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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몸과 누드는 어떻게 다른가

호젓한오솔길 2012. 10. 17. 22:46

 

누드를 벗기다

프랜시스 보르젤로 지음|공민희 옮김|시그마북스|192쪽|3만5000원

여성의 몸이 이상적 '누드(nude)' 소재로 여겨지게 된 것은 16세기에 들어서서다. 그전까지 미술에서 주로 다뤄진 누드는 젊고 아름다운 아폴로,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처럼 신(神)의 완벽함을 드러낼 수 있는 남성이었다.

여성 누드에 대한 이런 인식을 바꾼 건 이탈리아 화가 조르조네(Giorgione·1477년경~1510). 그는 1510년 베네치아에서 누워있는 여체를 그린 '잠자는 비너스'를 발표하며 여성 누드의 장을 열었다. 비스듬히 누워 수줍은 듯 가슴을 드러낸 이 새로운 형태의 누드화는 여체가 더 이상 '불편한 느낌'이 아니라는 사실을 각인시켰다.

남성 예술가와 여성 모델이라는 전통적 패러다임을 뒤집은 실비아 슬레이의 1971년 작‘누워 있는 필립 골럽’. /시그마북스 제공

 

"벌거벗는다(to be naked)는 것은 옷이 벗겨진다는 뜻이다.(…) 반면에 누드라는 말은 교양 있는 용어로, 불편함을 함축하고 있지 않다."

저자는 민망한 '알몸(naked)'과 문화적인 '누드(nude)'를 구분한 영국 미술사학자 케네스 클라크(Clark·1903~1983)의 유명한 정의(定義)로부터 시작해 '누드'의 역사를 짚어간다. 클라크의 정의 이래 '누드'란 '예술에서 표현된 당당하고 자신감 있는 몸'이라는 인식이 퍼져 왔다. 그렇다면 왜 현대미술관에는 몸의 화상(火傷), 울퉁불퉁한 지방까지 거리낌 없이 표현한 루치안 프로이트(Freud·1922~2011)의 회화처럼 관객에게 '불편함'을 주는 누드 작품이 전시돼 있는 걸까? 저자는 "사진술이 발달하면서 '이상적 누드'가 상업사진에 자리를 내주고, 예술가들이 대신 인체에 당대의 문제를 투영하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누드에 대한 입체적 해석이 돋보이는 책. 번역은 다소 거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