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정맥수필

낙동정맥 1구간 (천의봉~ 통리역~ 백병산~ 석개재)

호젓한오솔길 2017. 7. 21. 19:43

 

 

낙동정맥 1구간 (천의봉~ 통리역~ 백병산~ 석개재)

 

 


                                                            솔길 남현태

 

 


심이란 게 끝이 없는 듯하다. 우연히 시작한 백두대간을 작년 10월에 종주를 마치고, 내친 걸음에 9정맥 완주를 해버리자는 생각으로 올해 1월부터 고운산정 산악회와 "금남,금강정맥"을 시작하고,  2월부터는 산으로클럽 산악회와 "낙남정맥"을 시작하면서 정작 가까이에서 늘 접하면서도 기회가 되지 않아 숙제로 남겨두었던, 정맥 중에서도 대장 격인 낙동정맥을 3월부터 팀 산행으로 진행하기로 한다.


백두대간을 함께 걸었던 발이 맞는 선두팀 중에서 낙동정맥을 하지 않은 종주 희망자들이 모여서 산행을 하기로 하였는데, 산이좋아(김종현)님, 당산(이종성)님, 민트(이현주)님과 호젓한오솔길 4명이 같이, 산이좋아님 차로 삼수령까지 이동하여 산행 후 택시로 차를 회수하는 방식으로 낙동정맥 천리길의 첫 출발을 시작하기로 한다.


3월부터 매월 둘째 주 일요일에 산행을 하기로 하였는데, 첫 회부터 토요일이 아버님 기제일 이라 저녁에 시골에서 가족 친지들이 모여서 제사를 지낸 후 서둘러 포항으로 돌아와 산행준비를 하여, 새벽 5시에 팀 산행이라 산행 거리를 조금 길게 잡은 낙동정맥 길을 출발하려고 하니 왠지 마음이 바빠진다.


'춘래불사춘'이라 하였던가 수요일부터 갑자기 찾아온 꽃샘추위가 온 몸을 웅크리게 하더니, 주말에는 조금 누그러진다고 하여 얇은 등산복으로 준비를 하였다가, 태백산 지역의 일요일 날씨를 찾아보니 일요일 낮 기온이 영하 6~7도나 된다고 하여, 다시 두툼한 겨울 옷과 방한 모자로 준비를 한다.


새벽 4시에 일어나 아침을 먹은 후 산행준비를 마치고 잠시 기다렸다가 5시가 조금 지난 시간에 집 앞으로 나가니, 예정 시간 보다 조름 일찍 차가 도착한다. 4사람이 타고 7번 국도를 따라 올라가다가 모두 아침을 먹지 않고 나왔다고 하여 망향휴게소에 들러서 민트님이 준비해온 도시락과 휴게소에서 라면을 시켜 든든하게 아침을 먹는다.


예상보다 조금 늦어진 아침 8시 50분경에 강원 태백시에 위치한 삼수령에 도착하여 차에서 내리니, 포항의 날씨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바람 끝이 차갑다. 모두 산행 준비를 서둘러 8시 55분경에 잠시 백두대간 길을 따라 천의봉 낙동정맥 분기점을 향하여 천리 행군의 첫 발을 내딛는다.


삼수령(피재)은 높이 920m로, 백두대간과 낙동정맥의 분기점이며 삼강(한강, 낙동강, 오십천)의 발원지이다. 이 곳에 떨어지는 빗물이 북쪽으로 흘러 한강을 따라 황해로, 동쪽으로 흘러 오십천을 따라 동해로, 남쪽으로 흘러 낙동강을 따라 남해로 흐르는 분수령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또 하나의 이름은 삼척 지방의 백성들이 난리를 피해 이상향으로 알려진 황지로 가기 위해 이 곳을 넘었기 때문에 '피해 오는 고개'라는 뜻으로 피재라고도 한다.

 

삼수령 표지석 앞에서 기념 사진을 찍은 후 약 1.3Km 지점에 있는 천의봉 낙동정맥 분기점을 향하여 대간 길을 따라 걸음을 옮기니, 차갑게 느껴지던 날씨가 잠시 천의봉 오르는 길에서 숨소리가 거칠어지면서 슬슬 몸이 달아오르기 시작한다. 낙동정맥 분기점을 알리는 표지석 앞에서 기념 사진을 찍고, 민트님과 자리 바꾸어 나도 한 장 찍혀본다.

 

뒷면에는 "낙동정맥 예서 갈래치다."라고 새겨져 있는 표지석을 앞뒤로 느긋하게 인증 사진을 찍고, 잠시 내려선 곳에 삼대강 꼭짓점을 알리는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삼대강 꼭짓점을 알리는 안내판에는, 이 곳은 백두대간이 낙동정맥을 분기하는 곳이자 오십천 유역, 낙동강 유역, 한강 유역의 경계가 꼭짓점을 이루는 곳으로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삼해로 물길을 뻗는 지리적 명소라고 적혀있다.

 

이제 본격적인 낙동정맥 길을 따라 작은 피재 쪽으로 향하는 발걸음, 꽁꽁 얼어 있는 길을 밟으며 사나운 개소리 들리는 농장 옆을 지나 작은피재 아스팔트 포장도로를 건너니, 산불감시 아저씨가 어디서 오느냐고 한다. 낙동정맥 하는 길이라고 하고 건너 산자락으로 오르니, GPS 신호음이 울리는 작은 봉우리에 낙동정맥 구봉산(910m)을 알리는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구봉산(910m)은 적각의 된각마을 뒤쪽에 있는 산으로 산의 봉우리가 아홉이어서 구봉산이라 한다고 하며, 또는 풍수학에서 아홉 마리의 봉이 춤을 추는 형상의 명당이 있는 산이라서 구봉산이라 한다고도 한다. 단기 4239년에 발행한 삼척 군지에는 구봉산으로 되어있으며, 구봉산에는 큰 늪이 있고, 전하는 말에 구봉산의 구늪 아래 팔판대지의 명당이 있다고 한다.

 

이어지는 농장 언덕은 길가에 낙엽송은 삐딱하게 서서 이곳 바람의 거칠기를 말해주고, 돌아본 낙동정맥 출발점 천의봉의 풍차들은 천리 먼 길 무사히 잘 가라고 수줍은 듯 빙글빙글 손짓한다. 대박등으로 향하는 언덕 마루금 길 우측 마른 잡초 우거진 산비탈 농장에 정겹게 뛰놀던 고라니 두 마리 멍하니 서서 우리를 구경하길레 카메라를 겨누었더니 도망을 친다.

 

우측에 작은 마을을 품은 아늑한 골짜기 위를 지나 고라니 노닐던 비탈밭 언덕길을 걸으며, 돌아본 매봉산은 점점 멀어지고, 대박등을 알리는 봉우리에 올라선다. 대박등은 가파른 절벽 능선 중의 꼭대기를 의미하는 대박은 대배기(꼭대기를 의미하는 경북방언)의 이두식 한자표기로 여겨진다. 이 곳은 동쪽은 가파른 절벽이나 서쪽은 완만한 구릉을 이루어 한반도의 특징인 "동고서저 지형"을 실감할 수 있다.

 

대박등에서 돌아보니, 멀리 천의봉에서 걸어온 능선 길이 한 눈에 펼쳐진다. 햇살이 약간 비치면서 날이 살짝 풀렸는지 이어지는 마루금 길이 녹을락 말락 하더니, 마루금을 채석장에 내어주고 우회하는 비탈길 지나, 마루금에 올라서니, 주위에 돌을 바닥에 깔아 등산로를 정비하였다. 다시 낙엽 깔린 능선길 따라 낡은 안내판이 있는 전망대 봉우리에 도착하니 트인 조망은 운무에 흐릿하고, 이어지는 발걸음은 통나무 벤치가 놓여져 있는 유령산 정상에 올라선다.

 

유령산(923.4m)은 통리와 도계 사이에 있는 산으로 흔히 느릅령이라고 한다. 옛날에는 우보산 또는 우산으로 부르던 산이다. 느릅령은 황지지방에서 도계지방으로 넘어가는 큰 고개이다. 옛날에 삼척지방에서 경상도로 가기 위해 꼭 넘어야 했던 고개이다. 고개 마루에 산당이 있어서 매년 음력 4월 16일에 통리와 도계지역 사람들이 모여 시산제를 올린다. 큰 느름나무가 고갯마루에 많다고 느릅령 이라 불렀다고 하나 사실은 느릅나무 보다는 넘어재, 넘을재에서 온 말이 아닐까 하며, 또한 늘어진 고개 즉 낮은 산등을 의미한다고 본다.

 

유령산 정상에서 과일을 먹으면서 잠시 쉬고나서, 유령산을 내려서니 "유령산령당" 이라는 현판이 걸린 사당이 있는 느티재에 도착한다. 산불감시원 차가 지키고 있는 느티재를 뒤로하고 오색 리본 주렁주렁 달린 정맥길 따라 가파른 길 밟아 오른다. 조망 시원한 바위 봉우리는 조망 사진이 붙은 안내판 너머로 트인 조망은 운무에 희미하다.

 

전망 봉우리를 뒤로하고 낙엽길 따라 통리역으로 향하는 길. 낙엽 바스락거리는 참나무 비탈을 잠시 내려서니 돌탑 옆에 통나무 벤치 여러 개 놓인 느릅령에 도착한다. 느릅령은 황지지방에서 도계지방으로 넘어가는 큰 고개이며, 옛날에 삼척지방에서 경상도로 가기 위해 꼭 넘어야 했던 고개이다. 큰 느름나무가 고갯마루에 많다고 느릅령 이라 불렀다고 하나 사실은 느릅나무 보다는 넘어재, 넘을재에서 온 말이 아닐까 하며 또한 늘어진 고개 즉 낮은 산등을 의미한다고 본다.

 

통리 마을이 내려다 보이는 아늑한 언덕배기를 따라 지금은 폐역이 된 통리역 앞에 도착하여, 잠시 통리역 안으로 들어가보니. 관광 모노레일 열차가 오지 않는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통리역에서 돌아 나와 낡은 기차 레일을 건너 통리역 주변 풍경을 돌아보고, 해발 720m의 고도를 알리는 통리재 삼거리 도로에서 우측에 리본 몇 개 달린 가파른 비탈길을 찾아 오른다.

 

언덕배기에서 내려다본 통리마을 풍경은 어딘지 모르게 조금 허전하게 보이고, 땅바닥이 검은 '폴리저탄장' 울타리 옆으로 잠시 걸어 올라가니 낙동정맥 길이 라기에는 너무 허름한 길, 얄궂은 나뭇가지들이 얼굴을 때린다. 잠시 가파른 길 따라 919.5봉 올랐다 작은 목쟁이 건너니, 통리재에서 올라오는 좋은 길과 만나고 우리가 걸어온 길은 등산로가 아니라는 이정표를 만난다.

 

점심을 먹고 갈까 하다가 앞에 보이는 봉우리 2개를 올라가서 먹기로 하고 걸음을 재촉하여, 백병산이 2.9Km 남았다는 이정표가 있는 1,094봉에 올라서니 점심을 먹기에는 장소가 너무 산만하다, 낙엽 포근한 안부로 내려가서 점심 시간을 살짝 넘긴 오후 1시경에 싸락눈이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하는 낙엽 위에 둘러 앉아 조금 늦은 점심을 먹는다.

 

손끝이 시러울 정도로 추위를 느끼면서 점심을 먹은 후 파란 산죽이 융단을 깔아놓은 듯한 마루금을 따라 "면안등재"를 알리는 이정표를 지나고, 잠시 오르막 길 올랐다가 낙엽송 사이로 급한 내리막길 내려서니, 깔끔한 헬기장이 있는 고비덕재에 내려선다.

 

고비덕재는 원통골에서 구사리 안쪽 백산들로 가는 재이다. 재 꼭대기가 편편한데, 이곳에 고비 나물이 많이 자생한다 해서 "고비덕재" 라고도 하고, 옛날 지금의 태백 황지사람들이 동해안에서 나는 소금을 비롯해 각종 해산물을 물물교환하기 위해 넘나들던 주요 교통로이기도 하다. 통리 또한 내륙과 바다로 통한다고 해서 이름이 붙여진 원통골에서 그 지명이 유래하였는데 이 역시 같은 맥락이라 볼 수 있다.

 

고비덕재에서 잠시 기념사진을 찍어보고, 파란 산죽으로 이어지는 오르막 길을 한바탕 오르고 나니, 참나무 숲 속으로 밋밋한 능선의 산죽길이 걸음을 백병산으로 안내한다. 너와 지붕 정자가 있는 백병산 삼거리에 도착하여, 우측으로 0.4Km 거리에 있는 백병산으로 향하는 길에 젊은 부부 산꾼을 만나 함께 낙동정맥의 제일 높은 봉우리인 백병산(1,259.3m)정상에 도착한다.

 

백병산은 강원도 태백시 황연동에 위치한 산으로 이 산은 과거에 백산이라 불렀다. 척주지에 삼태산은 우보산과 마주보고 있는데 가장 높고 크다. 삼태산 동쪽은 백산이고, 백산 너머는 우검산이다. 또 백산 동쪽은 영은사 뒷산이고 동북쪽은 마라읍 산이다. 라고 기록되어 있어 백산과 백병산이 같은 산이라는 것이 인정된다. 백산이란 이름은 산꼭대기의 바위가 흰 빛깔을 띤다는 데서 유래하였다. 산은 꼭대기가 바위절벽으로 되어있고, 그 모습은 흡사 바위 병풍을 둘러놓은 듯하니, 산 이름은 흰 색조의 병풍과 같은 형상에서 유래했음을 알 수 있다.

 

삼거리에서부터 함께 올라온 부부 산꾼 덕분에 일행 4명이 단체사진을 찍혀보고, 서둘러 삼거리로 돌아 내려와 발걸음을 재촉한다. 이어지는 파란 산죽길을 잠시 스피드 올려서 달려 큰재라는 안내판이 세워진 곳을 지난다.

 

큰재(1,087m)는 인근 고비덕재와 더불어 옛날 태백 통리 주민들이 동해로 소금을 구하기 위해 넘던 길이며, 무거운 소금 가마니를 지고 다니느라 힘이 들어 "큰재" 라 하였다. 인근 골짜기 중에 통리쪽으로 소금골이라는 골짜기가 존재하며, 우리 조상들은 귀중한 소금을 구하기 위하여 높고 험한 길을 어렵게 다니곤 하였다.

 

그럴듯한 바위 언덕길 넘어 오르락 내리락 이어지는 능선길 올려다본 갈참나무 가지에 여기저기 겨우살이가 많이 달려있는 곳에서 일행들을 앞에 보내고 사진을 찍으며 따라가기로 한다. 파란 산죽 사이로 오르내리는 마루금 오솔길은 양지쪽에 폭닥한 낙엽길 내려가면 가파른 오르막 길 올라서고, 지친 다리를 작은 봉우리 통나무 의자에서 잠시 쉬어가기로 한다.

 

다시 이어지는 오르락 내리락 능선길에서 발걸음은 점점 무거워지고 산행 시간은 예정보다 자꾸 지체되는 듯 한데, 휴양림 삼거리의 이정표에는 면산이 4.8Km 남았다고 하니, 오늘 산행길이 아직 9.3Km 정도 남은 듯하다. 나무 의자가 멋지게 놓여있지만 앉아볼 시간도 없이 아름다운 산죽길과 운치 있는 낙엽 길 오르락 내리락 하다 보니, 갑자기 고개를 팍 낮추는 길은 토산령에 도착한다.

 

토산령(950m)은 신리재로 이어지는 도로가 나기 전에 삼척시 풍곡리 주민들이 태백시 철암으로 넘나들던 주요 산길이었다. 지금은 사람이 다니지 않는 작은 오솔길이 되었으나 옛날에는 큰길이 있었으며, 당시 이 곳에 유난히 토끼들이 많다고 해서 "토산령' 이라 불리웠다.

토산령이서 잠시 간식을 먹으며 휴식을 취하고 가파른 구랄산으로 오르는 길 날이 저문다고 까마귀들 서글프게 울어대는 비탈길이 멀기만 하니, 구랄산이 지랄산이라고 한다.

 

구랄산(1,071.6m)은 구알산을 편하게 발음하다 "구랄산" 으로 되었다고 한다. 이 곳은 옛날 심마니들이 쉬어가는 굴이 많이 있어 심마니와 굴과의 관계로 인해 구랄산이라 불리우게 되었다. 인근지역에도 산삼이 많이 자생 하였다 한다.

구랄산 정상에서 기념 사진을 찍고, 내려가면 다시 올라 가라고 하니, 떨어지는 내리막 길이 두렵기만 하다.

 

갈참나무 꼭대배기에 달린 겨우살이는 만병통치 약으로 몸에 좋다고 하니 탐스럽기만 한데, 찬바람에 뿌려대는 가루눈이 갈색 낙엽 능선을 하얗게 덮어 간다. 고목에 주렁주렁 달린 겨우살이에 바쁜 발걸음 멈추어가며, 겨울나무 사이로 달려가는 무딘 발걸음, 가루눈이 덮은 미끄러운 비탈을 가파르게 세 번을 접어 오르며 면산 가는 길은 마지막 남은 체력을 모두 내려놓으라는 듯 힘든 고난의 길이 된다.

 

면산 오르는 길에 올려다 본 서쪽 하늘가엔 나뭇가지 사이로 보름달처럼 빨간 저녁 해가 종일 구름 속에서 놀다가 부끄러운 듯 고개 갸우뚱거린다. 가파른 오르막이 끝나고 파란 산죽길이 지친 발걸음을 면산으로 이끌어, 오후 6시경에 오늘의 마지막 봉우리이고 낙동정맥의 제 2봉인 면산(1,245.2m)에 올라선다.

 

면산(1,245.2m)은 삼척시 상사미리에서 이곳을 바라보면 멀리 보인다 하여 먼산이라 하다가 이후 말이 변해 "면산" 이라는 설이 있고, 또한 옛날 난리 때 이 산으로 피신하여 화를 면했다고 해서 "면산" 이라는 설도 있다. 면산의 주봉인 이 곳은 두리봉이며 생긴 모양이 두루뭉술하게 생겨서 붙여졌다.

 

잠시 휴식을 취하며 기념사진을 찍는데, 이제 다 왔다는 안도감이랄까 표정들이 밝다. 면산에 세워진 이정표에는 석개재가 4.2Km 남았다고 하지만, 실제 거리는 4.5Km 정도 된다고 한다. 다시 이어지는 하얀 산죽길은 낙엽 위에 내린 눈으로 내리막 길이 미끄럽게 느껴지고, 서서히 어둠이 내려서는 길을 따라 면산에서 석개재 까지는 오르막이 없는 길인 줄 알았는데, 어둠 속에서 모두 렌턴을 켜고 잠시 오르락 내리락 하는 비탈길이 지친 다리를 잡고 늘어진다.

 

날이 어두워 지면서 기온이 영하로 급강하하는지, 배낭 옆에 꼽아둔 물병의 물을 마시려고 하니 입안에 살얼음이 가득 찬다. 하산 중에 콜택시를 부르고 하면서 조심조심 서두른 걸음이 어둠 속에 마지막 봉우리 1,009.3 봉을 지나면서 가파른 내리막 길이 곤두박질치듯 석개재로 떨어진다. 예상시간 보다 1시간 30분 정도 지연된 저녁 7시 30분경에 석개재에 도착하여, 택시기사 아저씨의 도움으로 단체사진을 찍으면서 오늘 산행길은 종료된다.

 

휴대폰 GPS를 끄고 택시 안에서 비행기 모드를 해지하니, 세간에 관심을 모았던 인간과 기계의 바둑대결에서 이세돌 9단이 인공지능 컴퓨터 알파고에게 내리 3연패를 당하여, 우리 인간이 기계에게 지배당하게 될 끔찍한 미래가 멀지 않았음을 알리는 것 같아 모두에게 실망을 안겨주더니, 오늘 1승을 거두었다는 감동적인 뉴스가 떠오른다.


메타 요금으로 계산한다는 태백시 콜택시를 타고 아침에 주차해 둔 삼수령에 도착하니, 택시비가 4만 5천 몇 백원이라고 한다. 지난 번에 혼자 백두대간 땜빵 산행을 할 때 백봉령에서 닭목령까지 6만원을 지불한 기억이 있어 오늘도 6만원 이상 예상을 했는데, 생각보다 저렴하다는 생각이 든다.


저녁 시간이 늦어진 관계로 모두 배가 허출하다고 하며, 우선 밥부터 먹고 보자고 하여 황지 터미널 앞 식당에 들어가 쇠머리 국밥 한 그릇씩 먹고 출발한다. 칠보산 휴게소에 한 번 들리고 포항으로 돌아오는 길은 모두 녹초가 되는데, 체력이 대단한 산이좋아님은 끝까지 혼자 운전을 하여 자정이 넘은 시간에 포항에 무사히 도착한다. 내가 제일 먼저 내려서 집으로 돌아오면서 오늘 동고동락한 산우들에게 보내는 무한한 감사의 마음과 함께 낙동정맥 출발 1구간 산행길을 성공리에 갈무리해본다.

(2016.03.13 호젓한오솔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