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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주산의 화사한 여름

호젓한오솔길 2009. 8. 4. 23:46

 

 

 운주산의 화사한 여름

 

 

                                  솔길 남현태

 

 

간밤에 내린 비로 대지가 촉촉하다. 비 내린 다음 날 산행은 습기가 많아 무덥고 햇볕이 따갑다. 그래서 여름 산행은 될 수 있는 대로 숲이 우거진 그늘이 있는 곳을 찾아 즐긴다. 오늘도 망설이다가 선택한 곳이 운주산 블릿재 코스이다. 즐기는 산행으로는 산행거리도 적당하고 무엇보다 계속 그늘 속으로 능선 바람을 받으며 시원한 산행을 즐길 수가 있기 때문이다. 기계면 남계리를 지나 지난날 붕어 낚시를 즐기던 남계지에 도착하니 감회가 새롭다.

 

블릿재로 가는 길은 길가에 예쁜 꽃들이 피어나고 아늑하기가 그지없다. 지느러미엉겅퀴 꽃, 진짜 엉겅퀴 꽃, 사찰 주변 화단에서 꽃잎에 맺혀 싱그러운 붓꽃 사진도 찍으면서 여유롭게 올라간다. 싱그러운 아침 오동나무 꽃도 화사한 가지를 드리우고 소나무 가지 끝엔 노란 송홧가루 가득 품고 있다.

 

낙동정맥 꼬리표가 주렁주렁 달린 블릿재에 도착하여 풀잎엔 아직 이슬이 맺혀 있는 정맥 길을 따라 운주산으로 향해 올라간다. 나무 사이로 저 멀리에 운주산 정상이 바라보인다. 낙동정맥 낙엽길은 촉촉하게 이어진다. 초록이 싱그럽다. 나뭇잎에 매달려 바람 따라 그네를 타는 자벌레가 금년에는 유난히도 많다. 오늘은 산행길 내내 얼굴에 거미줄이 걸리고 나무 위에 매달려 그네를 타는 자벌레가 얼마나 많은지 조금 짜증스러울 정도로 계속 털면서 걸어간다.

 

운주산은 점점 가까워지고 간밤의 비에 고사리도 고개를 내밀고, 노란 어린 망개도 영글어 간다. 개옻나무에도 꽃이 피고, 하얀 덜꿩나무꽃을 깔가먹는 검은 벌레들의 횡포를 어린 메뚜기 한 마리가 아쉬운 듯 지켜보며 뒷다리를 동동 구르고 있다. 하여간 예쁜 것은 그냥 두지 않고 완전히 작살을 내는 모양이다. 분홍 꽃에는 벌레들이 붙어서 피를 빨아 먹는다. 아름다운 것이 죄이라서 피를 팔리고도 활짝 웃고 있다.

 

오르락내리락 낙동정맥 오솔길은 이어지고  삿갓나물 군락지에는 낙엽 위에 온통 삿갓나물이다. 파란 바위 이끼도 참 싱그럽다. 운주산의 명물 쉬어가는 자리 노송이 요상 하게도 생겼다. 하얀 민백미꽃, 비비추 나물, 둥글레 꽃과 이름 모를 꽃들을 사진을 찍으면서 가는데.

 

 

갑자기 발밑에서 까투리( 암꿩) 한 마리 날개를 퍼덕이며 곧 죽을 놈처럼 소리를 지르며 날 잡아보란 듯이 주위를 혼란스럽게 하며 뱅뱅 돈다. 하도 놀라서 정신없이 멍하니 서 있는데 발밑에는 온통 꺼병이(꿩 병아리)들이 바글바글하다. 오호라 자기 새끼들을 보호하기 위해 나의 시선을 끌려고 위험을 무릅쓰고 내게 잡힐 듯 말듯 퍼덕이며 주위를 뱅뱅 도는구나. 정말 목숨을 건 헌신적인 모성애에 감탄하면서 미안한 생각이 먼저 들어 혹시나 낙엽 속에 숨은 꺼병이들을 발로 밟을까 봐 살펴가면서 뒤꿈치 들고 살살 걸음으로 얼른 지나간다.

 

이제 철쭉은 끝물이다. 그래도 아직은 중년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체 피어 있는 지각생들이 있다. 운주산 정상은 덥고 나무가 가려 조망도 없다. 얼른 사진 몇 장 찍고 숲 속으로 들어서니 역시 오솔길이 시원하고 즐겁다. 콧노래도 한번 불러보고 그러나 왠지 오늘은 시간이 많으니 쓸쓸하다. 전망 바위 위에는 햇빛이라 그늘을 찾아 점심을 먹고 전망 바위에서 구지리 전경 뿌연 안갯속에 은천지가 보인다.

 

멀리 보현산, 면봉산, 기룡산도 보이고 도마뱀이 도망가다 멈추고 눈알 대록대록 쳐다보고 있다. 쉬어가는 노송 자리에서 오늘의 증명사진 한 장 찍고 잠시 휴식을 취하다가 낙엽 길을 따라 하산한다. 길가에선 괴목은 똑바로 올라가도 되는데 무슨 사연이 있기에 곱사등이 되었는지, 오동의 싱그러움을 따라 조용한 임도로 차를 돌아오는 길 너무나 화사하다.

 

찔레꽃은 이제 피기 시작하고 보리밭을 지나오다가 차를 멈추고 청보리 사진을 찍어본다. 그러나 옛날에 토종은 아니다. 클로버꽃의 고결함이여 아카시아 짙은 향기를 뒤로하고 아쉬운 듯 집으로 향한다.

 

아침 7시 30분경에 집을 나갔어 시간개념 없이 돌아다니다가 16시 30분에 돌아온 9시간 동안 자연 속에서 마음껏 즐기다가 돌아왔다. 꼭 높은 산을 열심히 쫓아다녀야 만이 좋은 산행은 아닌 것 같다. 이렇게 시간의 여유를 가지고 이것저것 기웃거리면서 숲 속의 자연을 마음껏 누려보는 것 또한 건강에도 좋은 보람된 산행이 아닐까 싶다. (2006.05.20 호젓한오솔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