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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내리는 천지갑산

호젓한오솔길 2009. 8. 16. 18:42

 

 

비 내리는 천지갑산

 

 

                               솔길 남현태

 

 

어쩐 일인지 오늘 오전까지 장맛비가 온다고 하여 아침에 푹 자고 좀 늦가 일어나니 날씨가 개어 있다. 창밖을 내다보니 도로가 대충 말라 있어 서둘러 마눌을 깨워 밥부터 하라고 독촉한다. 일기예보를 검색해 보니 오늘, 내일 경북 지역에는 흐림이다. 얼른 배낭을 챙겨서 마눌과 같이 갈 산행준비를 서두른다.

 

날씨 조건, 마눌 동행, 산행 시간 등을 고려하여 갈 곳을 정하던 중 경주시의 단석산과 안동시의 천지갑산 두 장의 지도를 프린트해 놓고 저울질하다가 결국 천지갑산으로 가기로 하고 9시가 조금 지나서  길안으로 출발한다. 가는 도중에 죽장면 쪽에는 안개가 자욱하게 흐려 있었다. 도평을 지나 안동에 들어서니 이슬비가 뿌리기 시작하더니 천지갑산 입구 주차장에 도착하니 빗줄기가 거세게 제법 많은 비가 내린다.

 

주차장에서 바라본 천지갑산의 암봉들 모습은 빗줄기 속에 흐릿하게 보인다. 단체로 산행 온 사람들은 우르르 다리 밑으로 들어가서 거기서 아예 전을 필요랑 이다. 마눌은 우의를 입고 나는 우산을 들고 우산 속에서 사진을 찍으며 그렇게 궁색쓰레 천지갑산 산행을 시작한다. 빗물 먹은 개망초 물결 사이로 난 오솔길을 따라 야생화 들의 열병식을 받으며 산행 들머리로 향하는데, 비 내리는 길안천에는 아무도 없이 적적하기만 하다.

 

산행 들머리에 설치된 천지갑산 안내판에는 다음과 같이 갑산을 소개하고 있다. 

"산새가 천지간에 으뜸이라 하여 천지갑산이라 하며 7봉마다 기암절벽과 수령 100년 이상의 노송이 울창하여 산자락을 휘어감아 태극형을 이루어 흐르는 길안천은 천혜의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있다. 천지갑산은 신라 때 석탑이 있는 자리에 갑사라는 큰 절이 있었는데 절에 빈대가 많아 스님이 빈대를 잡기 위해 불을 놓다가 절이 타버리자 스님 1명은 인근 용담사로 가고 1명은 불국사로 떠났다고 하는 전설이 있으며 현재 절터만 남아있다. 명소로는 모전석탑, 학소대, 가마바위, 초롱바위, 장수바위 등이 있다."

  

글쎄요. 빈대를 잡으려다가 절간을 몽땅 태우고 폭삭 망했다고 하네요.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은 태운다고는 했는데, 절에서 살생을 하면 안되지요. 아마도 부처님이 노 하시어 불이나 망하게 했는가 봅니다. 

비가 더욱 거세게 쏟아지니 마눌은 따라오며 또 걱정이 시작된다. "천둥 칠 때 산에 가면 안돼제..??" "당근이지..!!" 벼랑 밑으로 난 길을 따라 산행을 하니 이런 날은 바위가 굴러 내릴까 꺼림칙하다.

 

비가 오니 바위의 이끼 풀들은 생기를 더하고 숲 속은 캄캄하다. 숲 사이로 보이는 건너편 산봉우리는 안개가 슬슬 가리우고, 우산 속에서 쳐다보며 카메라가 비를 피해 사진 찍기가 여간 불편하지 않다. 초록색 갑옷으로 갈아입은 암봉의 장엄한 모습을 쳐다보며 열심히 카메라에 담아본다. 건너 산봉우리에 안개가 걷히는 걸 보니 이제 비가 그치려나 보다. 틈틈이 얼굴을 내민 암봉들의 모습은 철 따라 갑옷을 갈아입으며 유구한 세월과 싸워 이긴다.

 

안동 대사동 모전석탑 앞에 이르니 모전석탑의 안내판에는 통일신라시대의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건들면 와르르 금방 무너질 것만 같은 조그만 돌탑이 천 년의 유구한 세월을 거센 비바람에 견디어 왔으며, 또한 그렇게 수천 년을 하루같이 묵묵히 그렇게 견디어 가건만 하물며 우리네 인생살이 한평생은 한순간 이곳을 스쳐가는 바람 같은 것.!! 야생화가 만발하여 아늑하기만 한 천 년 전 옛 절터를 뒤로하고 아줌마는 뭐가 그리도 급한지 걸음을 재촉하듯 앞서간다.

 

오랜 세월을 바위에 붙어서 어렵게 살다가 일생을 마감한 노송은 사후에도 당당한 모습을 간직하고 우아 한 활갯짓으로 비를 맞는다. 잠시 비가 그치니 날씨가 더워지고 따라오는 아줌마는 몹시 힘이 드는 모양이다. 물은 산을 넘지 못한다는 진리를 따라, 낮은 곳을 찾아 굽이굽이 먼 길 돌아서 길안천은 조용히 그렇게 흐르고 있다. 나무 사이로 보이는 길안천은 휘어져 돌고 돌아 평화롭기만 한데, 힘들면 쉬어 가야지 노송과 암봉 사이로 보이는 송사리 마을이 아름답게만 보인다.

 

노송은 다리를 비비 꼬며 요염한 자태를 흘리니 가는 걸음 저절로 멈추게 한다. 이럴 수가 파란 이파리들이 융단처럼 아름답게 깔려 있다. 아까 노송보다 더 야한 노송이 너무 노골적이다. 거시기에 풀까지 제법 나 있다. 천지갑산 정상은 허물어져 가는 무덤 한기가 굽이굽이 길안천을 바라보면서 긴 세월 우두커니 갑산을 지키며 시름에 잠겨 있다.

 

천지갑산을 지나 연점산으로 가기 위해 오솔길을 따라 636봉으로 오르는 도중에 건너편 산에서부터 비가 뿌옇게 밀려오더니 후두두 후두두 주위에 빗소리가 요란하게 들린다. 할 수 없이 아쉬운 발길을 돌려 조금전에 왔던 천지갑산을 다시 올라서 하산한다. 소낙비 쏟아지는 길안천의 모습은 안갯속에 유유히 굽이쳐 흐른다. 비 내리는 길안천 모습 굽이 돌고 돌아 내려다보는 운치가 그만이다.

 

빗속을 걸어오다 뒤돌아 보니 우의 입은 아줌마도 열심히 따라온다. 산나리 꽃이 이슬이 맺히니 싱그럽다. 그냥 갈 수 없잖아~ 하던 말이 남았는데~ 발길을 붙잡으니 돌아서서 쪼그리고 앉아 산나리꽃에 계속 셔터를 눌러댄다. 날씨가 개였다.

신발끈 조여 메고 내려오는 언덕에 빗물이 영롱한 이슬이 되어 유리 알처럼 풀잎에 대롱대롱 매달려 건들면 좌르르 쏟아질 듯하다. 바람아 멈추어다오.

 

아래로 다 내려오니 비가 그치고 서서히 하늘이 맑아진다. 잠시 후 햇볕이 쨍쨍 강변을 비추니 아름다운 풍경이다. 쏟아지는 태양 아래서는 금방 그늘이 그리워진다. 오동나무의 열매 주렁주렁 열려 햇살에 영글어 가는 길안천 개울 가에서 물가 그늘진 곳을 찾아 늦은 점심을 먹고 천지갑산 풍경을 다시 카메라에 담는다.

 

웅장한 암봉들 모습이 고결하다. 담쟁이넝쿨이 바위를 뒤덮고 바위 아래 산수국도 곱게 피었다. 역시 태양 아래서는 모든 것이 화사롭고 넉넉해 보인다. 작년에 이어 두 번째로 찾아온 천지갑산 이지만 아름다운 풍경들을 사진에 담고 그래도 미련이 남아 돌아보고 또 돌아보며 자동차 시동을 건다. (2006.07.02 호젓한오솔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