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정맥수필

낙동정맥 2구간 (석개재~ 삿갓봉~ 진조산~ 답운치)

호젓한오솔길 2017. 7. 21. 19:45

 

 

낙동정맥 2구간 (석개재~ 삿갓봉~ 진조산~ 답운치)

 

 

                                                       솔길 남현태

 

 

4.13 총선이 열흘 앞으로 다가오니 전국이 선거 열풍으로 들썩인다. 집권 여당(새누리당)과 쪼개진 야당(더민주당, 국민의당)이 당내 파벌 간의 공천 파동으로 여야 할 것 없이 진통을 겪더니, 살아 남은 후보들은 서로 상대방의 약점을 꼬집으며 등 돌린 유권자들에게 심판을 해 달라고 저마다 목청을 높인다.

 

당선만 되면 본연의 업무인 국정은 뒤로 하고 파당 싸움의 눈치 살피느라 밥값도 못하다가 선거 때만 되면 나타나 한 번만 더 믿어달라고 굽신굽신 절을 하며 길거리 유세를 벌이는 꼴불견인 낡은 양반들, 단군이래 태평성대라고 하는 대한민국 경제를 살리는 데는 자기가 적임자라고 말도 안 되는 선심 공약을 늘어놓으며 떠들어댄다.

 

세상이 아무리 시끄럽고 눈꼴 시려도 계절은 어김없이 찾아와 주위의 벚꽃이 화사하게 만개하여, 연분홍 물결이 선거 바람 타고 전국을 휩쓸고 있는 4월 첫째 주말을 맞이한다. 이번 주에도 토요일은 출근을 하고, 일요일은 지난 달에 이어 낙동정맥 2구간 산행을 가기로 약속이 되어있다. 낙동정맥은 원래 매월 둘째 주 일요일에 산행을 하기로 했는데, 다음 주에 대원 중에 1명이 중요한 일이 있어, 이번 달은 첫째 주에 진행하기로 한다.

 

낙동정맥 2구간은 강원 태백시와 경북 봉화군 사이에 위치한 석개재에서 시작하여, 경북 울진군 답운치에 도착하는 산행으로 별로 이름이 알려진 명산은 없지만 해발 일천 고지의 마루금을 오르내리며 남하하는 약 26Km의 거리로서, 경북에서 제일 추운 북쪽 지방에 위치하여 봄이 아직 이른 듯 하고 조망은 별로 없어 보이는 호젓한 산행길이 예상된다.

 

공교롭게도 산행을 가는 일요일이 내 생일이고 하루 뒤 월요일은 어머님 생신이라 일요일에 함께 생일을 하기로 했는데, 내가 일요일 새벽에 산행을 가게 되어 토요일 저녁에 가족들이 모여 푸짐하게 생일을 상을 차려 먹고, 나는 새벽 4시에 산행 출발을 위해 알람을 3시 20분에 맞추어 두고 일찌감치 혼자 잠자리에 들어간다.

 

평소 보다 일찍 잠자리에 들었더니 깊은 잠은 오지 않고 여러 번 뒤척이다가 알람 소리에 일어나서, 마눌이 먼저 일어나 준비해 놓은 도시락과 간식거리로 식수 다섯 병과 함께 배낭을 챙기니, 어머님께서 나와 보시고 이렇게 무거운 것을 지고 하루 종일 어에 걸어댕기노 하시며 조심하라고 신신당부하신다.

 

새벽 4시에 집을 나서는데, 이른 시간이라 아들 부부는 자고 있고 현관 앞으로 따라 나온 어머님이 만 원짜리 몇 장 접어서 손에 쥐어 주시며, 오는 길에 막걸리 값이나 하라고 하신다. 니가 돈이 없어 그러는 게 아니고 내가 주고 싶어 그러니 넣어가라고 하신다. 어제 저녁에는 아들 부부에게 생일 용돈을 받고, 오늘 산행 길에 어머님에게까지 용돈을 받아 드니, 이런 것이 사람 사는 정이라는 생각에 왠지 가슴이 뭉클해진다.

 

팔순이 넘은 어머님의 배웅을 받으며 현관문을 나서는 발걸음이 가볍다. 약속 장소에 나가 잠시 기다리는데, 생각 보다 날씨가 참 포근한 것이 바람결이 부드럽게 느껴진다. 지난 주에 조금 두꺼운 봄 옷을 입고 남쪽으로 낙남정맥 산행을 갔다가 산행 중에 더워서 혼이 났지만, 오늘 산행은 북쪽 지방이고 오후에는 비가 온다고 하여 망설이다가 하복으로 입고, 하산 후에 갈아입을 여벌 옷은 따뜻한 것으로 준비해 온 것이 옳은 판단이라는 예감이 든다.

 

잠시 후 네 명을 태운 차가 도착하여 나는 멀미 때문에 늘 앞자리에 타고 산행 들머리 석개재를 향하여 7번 국도를 따라 올라간다. 원래 오늘은 날머리 답운치에 차를 세워두고, 택시를 타고 석개재로 이동하여 산행을 시작하기로 하였는데, 작년에 낙동정맥을 종주한 알파인님이 들머리 석개재에서 날머리 답운치까치 차를 이동해주겠다고 하여 오늘 산행 길에 동참을 하게 되었다.

 

동해안 7번 국도를 달려 올라가다가 울진군에서 불령계곡을 따라 봉화군으로 가는 도중에 사랑바위 휴게소에 들어가 민트님이 준비해 온 도시락을 펼치고, 휴게소에서 도토리묵, 감자빈대떡 등을 주문하여 막걸리까지 몇 잔 나누어 마시니, 산행도 하기 전이 이미 포식을 하여 배부른 몸이 무겁게만 느껴진다.

 

휴게소 주위 사랑바위에서 사진을 찍으면서 여유를 부리다 보니, 예상보다 늦어진 8시 30분이 조금 지나서 오늘의 산행 들머리에 간이 화장실까지 있는 석개재에 도착하여 트랭글 GPS를 켜고 느긋하게 행장을 챙긴다. 지난 번 산행에서 너무 늦게 어두울 때 하산을 하여 정체를 잘 몰랐던 석개재는 하얀 안개가 분주하게 넘나들며 사늘한 사월의 아침 기온이 온몸을 오싹하게 한다.

 

추위를 느끼면서도 얇은 여름 티를 두 개 껴입은 후 바람막이를 배낭에 챙겨 넣고, 오후에 비가 온다고 하여 입고 온 보온 재킷은 차에 벗어 두고 가기로 한다. 이래저래 행장을 꾸리는 시간이 조금 길어져 아침 8시 48분경에 오늘의 대리 기사인 알파인님의 배웅을 받으며 안개바람 사늘한 석개재를 뒤로하고 4명이 산행길에 오른다.

 

잠시 오르막을 오르다가 자욱한 안개 속으로 오르락 내리락 하는 길, 서늘한 날씨가 다섯 병이나 준비한 식수가 많이 남을 것 같아 한 병을 미리 비워버린다. 석개재에서 출발 할 때는 춥게 느껴지던 날씨가 산길을 걸으니 서서히 몸이 달아오르면서 전신에 땀이 솟아오를 쯤에 껴입은 티 하나를 벗어 배낭에 넣고, 여름 바지에 여름 티 하나만 입고 산행을 하니 덥지도 춥지도 않는 것이 기분이 상쾌하다.

 

오르락 내리락 하던 낙엽 길에 이어 파란 산죽이 덮은 가파른 길 잠시 치고 오르고, 앙상한 나무 사이로 펼쳐지는 산죽 평원을 바라보며 걷는 오르막 길에서 GPS 신호음이 울리더니, 북도봉(1121.0m)이라는 종이에 비닐 코팅된 어설픈 표시가 나무에 감긴 보잘것없는 봉우리에서 기념 사진을 찍고, 민트님과 자리 바꾸어 나도 한 장 찍혀본다.

 

이어지는 낙엽 마루금 길은 사방에 안개는 점점 짙어져 몇 십 미터 앞도 잘 보이지 않는 미지의 세계를 열어간다. 덕풍계곡과 묘봉이 갈라지는 삼거리 정맥길에서 우측으로 조금 벗어나 앉은 묘봉으로 향한다. 허름한 헬기장인 묘봉(1167.6m)에 도착하니, 여기가 묘봉임을 알리는 '준.희'님의 팻말과 산님들의 리본이 갈참나무 가지에 주렁주렁 달려 있다.

 

정맥길에서 돌아앉은 호젓한 묘봉 정상에서 기념 사진을 찍고, 팀 산행을 오니 나도 자주 사진을 찍혀본다. 묘봉에서 삼거리 쪽으로 되돌아 오는 길 안개는 점점 더 짙어지고, 삼거리에 돌아와 포즈를 취해보고 덕풍계곡 쪽으로 향한다.

 

사실은 조금 전 여기 삼거리에서 덕풍계곡으로 향하다가 묘봉쪽이 정맥길인 줄 잘못 알고 가서는 묘봉 정상에서 넘어가는 길을 찾으니 길이 하나도 없기에 아차 하면서 다시 돌아오는 알바 아닌 알바를 하고 와서 시침이 떼고 있는 것이다. 묘봉에서 바로 넘어가는 등산로가 있었더라면 아마도 오늘 큰 알바를 할 뻔했다, 여러 명이 산행을 할 때는 지도를 잘 보지 않은 체 서로 믿고 그냥 등산로만 따라 꾸벅꾸벅 가다 보면 종종 알바를 하기 십상이다.

 

묘봉 삼거리에서 덕풍계곡 쪽으로 향하는 길은 안개 속에 산죽이 아름답게 펼쳐진다. 산죽 길 따라 잠시 오르내리던 길이 솟구치더니, 용인등봉(1,124m)을 알리는 안내판과 리본들이 걸린 봉우리에 올라서고 기념사진을 찍어주고 찍혀본다. 지난 주 낙남정맥 산행 길에서는 산행 들머리와 날머리 표지판 앞에서 두 번만 찍혔더니, 오솔길님 사진이 너무 없더라 하면서 중요한 곳에서는 사진을 찍고 가자고 한다.

 

이어지는 산죽 길은 산죽의 키가 그리 크지 않는 것이 다행이다 싶다. 산죽 길 따라 이리저리 이어지는 마루금은 문지골 삼거리에서 걸음을 멈춘다. 유명한 덕풍계곡 문지골로 향하는 길에도 오색 리본이 많이 달려있어 혹시나 하면서 다시 한 번 지도를 확인하고 우측 길로 접어든다.

 

얼굴을 때리는 잔잔한 나뭇가지 헤치면서 걷는 길, 안개는 점점 짙어져 주위에 산봉우리는 물론 앞쪽에 뭐가 있는지 알 수도 없이 그냥 길만 보고 걸어가는데, 습기가 차서 잘 보이지 않던 안경이 나무 가지에 걸려 떨어진 줄도 모르고 가다가 돌아와서 찾아간다. 사방에 안개 때문에 안경을 끼나 벗으나 앞이 보이지 않기는 마찬가지인 것 같아 아예 안경을 벗어 배낭에 넣고 침침한 눈으로 그냥 걷는다.

 

습기를 먹은 낙엽이 부스럭거리는 길, 안개가 휘어감은 나무는 가지에서 물방울을 뚝뚝 떨구니, 마치 비가 오는듯하여 갈 길이 먼 발걸음을 조바심 나게 한다. 임도를 만나 잠시 따라 걷다가 헤어지니 좌측으로 통신탑이 있는 봉우리에 올라선다. 통신탑 철망에 리본이 주렁주렁 달려 있는 삿갓봉(1119.1m)이라고 한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안개 속으로 이어지는 내리막 길과 산죽 오르막 길은 앞을 알 수가 없는 신비의 세계로 산꾼들을 유인하더니, 다시 임도에 내려선 마루금은 등산로와 임도를 들락날락 거린다. 등산로를 따라 봉우리를 넘으면 다시 주위를 배회하는 임도를 건너고, 호젓한 낙엽 길과 산죽 길을 따라 서서히 고도를 높이더니, 백병산 삼거리를 알리는 팻말이 달린 봉우리에 올라선다.

 

정맥길에서 멀리 벗어나 있는 백병산은 포기를 하고 바람의지 되는 낙엽 위에 앉아 점심을 먹으니, 젖은 옷 겉에 바람막이를 입어도 추위를 느낄 정도로 한기가 몰려든다. 점심을 먹고 출발을 하는데, 일기 예보에는 저녁 때부터 온다고 하던 비가 후두둑 후두둑 낙엽 위에 떨어지기 시작한다.

 

오랜만에 임도를 다시 만나고 빗방울이 점점 거세게 내리는 것 같아 모두 배낭을 풀고 커버를 씌운다. 우의를 입으면 더울 것 같아 비를 맞으며 걷는 걸음은 934.5봉에 올라서고, 젖은 몸이 그래도 기분은 좋은지 서로 기념사진 찍어주고 같이 찍혀보고 가파른 길 내려갔다 다시 이어지는 오르막길 발걸음은 헬기장이 있는 840m 봉우리에 올라선다.

 

헬기장 봉우리에서 잠시 휴식한 발걸음은 급경사로 고도를 낮추더니, 임도가 가로 지르는 한나무재로 내려선다.

한나무재는 경상북도 울진군 금강송면 쌍전리에 있는 고개로 작은 늪과 재가 있다 하여 '적은넓재'라도 하고 '전나무진'이라고 부른다. 남쪽에는 진조산이 있으며, 서쪽으로는 십이령 중의 하나인 넓재가 있고 동쪽으로는 넓은 밭이 있는 평전마을이 있다.

 

비를 맞으며 한나무재를 건넌 발걸음은 잠시 지루한 오르막길 밀치고 올라 덩그런 무덤 2기가 지키고 있는 오늘의 마지막 봉우리 진조산에 도착한다.

진조산(908.4m)은 경상북도 울진군 서면 쌍곡리, 전곡리, 광회리에 걸쳐 있는 산으로 경상북도 내륙에서도 가장 오지에 있는 산이며, 낙동정맥의 줄기에 해당한다. 남쪽은 통고산, 북쪽은 삿갓봉, 서쪽은 응봉산으로 둘러 싸여 있다. 남사면과 북사면에 임업도로가 개설되어 있으며, 정상에는 주인을 알 수 없는 묘 2기가 있다.

 

오늘 마지막 봉우리라며, 느긋하게 기념사진 몇 장 찍고 나서 모두 배낭을 풀고 빵과 음료수 과일 등 간식거리를 꺼내놓고 마지막 빗속의 만찬을 즐기는데 으실으실 한기가 몰려든다. 간식을 먹고 나서 알파인 님에게 전화를 하여, 약 1시간 후에 도착하니, 차 안에 히터 빵빵 하게 틀어놓으라 하고 이제 4.3Km 정도 남은 답운치를 향하여 발걸음을 재촉한다.

 

진조산에서 잠시 내려오다가 서두른 발걸음은 임도가 있는 굴전고개를 건넌다. 굴전고개를 알리는 안내판과 리본을 지나 오르락 내리락 지루하게 이어지는 작은 봉우리들을 넘어 해발 710m를 알리는 봉우리에 올라서고, 마지막 피치를 올린 발걸음은 봄비 촉촉히 내리는 오늘의 종점 답운치에 도착한다.

 

답운치(619.8m)는 경상북도 울진군 서면 쌍전리와 광회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늘 안개가 끼어있어 마치 구름을 밟고 넘는 듯한 고개라 하여 답운재라고 한다. 동쪽은 통고산 자연 휴양립과 접하고 서쪽은 옥방천을 사이에 두고 봉화군과 접경을 이루며, 36번 국도가 동서로 관통한다.

 

진조산에서 약 4.3Km의 거리를 약 40분 만에 빗길은 달려 내려오니, 알파인님은 아직 자동차 시동을 걸지 않았다고 한다. 잠시 기다렸다가 뜨뜻한 바람이 나오는 차 안에서 칙칙 감기는 젖은 옷을 벗고 뽀송한 옷으로 갈아입으면서 오늘 산행 길은 종료된다.


시작부터 끝까지 사방을 에워싼 자욱한 안개 속으로 절반은 비를 맞으며 걸은 오늘 산행은 도중에 습기가 낀 안경까지 벗고, 앞이 잘 보이지 않은 상태에서 대충 보고 대충 걸은 산행이 된듯하다. 안개 때문에 잘 보이지 않았던 우중충한 산길에서 달아오른 열기에 우의도 입지 않고 내리는 봄비를 맞으며 걸으니, 카메라가 비에 젖어 제대로 사진을 찍을 수가 없어 지금까지의 산행 중에 사진을 제일 적게 찍은 산행으로 기록에 남을 듯하다.

 

아침에 석개재에서 GPS를 켜고 꾸물거리다가 8시 48분에 산행을 시작하여 오후 5시 10분경에 비 내리는 답운치에 하산을 하였으니, 실제로 산행에는 8시간 22분 정도 소요된 듯하다. 포항으로 오는 도중에 식당에 들려 저녁을 먹으며 하산주를 할까 했는데, 당산님이 고모님 상을 당하여, 저녁에 공주까지 가야 된다고 하여 포항까지 빗길을 바로 달린다.

 

포항으로 오면서 전화로 미리 예약한 남구 대이동에 있는 식당에 들러 8일 전에 알파인님의 생일이었고, 오늘이 오솔길 생일이라고 하여, 케이크까지 싸다가 두 사람이 생일 축하를 받으며, 고소한 삼겹살 구워 생일 파티 겸 정겨운 하산주를 나누니, 한편의 다정한 드라마 같은 낙동정맥 2구간 산행 길을 성공리에 갈무리해본다.

(2016.04.03 호젓한오솔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