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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의 술 이야기 - ④ 보드카

호젓한오솔길 2012. 11. 6. 22:17

 

역사속의 술 이야기 - ④ 보드카

 

 

19세기에 무색·무미·무취 3무로 완성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마시는 증류주(Spirit)는 무엇일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위스키를 떠올리기 마련이다. 물론 수백년에 걸쳐 다양한 위스키들이 전 세계인들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소비량으로만 따진다면 러시아의 대표 술인 보드카(Vodka)가 1위다. 그렇다면 보드카는 어떻게 전 세계 사람들의 사랑받는 술로 자리 잡았을까.

보드카가 일반 증류주와 다른 점은 두 가지다. 첫째는 숙성과정이 없다는 것이다. 감자나 곡물을 발효시켜 연속 증류기를 통해 생산된 원액을 오크통 같은 다른 용기로 옮겨 숙성하지 않고 바로 병에 담기 때문에 색이 투명하다. 둘째는 활성탄을 통과시키는 여과 과정을 거친다는 것이다. 증류된 높은 알코올 도수의 원액을 물로 희석시킨 뒤 자작나무 숯을 통과시키는 여과 과정을 거쳐 무색·무미·무취의 보드카가 만들어진다.

보드카의 기원은 12세기 ‘지즈네냐 보다(생명의 물)’로 기록돼 있다. 물이라는 ‘보다(voda)’에 작다는 뜻의 ‘카(ka)’가 합쳐져 보드카가 됐다. 하지만 보드카의 원형이 만들어진 시기는 증류법이 활발하게 동유럽으로 전파된 13세기 초가 유력하다고 할 수 있다. 당시의 보드카는 투명했으나 지금의 무취한 맛과는 사뭇 달랐다. 주재료인 감자가 그 당시에는 존재하지 않았고, 보드카 특유의 여과 과정 또한 19세기 중반 이후에 시작됐기 때문이다. 추운 지역의 특색에 맞게 높은 알코올 도수로 마시던 이 투명한 술은 슬라브족 지역인 폴란드, 헝가리, 러시아를 거쳐 발틱 지역과 스칸디나비아 반도까지 퍼져 나가게 된다.


12세기에 ‘생명의 물’ 보드카 탄생

현재 보드카의 모습을 만든 이는 19세기 중엽 러시아의 증류업자인 피요트르 스미노프(Piotr Smirnov)다. 스미노프가 만든 보드카는 현대 보드카의 발전사와 발자취를 같이 한다고 말할 수 있다. 19세기 중엽 러시아 귀족들을 대상으로 좋은 보드카를 공급하길 원했던 스미노프는 숯이 알코올의 불순물들을 거르고 잔미를 제거하는 데 효과가 있다는 연구결과를 접한다. 그 후 자신이 만든 보드카에 숯의 여과 과정을 도입해 순수하고 맑은 보드카를 추출하는 데 성공한다. 이후 스미노프의 보드카는 깨끗하고 상쾌한 맛으로 인기를 얻으며 상류층의 술로 자리를 잡게 된다. 1886년 보드카가 러시아 황실 공식 공급 술로 선정되며, 최고의 술을 만든 공로로 스미노브는 귀족 작위까지 받게 된다. 부와 명예를 얻은 스미노프는 자신의 보드카 제조법을 황제에 헌납하고 황실이 직접 관리할 수 있게 했으며, 그것이 바로 유명한 ‘Recipe NO.21’ 이다.

20세기 초 제정 러시아는 다른 유럽국가와 달리 전제주의를 고수하며 소수의 왕족과 귀족들이 사회 전체를 지배하는 구조였다.  이런 사회적 폐해로 1917년 10월 블라디미르 레닌이 주도하는 볼셰비키 혁명이 일어나, 귀족 계급의 모든 재산을 국가 소유로 몰수하게 된다. 피요트르의 대를 이어 왕실과 귀족들에게 보드카를 공급하던 블라디미르 스미노프(Vladimir Smirnov) 또한 부르주아 귀족으로 분류돼 증류소는 국가로 강제 몰수되고 자신은 죽을 고비를 넘기며 러시아를 탈출해 파리에 정착하게 된다. 이로써 러시아 귀족들의 전유물이었던 ‘스미노프 보드카’가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된다.


전세계로 전파된 보드카

블라디미르는 1920년대 이스탄불과 파리에 양조장을 만들고 보드카를 생산했으나 그 당시 프랑스에서는 칵테일 문화가 발달되지 않아 숙성 과정이 없는 보드카는 별로 인기가 없었다. 이에 새로운 기회를 찾기 위해 미국으로 진출하게 되는데, 1933년 금주법 폐지 후 칵테일 붐이 일어나자 보드카는 ‘화이트 위스키’라 불리며 엄청난 성공을 거두게 된다. 미국 보드카 시장을 개척한 스미노프는 확고한 시장 지위를 발판으로 해외진출을 통해 세계인들의 입맛을 사로잡는 대표적인 보드카로 성장하게 된다. 스미노프의 성공은 다양한 유럽산 보드카들이 미국에 진출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며 본격적인 보드카 전성시대를 이끌게 된다.

스미노프 이외에 창의적인 광고와 독특한 패키지로 유명한 스웨덴의 ‘앱솔루트(Absolut)’, 핀란드의 ‘핀란디아(Finlanda)’, 정통 러시아 보드카 ‘스톨리치나야(Stolichnaya)’ 등이 보드카 시장을 이끄는 대표적인 제품으로 손꼽히고 있다. 제조방식이나 원재료를 차별화시킨 프리미엄 보드카로는 폴란드의 ‘벨베디어(Belvedere)’, 프랑스의 ‘그레이구스(GreyGoose), 시락(Ciroc)’ 등이 있으며, 아이슬란드의 뜨거운 지열을 이용해 단식 증류기로 소량 생산하는 ‘레이카(Reyka)’도 유명하다. 이런 보드카는 무색·무취로 어느 술이나 음료와도 잘 어울리는 특징으로 칵테일뿐 아니라 다양한 음용 방법들이 개발되면서 세계에서 가장 많이 소비되는 주종으로 자리 잡게 된다.


 Tip     보드카 즐기는 방법
일반인들에게 칵테일을 만들어 보라고 한다면 생소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어느 것과도 잘 어울리는 보드카는 얼음과 과일 주스만 있으면 누구나 쉽게 보드카 칵테일을 만들 수 있다. 가장 대표적인 보드카 칵테일들을 소개한다.
△ 스크류드라이버 : 얼음을 채운 잔에 보드카와 오렌지 주스를 1대2 비율로 넣으면 간단하게 완성된다.
△ 블러디 메리 : 스크류 드라이버 제작하는 방법에서 오렌지 주스 대신 토마토 주스를 넣으면 완성되며, 같은 방법으로 크랜베리 주스를 넣으면 보드카 크랜베리를 만들 수 있다.
△ 보드카앤토닉 : 주스 대신 토닉워터를 넣고 레몬이나 라임 한 조각을 띄우면 완성된다.
△ 블랙러시안 : 얼음을 채운 잔에 보드카 50㎖를 넣은 다음 커피향 리큐어(ex.깔루아) 25㎖를 넣어주면 된다.
△ 화이트러시안 : 완성된 블랙러시안에 우유를 보드카와 같은 양(50㎖)을 넣으면 된다.

 

박준호 윌리엄그랜트앤선즈코리아 대표
전 유니레버코리아 식품사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