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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중의 식탁에서 전국의 길거리로 퍼져나간 떡볶이의 역사

호젓한오솔길 2014. 3. 28. 22:40

 

 

궁중의 식탁에서 전국의 길거리로 퍼져나간 떡볶이의 역사

 

 

한식이야기. 떡볶이

떡볶이는 흰 가래떡을 4~5cm 정도 길이로 잘라 네 쪽을 내어 물에 담갔다가 건져 양념한 쇠고기, 미지근한 물에 충분히 씻어 건진 애호박오가리, 데친 숙주, 표고버섯, 양파, 당근, 미나리 등과 함께 볶고 이 위에 잣과 계란 지단을 고명으로 얹는 고급 음식이다. 이렇게 만든 떡볶이는 떡과 채소 그리고 쇠고기의 맛이 어우러진 영양가 높은 궁중음식이었다.


	떡볶이
떡볶이. 사진=쿡쿡TV

 

그런데 지금 떡볶이가 가진 이미지는 길거리 노점상에서 어묵과 떡이 빨갛게 버무려진 모습이다. 임금님의 수라상에서 길거리 음식의 대표주자가 되기까지 어떤 사연이 있을까.

 

사실 궁중떡볶이와 현재의 고추장떡볶이는 역사적으로 큰 연관성을 지니지는 않았다. 떡을 사용하여 볶듯이 조리한다는 점은 유사하나 궁중떡볶이의 조리법이 전래되어 현재의 고추장떡볶이가 탄생된 것은 아니다. 매콤한 떡볶이는 ‘아무도 몰라, 며느리도 몰라’라는 고추장 광고카피로 잘 알려진 마복림 할머니가 만든 것이라 전해진다.

 

고추장떡볶이의 탄생비화(?)인즉슨 이렇다. 1953년, 3년 동안의 피난살이로 너나 할 것 없이 먹고 살기 힘들었던 시절, 마복림 할머니는 집안의 귀한 손님을 대접하기 위해 중국 음식점을 찾았다. 맛있게 먹는 식구들을 보면서 본인은 중국 요리에 쉽게 손을 댈 수가 없었다고 한다. 허기를 채우기 위해 집어 든 것은 개업식용 공짜 떡, 그런데 떡을 집다가 친정아버지가 먹던 짜장면 그릇에 떡을 빠뜨리게 됐다. 짜장면 양념이 묻은 떡을 먹어보니 생각보다 맛이 좋았고, 여기서 떡을 고추장으로 양념해도 맛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날의 실수가 한국의 국민 간식을 탄생시키게 된 것이다.

 

이렇게 탄생한 떡볶이가 대중적인 인기를 끌기 시작한 때는 70년대 무렵이다. 신당동 지역에 밀집되어 있던 떡볶이 전문점들의 번영은 떡볶이집 DJ의 인기 때문이다. 특별한 여가생활을 즐길만한 곳이 없을 그때 당시 떡볶이집 DJ들은 지금의 아이돌과 같은 소녀들의 우상이었다. 인기 있는 떡볶이집 DJ는 실제 라디오 방송에 소개까지 됐다고 한다. 떡볶이집 DJ의 유명세는 떡볶이의 유명세로 이어졌고, 7080세대에게 떡볶이란 음식이기 이전에 그들의 청춘을 추억하는 매개체가 됐다.

 

고추장떡볶이의 탄생지라고 할 수도 있는 신당동의 떡볶이 골목에는 여전히 점포 20여 개가 밀집되어 있다. 주로 어묵이나 만두, 삶은 달걀, 라면, 쫄면 등을 첨가해서 만든 즉석 떡볶이를 먹기 위해 몰리는 사람들로 문전성시를 이룬다.

 

국민의 대표 간식으로 자리 잡은 떡볶이는 그 후에도 계속 진화했다. 1970년대 밀가루 장려 운동으로 밀가루 떡으로 만들던 떡볶이가 1990년대 이후 쌀떡으로 바뀌고 최근에는 숫자모양의 떡, 칼라 떡, 채소나 치즈가 들어있는 떡 등이 개발돼 맛은 물론 눈까지 즐겁게 한다.

 

소스도 고추장뿐 아니라 카레, 크림소스, 짜장 등 다양화됐고 그저 어묵, 쫄면, 라면 정도가 아니라 최근에는 떡볶이 안에 넣는 내용물도 다양해져 해물을 잔뜩 넣은 해물떡볶이나 갈비를 넣은 갈비떡볶이도 생겨났다. 요즘에는 일명 마약떡볶이, 눈물떡볶이라고 부르는 일반 것보다 몇 배나 매운 중독성 강한 떡볶이도 인기를 끌고 있다.

 

/조선닷컴 라이프미디어팀 정재균 PD jeongsan5@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