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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내 방전된 원기 돋워주는 '전복삼계탕'

호젓한오솔길 2014. 3. 28. 22:37

 

 

겨우내 방전된 원기 돋워주는 '전복삼계탕'

 

 

[맛난 집 맛난 얘기]
서울시 중구 <서울삼계탕>

 

한기(寒氣) 가시는 춘분 무렵이면 사랑채 마루 한쪽 구석에서 암탉이 달걀을 품었다. 학교에 다녀와도 아침에 본 그 자세 그대로였다. 꼼짝 않고 하루 종일 알을 품고 있는 암탉을 보면 어린 마음에도 참 안쓰럽고 대견했다. 몇 주 후면 꿈속인가 싶을 만큼 아련하게 삐삐거리는 소리가 미약하게 들렸다. 날이 갈수록 삐약 소리는 점점 커졌다. 마른 논에서 뜯어온 개풀을 이 빠진 부엌칼로 잘라 쌀겨를 섞어 먹였다. 조금 더 자라면 들판에서 개구리를 잡아다 곱게 다져 주었다.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병아리들은 천방지축이었다. 철없기는 하룻강아지와 어금지금했다. 더는 통제가 안 될 때쯤엔 싸리를 반구형으로 엮은 어리에 병아리를 가뒀다. 조금 더 자라면 닭도 아니고 병아리도 아닌 중병아리가 된다. 이 정도 자란 놈을 약병아리라고 불렀다. 아버지는 약병아리를 잡아서 푹 고아 할머니께 드렸다.

 

 

웅추 생닭으로 고아 전통 맛에 충실한 삼계탕

할머니가 내 수저에 얹어주는 닭고기 한 점 맛은 엄마의 무서운 눈총을 충분히 감수할 만했다. 나중에 삼수갑산을 가더라도 일단 포기할 수 없는 맛이었다. 봄이면 추위와 싸우느라 겨우내 움츠렸던 몸이 풀어진다. 아무래도 원기를 보충해줘야 한다. 봄볕과 병아리에 머물던 생각은 이내 삼계탕으로 번졌다. 한 번은 꼭 가봐야지 했던 서울 시청앞 <서울삼계탕>의 전복삼계탕이 떠올랐다.


	전복삼계탕

이 집 삼계탕은 400g 내외의 웅추(雄雛)를 재료로 쓴다. 웅추는 부화한 지 50~60일 정도 된 수평아리다. 오래 전부터 신뢰를 쌓아온 농장에서 양질의 웅추를 공급받는다고 한다. 우리나라 사람이 좋아하는 정도의 쫄깃한 육질에 고단백 저칼로리여서 최근의 건강 중시 트렌드와도 부합한다. 칼로리 뿐 아니라 지방과 콜레스테롤도 낮은데다 단백질은 높아 ‘3저1고’의 식재료로 불리기도 한다.

도계한 웅추 육계는 운송이나 가공대기 시간을 제외하고는 냉장고나 냉동고에 들어갈 이유도 여유도 없다. 생닭 상태로 웅추를 삶기 위해 여성 주방장이 새벽에 출근한다. 매일 매일 새벽마다 1~2시간 정도 1차로 삶아낸다. 이 과정에서 기름을 제거하고 한방재나 다른 부재료는 넣지 않는다. 오직 닭에서 우러나는 진국으로 국물을 낸다.
삼계탕(1만3000원) 속에 들어가는 재료도 인삼, 대추, 찹쌀 외에는 없다. 전통 맛과 조리법에 충실한 삼계탕이다. 다만 썬 대파가 많이 들어가 국물 맛을 좋게 한다. 그러나 대파가 들어가면 아무래도 국물이 걸쭉해진다. 대파 향이나 걸쭉한 국물을 싫어할 경우 미리 부탁하면 파를 적게 넣는다. 전복삼계탕(2만원)은 여기에 큼직한 생전복 세 마리가 들어간다. 전복과 함께 끓여 국물 색깔이 살짝 파란색을 띤다.

 

 

맛깔스런 반찬에 바다의 보양식재료 전복도

전복삼계탕은 미리 간을 맞춰 내온다. 대체로 짜지 않은 편이다. 그러나 싱겁게 느껴지면 식탁에 놓인 소금으로 간을 맞춰 먹는다. 찬으로는 얼갈이열무김치, 섞박지와 함께 닭 모래주머니 볶음이 나온다. 얼갈이열무김치는 풋풋하고 싱싱한 맛이, 큼직한 반달 모양의 섞박지는 잘 익은 아삭한 맛이 일품이다. 둘 모두 식당에서 직접 담가 3일간 익혀서 내온다.


	전복삼계탕과 내용물

무엇보다 닭 모래주머니 볶음은 마치 잘 삶아놓은 골뱅이를 씹는 느낌이 든다. 씹을수록 고소하고 쫄깃함이 오래 간다. 찬과 함께 인삼주도 한 잔 내온다. 이 인삼주는 삼계탕을 안주삼아 먹어도 좋지만 펄펄 끓는 탕에 부으면 잡내 제거와 육질 향상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이때 생마늘을 함께 넣어 살짝 익혀 먹으면 맵지 않은 마늘을 달게 먹을 수 있다. 닭 속의 찰밥은 그냥 밥으로도 먹지만 소화기능이 떨어지는 사람은 국물에 불려서 죽처럼 먹으면 한결 속이 편하다.

삼계탕에 들어가는 전복도 매우 실하다. 알고 보니 주인장이 인근에서 복집, 고깃집과 함께  참치집을 운영해 늘 싱싱한 생전복 조달이 언제나 가능하다. 전복마다 모두 살이 통통 올라있다. 탕 속 전복이 세 마리인데 애피타이저 격으로 먹으면 몸도 마음도 든든해진다. 보양식 재료로 예부터 쌍벽을 이루던 닭과 전복 아니었던가? 그걸 한 그릇에 넣어 먹는 메뉴가 바로 전복삼계탕이다. 겨우내 방전된 몸에 새 힘이 불끈 솟는 느낌이 든다.

 

 

돈이 되면 우선 닭을 한 30마리 고아 먹겠다

이 집 주인장은 해군 장교 출신으로 항해사를 거쳐 해운항만청 공무원이었다. 식당을 운영하던 형님 부부가 어느 날 교통사고로 어린 조카들을 남겨두고 유명을 달리했다. 그 바람에 공무원 생활을 접고 형님을 대신해 외식업에 뛰어들었다. 벌써 수십 년 전 일이다. 지금은 그의 아들이 경영을 맡고 있다. 녹물이 살짝 흘러내린 외관, ‘영양센타’라는 빨간 글씨, 그리고 그 아래 자리잡은 회전식 전기구이기가 이 집의 내력을 묵묵히 말해준다.


	매달려 있는 닭과 가게 외관

전복삼계탕을 다 먹고 나서 괜히 미안해지는 얼굴 하나 떠오른다. 스물아홉 꽃 같은 나이에 폐결핵으로 가버린 소설가 김유정. 이제 그의 고향, 강원도 금병산 자락에도 동백꽃(생강나무)이 서럽게 필 때다. 자신의 죽음을 직감한 김유정은 번역이라도 해서 돈을 마련해 고단백 음식을 섭취하려고 했다. 그가 죽기 열흘 전에 벗 ‘필승’에게 썼다는 편지는 지금 읽어봐도 가슴이 아려온다. 

네가 극력 주선하여 돈으로 바꿔서 보내다오.
필승아.
물론 이것이 무리임을 잘 안다.
무리를 하면 병을 더친다.
그러나 그 병을 위하여 무리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나의 몸이다.
그 돈이 되면 우선 닭을 한 30마리 고아 먹겠다. (하략)

<서울삼계탕> 서울시 중구 남대문로1길 55   02-775-4300

기고= 글, 사진  이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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