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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룡산의 여름

호젓한오솔길 2009. 8. 30. 18:19

 

 

기룡산의 여름

 

 

                       솔길 남현태

 

 

마지막 장맛비가 온다고 하던 날씨가 어제저녁에 소나기만 조금 내리고 아침에 일어나니 동녘 하늘에 뭉게구름만 두둥실 떠있는 쾌청한 날씨다. 알 수 없는 것이 요즘 날씨라 변덕꾸러기가 언제 또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 배낭에 우의부터 챙겨 넣고 산행준비를 한다. 날씨가 후덥지근한 것이 오늘은 산행하기가 무척 더울 것 같다. 마눌은 오늘은 날씨도 덥고 길도 미끄러운데 그냥 집에서 쉬라고 계속 걱정스레 만류한다.

 

간단한 산행을 하고 오리라는 생각으로 작년 10월에 다녀온 기룡산으로 향하여, 천 년 사찰  묘각사가 있는 골짜기 깊숙이까지 차를 몰고 들어가 주차를 하고 단거리 산행 코스를 택한다. 

 

자양 댐 쪽으로 가는 도중 풍광이 하도 좋아 천천히 운전하면서 속사로 몇 장 찍어본다. 자양 댐에 물이 별로 없다 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제방 공사 중이다. 길가에 아름다운 무궁화를 보고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서 내려서 사진을 찍어본다. 아직 아침 시간이라 무궁화가 참 싱싱하다.

 

묘각사 골짜기 들어가는 입구의 우거진 골짜기 풍경을 카메라에 담으면서 올라간다. 풍경도 좋고 날씨도 화창하다. 멀리 기룡산에는 뿌연 안개가 덮여 있다. 골짜기가 조용한 것이 오늘은 아직 아무도 안 들어 온듯하여, 풍경 좋은 묘각사 주차장을 맘대로 골라잡아 애마를 잘 모셔두고 울리는 계곡물 소리를 들으며 산행을 시작한다.

 

주차장 옆 시원한 계곡 폭포수에 간단히 세수를 하고 출발한다. 시멘트 포장길을 올라가다가 자욱한 골짜기를 뒤돌아 보니 너무나 아늑하다. 만나는 계곡마다 아담하고 비가 자주 내린 탓에 작은 폭포들이 즐비하다. 옷 벗고 들이대고 싶었지만, 또 세수만 하고 간다. 참나무 우거진 오솔길을 따라올라 가는데, 온몸에서 비지땀이 줄줄 흐른다. 오 막한 골짜기 매우 덥다.

 

작은 능선에 올라서면서 산들바람이 있어 콧노래가 나온다. 심심치 않을 만큼 꽃들도 피어 있고 노란 각시원추리 고놈들은 삼 봉이네. 하얀 광대버섯 예쁘기도 하여라. 빨간 야생화 지도 찍어 달라고 보채는 바람에 할 수 없이 주저앉아 공을 들여본다. 저기에 기룡산 정상이 보이고, 올라온 묘각사 골짜기 전경 은은하다.

 

자작으로 사진 한 장 찍어보니 애고 오늘은 시커먼 게 영락없는 산도둑 놈이네. 돌아본 능선길 하늘은 군데군데는 청명하고 대부분 구름이고 하여간 제 꼴리는 대로다. 기룡산 정상이 가까운 바위능선길  바위 위에 노란 바위채송화 골고루도 피었다. 돌아본 암릉길을 기룡산의 별미고, 기룡산 정상의 산불감시 무인 카메라와 안테나가 설치되어 있다.

 

능선길 저 멀리 보현산에는 안개가 자욱하고 보현산 올라가는 찻길에는 군데군데 산사태가 나서 계곡의 자연이 많이 훼손되어 있다. 인간이 훼손한 자연에서 재해가 발생한 안타까운 모습이다. 한참을 둘러본 기룡산 정상을 뒤로하고 내려오다 전망이 좋은 바위 위에서 점심을 먹고 기념으로 자작 사진을 찍어본다.

 

축축하고 외로운 오솔길을 따라 이름 모르는 버섯들이 줄줄이 피어 있는데, 노란 싸리버섯이 눈에 들어온다. 천 년 고찰 묘각사의 경내의 모습 한가로운데,  뒤뜰에서 핸드폰으로 열심히 통화를 하는 스님의 목소리만 요란하게 들린다. 부처님이 마음도 참 너그러우신 모양이다.

 

오메 반가운 것들 노란 각시원추리 너희들이 무더기로 피어 버렸네 그려, 고놈들 참말로 잘생겼다. 축대 위에 핀 능소화의 모습은 전설이 말해주듯 어쩐지 가련한 모습과 때 갈이다. 분홍빛 당국화도 오랜만이다. 이전에 보던 빨간 봉숭아도 예쁘다. 똑 따서 손톱에 붙이면 미친놈이라 크겠지.?

 

메리골드 왜 이리 곱고 화려한지 색깔이 너무 요염해서 핑 돌겠네. 가을도 아닌데 코스모스 너희들 벌써 다 피어 버렸네. 이 뙤약볕에 어쩌란 말이야. 김상희 노래 가사 몽땅 바꾸어야겠다. 여름에는 예쁜 척하지 마라. 너희보다 더 예쁜 것들이 아주 많다 하니.

접시꽃 끝물 혼자 뭐하다 말라가는 대궁이에 매달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꽃들이 화사한 묘각사도 뒤로하고 내려오는데 길옆 땅속 구멍에서 신기하게도 맑은 물이 대게 살 세게 나오네. 옹녀 굴인가 보다. 노란 바람개비처럼 생긴 꽃 아름답다. 노루오줌이라 하던가 너도 곱다. 자귀꽃 이제 너무 흔했어 인기 없다.

 

미니 폭포들이 즐비한 골짜기에서 바라만 봐도 오금이 써늘하다. 손발 씻고 머리감고 세수하고, 알탕은 못했다. 아까 보다 때 갈이 달라졌네 그려. 힘 있을 때 시원하게 마음껏 흘러라. 초 일 급수 계곡물 알탕을 안 하고 그냥 오려니 자꾸 미련이 남는다.

 

무더운 날씨에 무리하지 않고 3시간 30분 정도 걸린 가벼운 산행으로 오늘 산행을 마무리해 본다. 3번째 오른 기룡산이지만 우거진 숲길을 오르면 정상부 능선에는 아기자기한 암릉도 있고 천년고찰 묘각사도 둘러보고 사찰에서 가꾸어 놓은 꽃들 또한 아름다워서 볼거리가 많은 산행이었다. 카메라가 즐거운 산행이다. 집에 돌아와 산행기 사진정리 하는데 갑자기 밖에서 소나기가 우당탕 신나게 퍼붓는다. 참으로 이만하면 오늘 산행은 진짜 잘한 것 같은 기분이 든다.(2006.07.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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