여유를 가져본다.
잠시 앉아서 다리를 주무르고 물한리 계곡 전경 사진을 담으면서 삼도봉을 향해 내려가다가 길가에 정자에서 쉬고 있는 일행들을 만나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이제는 천천히 반보씩 걸어 일행들보다 앞서 내려온다. 다리에 또 쥐가 내려 걸을 수가 없다. 털썩 퍼지고 앉아서 다시 주무르고, 나지막한 삼도봉 정상에도 절룩거리며 오르고 정신이 몽롱해 지는 것이 산꾼의 체면이 말이 아니다.
삼도봉 정상에 올라 힘들게 걸어온 길 돌아보며 사진에 담아보고 회원들 사진도 찍어준다. 나무 계단 길 내려오다. 뒤를 돌아보니 햇볕이 따가워 머리를 수건으로 완전히 뒤집어쓴 일행들이 줄지어 따라온다. 물한리로 내려서는 삼거리 안부에 이르니 이제는 다리가 거의 풀려서 점점 정상에 가까워 지는듯하다. 그래도 내리막 골짜기 길을 조심조심 살살 걸어서 내려온다. 정말 오늘은 힘든 산행이다. 물한리 계곡에서 깨끗이 씻고 나니 이제 서서히 제정신이 돌아와 기념으로 사진 한 장 찍어본다.
잠시 후 골짜기 안으로 119 앰블런스 한 대가 앵앵거리며 올라가는데 알고 보니 뒤에 따라오던 우리 일행 중 한 사람이 나처럼 다리에 쥐가 내렸는데, 걸음을 전혀 못 걷고 겁에 질려 얼굴이 파랗게 사색이 되어 바들바들 떨며 죽는다고(엄살을 부리고) 드러누워 있단다.
산행을 하면서 오늘처럼 내 몸이 부실함을 느껴 본 적은 없다. 산행 중 다리에 쥐가 내려 나서 꼼짝을 할 수가 없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그래서 마음의 충격이 크다. 아침에 차에서 내려 남들보다 한 코스 더 하려고 준비 운동도 없이 갑자기 무리하게 초반에 오버페이스 한 것이 화근이었으리라. 오늘은 호젓한오솔길의 산행 일대기에 잊을 수 없는 아픈 추억을 만들어 놓은 힘겨운 민주지산 종주 산행을 마감한다. (2006.06.17 호젓한오솔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