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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좌산의 목 마른 여름

호젓한오솔길 2009. 8. 30. 18:21

 

 

봉좌산의 목 마른 여름

 

 

                                솔길 남현태

 

  

오늘은 우리나라 4대 국경일의 하나인 광복절이다. 요즘은 국경일이란 의미보다. 죄를 지은 사람들을 그중에서 코드가 맞는 즈그편 사람들을 사면해주는 한심한 날이 된 것 같아 광복절의 취지가 퇴색된 듯하여 무더운 날씨처럼 왠지 답답하고 찝찝한 기분이다.

 

에라 꼴 보기 싫은데 산에나 가자.

이렇게 무더운 날씨에 새로운 코스 답사하기보다는 평소에 즐겨 다니던 곳으로 산행하는 것이 현명한 생각이리라 철쭉꽃 필 때 즐겁게 다녀온 봉좌산의 시 경계 능선길로 훨훨 다녀오리라. 

 

기계면 학야리에서 경주시 안강읍 옥산 서원으로 넘어가는 임도를 따라 고개에 올라 아무도 없는 임도 한쪽에 얌전하게 주차를 하고 오른쪽 시 경계길 소나무 숲 오솔길을 따라 오른다. 저 멀리 구름 아래 봉좌산이 보이고 워낙 날씨가 가물어서 그런지 도토리가 알이 굵기도 전에 쭉정이로 누렇게 변해간다. 아마도 제대로 결실을 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칼등능선 바위에 이끼 풀들은 누렇게 바싹 말라 들어 생명이 위독한 상태다.

 

뿌연 운무 속의 기계면 학야리의 전경이 더위를 말해준다. 걸어온 능선길 뒤돌아보고, 멀리 건너편 자옥산과 도덕산도 보인다. 봉좌산과 가야 할 능선길 이글이글 무덥게만 느껴진다. 길가에 피어난 연보라색 예쁜 도라지꽃은 더위를 모르는듯하고, 얽히고설킨 넝쿨에 칡꽃이 활활 만발하여 그윽한 꽃향기로 벌들을 불러 모으면서도 더위를 타는 듯 방 낮에는 생기가 없다.

 

이 무더위에도 연리지 나무는 마주 붙어서 얼굴을 비비며 깊은 사랑을 나누는 우거진 숲 속으로 호젓한 오솔길은 이어진다. 이름 모를 분홍빛 야생화 참 예쁘기도 한데, 목마른 개옻나무는 더위를 참다못해 어느덧 고운 단풍이 물들고 말았다.

 

드디어 봉좌산 정상의 바위에 붙은 초목들은 먹은 것이 없으니 누렇게 황달이 들어 말라간다. 바위에 세워진 봉좌산 정상석 자그마한 체구가 아담하다. 맞은편에 운주산이 뿌연 운무 속으로 머리를 들이밀고 있다. 걸어온 시 경계 능선길도, 멀리 자옥산과 도덕산도 희미하게 보인다. 대구 포항 고속도로와 죽장, 청송으로 가는 국도가 가늘게 보인다. 기계면 봉계리 마을도 더위에 졸고 있고, 바위에 달라붙은 풀들은 가을이 온 것처럼 목이 말라 고사 직전이다. 기계면 봉계리 쪽도 초목이 누렇게 되어간다.

 

무덥고 메말라 숨이 막힐듯한 봉좌산을 뒤로하고 하산을 하는데, 건들면 냄새가 나는 꽃 매우 곱다. 길가에 으름이 주렁주렁,

요놈은 쌍방울이 참 실하게도 생겼다. 삼 봉으로 대롱대롱 실하게도 달렸다. 하산길엔 바람도 제법 솔솔 불어주니 그저 즐거운 오솔길, 너구린지 오소린지는 몰라도 날씨가 더워 토굴을 깊이 파고 속에서 낮잠을 자나 보다. 망개도 탐스럽게 여물어간다.

 

열심히 노래하는 꼬치자지 매미의 실체를 사진에 담는다. 욕쟁이 매미는 슬슬 가까이 접근하는 내 눈치를 보아가며 신나게 부르던 노래를 멈추고 바짝 경계하며 한참을 쳐다보다가, 자기를 해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차린 영리한 놈인지, 아니면 다가서는 나를 아예 무시하는 건방진 놈인지는 몰라도 다시 엉덩이를 쑥 빼들고 흔들어가며 카메라 렌즈 앞에서 열심히 노래를 한다.

 

한 곡 두 곡.. 지칠 줄 모르고 노래 솜씨를 자랑하듯 메들리로 자꾸만 불러 댄다. 자 이젠 됐다. 나는 갈란다. 네 혼자 실컷 놀아라. 열심히 노래하는 놈 흥을 깨트릴세라 뒷걸음으로 슬그머니 자리를 뜬다. 꼬치자지 매미의 리사이틀을 즐긴 기분 좋은 시간이다.

 

목이 마른 벚꽃 나무는 말라가면서 벌써 단풍이 물들어간다. 학야리의 전경이 아침보다 선명하다. 바위 위에서 말라가는 저 초목들 어이할꼬, 칼등 바위 위에서 고사 직전 부처손은 생명이 위독하다. 걸어온 길 돌아본 봉좌산 멀어 보인다.

 

함께 붙어서 연리지로 살다가 한쪽이 먼저 죽어 썩어지니 남은 한쪽은 깊은 상처만 남아있다. 말없이 떠나간 사랑아~~ 남은 긴 세월 어이할꼬~~ 애달프게 지난 사랑을 노래하는 상처 깊은 졸참나무 보는 눈이 안쓰럽다.

 

오늘은 무더운 날씨에 절대 무리하지 않는 산행으로 메말라 시들어 가는 자연 속으로 함께 거닐며 자연의 고통을 드려다 보고 끈질기게 생명을 이어가는 초목들의 처절한 몸부림을 체험하고 돌아온 의미 있는 산행이었다. 한줄기 소나기가 한없이 기다려지는 봉좌산의 목 타는 여름이 안타깝기만 하다. (2006.08.15 호젓한오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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