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함산 자락에서
솔길 남현태
이번 주는 마눌이 경주 안압지에 연꽃구경을 가자고 한다. 그래서 연꽃 구경도 하고 산행도 할 겸 토함산으로 산행지를 정하고 가다가 산행을 먼저 하고 돌아오는 길에 안압지에 들러 연꽃구경하고 오자고 하며 토함산으로 먼저 올라간다. 그러나 그 생각은 잘못된 것 연꽃이 오후에는 오므라든다는 사실을 모르고.
경주에서 덕동호를 지나 감포로 넘어가는 추령재에 있는 백 년 찻집 앞에 주차하고, 찻집 옆으로 난 길을 따라 산행을 시작한다. 찻집 둘레의 철조망에 매달려서 피어난 메꽃이 아침 이슬에 화사하니 걸음을 멈추고 카메라를 겨눌 수 박에. 등산로 초입에 "아름다운 경주 토함산 가는 길" 노란 색깔의 깔끔한 이정표가 눈에 들어온다. 녹음 우거진 호젓한 을 따라 토함산 산행은 시작되고, 운지 버섯이 여기저기 구름 모양으로 아름답다.
비가 내린 뒤라서 능선 길에선 산들바람이 싱그럽게 불더니만, 그러나 바람기 없는 오르막길에선 습기가 많아 후덥지근한 것이 몹시 더워진다. 연리지가 아닌 같은 뿌리에서 자라난 나무가 올라가다 붙었다 떨어졌다 사랑을 나누면서 만남과 이별의 상처가 깊어져 몹시 쓰라려 보인다. 신라 성골의 피를 받은 왕족 나무인가 보다. 사진을 찍는 동안 오늘은 웬일로 아줌마가 재바르게도 앞서간다.
죽은 참나무에 자라는 아름다운 버섯이 운지인듯한데 색깔이 약간 다른 것 간다. 나무에 뚫린 구멍이 꼭 여자의 거시기 처럼 생겼어 사진을 찍어 보았는데, 성희롱이 없는 자연 앞에선 누구나 나름대로 상상의 나래를 펴는 자유가 주어지는 것이 아닐까 싶다. 토함산 정상 부위의 계곡에 산사태가 난 모양이 마치 커다란 하트 모양으로 왕창 무너져 내렸다. 무너진 토함산이 누구를 저렇게 애가 타도록 사랑했는가 봅니다.
토함산의 정상 부위가 파란 하늘 아래 선명하게 보인다. 작년 여름에 올 때는 우중에 산행이라 방향도 모르고 그냥 앞만 보고 올라갔었는데, 오늘은 토함산 어깨 위 날씨가 참 화창한 것이 이제 하늘이 완연한 가을빛이다. 전망 바위에서 바라본 조망은 올망졸망 산봉우리 위에 뭉게구름 두둥실 흘러가니 시원하고 올라온 능선길도 내려다보니 꼬불꼬불 정겹다.
마지막 정상을 향하여 발걸음 재촉하는데, 여기도 노란 각시원추리가 피어 가는허리를 흔들어 반긴다. 정상부위의 억새밭을 지날 때, 아직도 낮잠에 들지 않은 달맞이꽃이 따가운 햇볕에 눈을 찡그리며 졸리는 듯 바라본다. 토함산 정상에는 햇볕은 따가워도 바람이 참 시원하다. 정상석 뒷면에는 최재호 시인의 "토함산" 이란 시가 새겨져 있다
정상에서 마눌에게 사진 몇 장 찍어주고 찍혀 보았는데, 보조 찍사의 솜씨가 여일치 못한지 사진이 검게 나왔다. 정상에서 불국사 쪽 조망은 뿌연 운무 위에 구름 두둥실 흘러가고, 덕동호와 동대봉산 쪽 조망도 역시 구름이 두둥실 이다. 정상에서 조금 내려오다 그늘을 찾아 점심을 먹고 내려오는데 날씨가 선선해지면서 갑자기 짙은 안개가 몰려온다.
주위가 어두워지는 것이 비가 올 것 같아 하산길 발걸음을 재촉한다. 올라갈 때 청명한 사진을 찍은 전망 바위에서의 정상모습이 갑자기 안갯속으로 사라졌다. 토함산의 어깨도 안갯속으로 들어가고, 옥빛 가을 하늘은 순식간에 온데간데없어 진다. 토함산이 우리를 위해 안개의 장막을 잠시 걷었다가 다시 장막을 치고 있는가보다.
졸참나무 고목 뿌리가 드러누운 여인이 다리를 치켜들고 있는 것처럼 참으로 요상하게도 생겼는데, 여기도 보는 이에 따라 생각은 자유다. 안개 덕분에 하산길은 시원한데, 또 여자의 거시기 처럼 구멍이 난 나무가 있어 들여다보니 개구리 집인 모양이다. 아래위 쪽에 개구리 두 마리가 고개를 내밀고 있다가, 카메라를 들이대니 뒷걸음질치며 자꾸 안으로 들어간다. 나중에는 아무리 드려다 봐도 보이지 않았다. 과연 깊기는 디게 깊은 모양이다.
마지막 오솔길을 걸어 내려오며 오늘은 안개 때문에 산행길은 호젓했다. 백 년 찻집에는 한 오백 년 민요 대금연주 가락이 울려 퍼지고 안에는 손님들이 많이 들어 차있다. 오후 3시가 조금 지나 하산하면서 오늘의 1차 목표 토함산 산행은 마무리하고, 짐을 챙겨 연꽃 구경을 하기 위해 안압지 쪽으로 슬슬 차를 몰아간다. 그러나 오후가 되면서 더운 날씨에 연꽃들이 모두 오그라들어 낮잠을 자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 체 안압지로 향하여 간다. (2006.08.20 호젓한오솔길)
'♥ 오솔길 문학방 ♥ > 솔길 구시렁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두마리 베틀봉 곰바위산 (0) | 2009.09.12 |
---|---|
대미산, 문수봉의 여름 (0) | 2009.09.12 |
봉좌산의 목 마른 여름 (0) | 2009.08.30 |
운주산 메마른 낙동 길 따라 (0) | 2009.08.30 |
기룡산의 여름 (0) | 2009.08.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