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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의 술 이야기 '소주'

호젓한오솔길 2012. 11. 6. 22:23

 

 

역사속의 술 이야기 '소주'

 

 

1231년 칭기즈칸의 대를 이은 오고타이칸은 살리타이로 하여금 고려를 정복하라고 명령한다. 동쪽의 숙적 금나라를 정복하기 위해서는 고려를 먼저 복속시켜야 했기 때문이다. 빠른 기동력으로 개성을 포위한 몽골의 기세에 놀란 최씨 무신정권은 서둘러 강화조약을 맺게 된다. ‘몽골 항쟁기’를 다룬 MBC 주말 사극 ‘무신’의 이야기다.

 

연기파 배우 정보석·김주혁·박상민씨 등이 출연하고 있는 ‘무신’에서 아들이 없어 고민하던 최씨 정권 2대 수장인 최우(정보석 분)가 명문가 자제인 김약선(이주현 분)을 자신의 딸인 최송이(김규리 분)와 혼인시켜 후계자로 삼으려 한다. 몽골에 대한 강경 무신들 사이에서 김약선은 괴로워하고 낮부터 소주를 찾아 마시는 장면이 자주 나온다. 이 장면은 역사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틀렸다. 몽골 초기 침략 시기인 1230년대 고려에는 술을 증류하는 기술이 전래되지 않아 소주라는 증류수가 없었기 때문. 술을 마셨다면 쌀로 빚은 ‘청주’였을 것이다. 소주는 1260년대 이후 몽골군이 고려에 장기 주둔하면서 증류법이 전해졌고, 이를 통해 개발됐기에 약 30년 이상의 역사적 차이가 있다.

 

 

개성, 안동 등 몽골군 주둔지에서 소주 탄생


과거 술은 전쟁 시 피로함과 두려움을 없애기 위한 군대 필수 보급품이었다. 수메르 지방에서 연금술사들에 의해 우연히 발견된 증류법은 몽골을 통해 러시아와 중국, 서남아시아 등으로 빠르게 전파됐다. 하지만 한반도에는 1260년 이후 본격적으로 전래됐다. 소주의 명산지로 유명한 개성, 안동, 진도, 제주 등은 몽골군의 주둔지였거나 몽골과 전투가 치러졌던 지역이었다. 몽골로부터 기본 증류 원리를 배운 고려는 청주를 이용해 지역 특성에 맞는 다양한 소주를 만들어냈고, 현재까지 전해오는 개성소주와 안동소주, 진도홍주와 제주민속주 등이 대표적이다. 소주의 옛 이름을 찾아보면 소주의 원류도 알 수 있다. 평안도의 심마니들은 지금도 소주를 ‘아랑주’라고 부르며, 개성에서는 ‘아락주’라고 부른다. 안동소주의 원래 이름 ‘아래기’는 아랍어로 ‘아라그(Araq)’였던 것이 몽골로 전해지면서 ‘아르히’(Araki·13세기어로 아라키)가 됐고, 한반도에 전해지면서 몽골어 ‘아라키’의 한국식 표기가 된 것이다. 일반 서민들이 아닌 양반만이 마실 수 있는 아주 귀하고 고급스러운 술이었다.

 

오늘날 쉽게 만날 수 있는 희석식 소주의 종류는 다양하다.

 

고려 후기 들어온 높은 도수의 소주는 조선시대에 들어서 중인층까지 급속도로 퍼지면서 과음으로 인해 많은 폐해가 발생하고 목숨을 잃는 사례가 빈번히 일어났다. 조선왕조실록만 봐도 소주에 대한 언급이 많이 나온다. 대표적인 사례를 보자.

지역 민속소주인 안동소주(왼쪽)와 제주민속주

 

·금주의 어려움을 이해한 세종
“신이 벼슬에 오를 때는 소주를 보지 못했는데 지금은 집집마다 있습니다. 게다가 소주 때문에 목숨을 잃는 이가 흔합니다. 금주령을 내려야 합니다.”
이조판서 허조가 소주의 폐해를 조목조목 논한다. 하지만 세종은 난색을 표한다. “엄금한다고 무슨 소용이냐. 막지 못할 것이다. 대신 술을 경계하는 글을 지어 신하들에게 내려주겠다.” - 세종15년(1433)

 

·소주를 금하는 글을 내린 성종
소주 과음으로 인한 폐해가 이어지자 성종은 “소주를 매우 숭상하는 풍습이 있다. 소주를 지나치게 마시면 사람을 상하게 하는 이치가 있는지라, 앞으로는 늙거나 병이 들어 약으로 복용하는 것을 빼고는 마시지 말도록 해라”라는 훈시를 내렸다. 이는 소주를 원기를 돋우는 약으로 생각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 성종21년(1491)

 

전통 소주의 쇠퇴와 희석식 소주의 등장
민간에서 널리 퍼졌던 전통 소주는 일제 강점기와 1960~70년대 경제 부흥기를 거치며 급격하게 쇠락의 길을 걷게 됐다. 오늘날 즐겨 마시는 대부분의 소주는 전통 소주에서 많이 벗어난 일종의 변종 소주다. 희석식으로 만드는 오늘날의 소주는 연속 증류법을 이용해 만든 고농도의 주정(에틸알코올)에 물을 넣어 희석시켜 만든다. 일제 강점기 주세법으로 인해 다양한 맛과 향을 가진 수많은 전통 소주들의 맥이 끊어졌고, 당시 일본에서 유행하던 연속 증류기를 도입해 대량 생산한 저가의 술들이 출시되면서 ‘신식 소주’라고 불렸다. 하지만 95도 이상의 에틸알코올에 물을 섞어 만든 희석식 소주는 그 자체로는 그윽한 향과 풍미가 거의 없어 감미료를 첨가할 수밖에 없었다.

 

박준호 윌리엄그랜트앤선즈코리아 대표 Juno.park@wgrant.com 전 윌리엄그랜트앤선즈 동북아 지사장 전 유니레버코리아 식품사업 총괄 조지워싱턴대 경영학 석사(MBA)

 

이런 희석식 소주가 국민주 반열에 오르게 된 것은 1960년대다. 당시 급속한 산업화로 인해 값싼 술에 대한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었다. 1965년 양곡관리법 공표로 인해 술 제조 시 쌀 사용이 사실상 금지되면서 증류식 소주의 전통은 단절되고, 희석식 소주의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리게 된 것이다. 그후 1960년대 말과 1970년 초 희석식 소주회사들의 건전성 확보 및 투명한 세원확보를 위해 수차례 통·폐합 과정을 거쳐 오늘날의 10개 소주회사로 정착했다.

 

현재 우리나라 1인당 국민소득은 2만달러가 넘는다. 소득 수준의 향상과 동시에 문화와 일상생활에 있어 우리 전통 문화에 대한 관심 또한 나날이 높아지고 있다. 또한 해외에서도 소위 한류라는 이름으로 우리 문화에 대한 관심과 인기가 올라가고 있다. 하지만 술에 관해선 선뜻 자랑스럽게 내놓을 만한 전통주가 없는 것이 현실이다. 중국의 경우 4500여개 백주 중 4대 명주 또는 8대 명주라 하여 등급을 매기며 국가가 품질을 관리하고 있으며, 각종 국가적인 행사에 국격을 상징하는 만찬주나 국빈 선물로 사용하고 있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는 전통주 품질 관리에 대한 체계나 등급은 고사하고 국제행사 시 만찬주로 사용할 마땅한 전통주조차 찾기 쉽지 않은 실정이다. 이는 우리 전통술에 대해 얼마나 무관심했나를 여실히 보여준다. 그나마 최근 전통주에 대해 관심을 갖고 옛 것을 복원하고 지키려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는 것은 다행이다.


/이코노미 플러스
 글=박준호 윌리엄그랜트앤선즈코리아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