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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석봉 가을맞이 산행

호젓한오솔길 2017. 10. 7. 10:58

 

수석봉 가을맞이 산행



                        솔길 남현태



추석이 열흘 정도 남은 구월의 마지막 주 일요일은 원래 팀산행으로 진행 중인 호남정맥 산행을 가려고 했는데, 대원들의 추석맞이 별초 등 개인 사정들이 생겨 다음으로 미루어지게 된다. 하여 일요일에 마눌과 같이 가까운 곳으로 가서 가을 바람이나 쏘이고 오려고 이야기 하였더니, 힘들지 않고 뱀이 없는 곳으로 가야 된다며 요구 사항이 까다롭다.


북핵 상황으로 미국과 북한이 유엔(UN) 총회에서 '말 폭탄'을 주고 받는 설전을 벌이며, 북한은 공공연히 남조선을 단숨에 깔고 앉아 미국과 전쟁을 하겠다는 위기 상황에, 언제 폭탄이 떨어질지 모르는 서울 한복판에서 북한의 김정은이 주장하는 '사드 배치 철회'와 '주한미군 철수'를 부르짖으며, 대규모 반미 집회를 열고 있는 속이 시커먼 저 사람들은 도대체 어느 나라 국민들인지 알 수가 없다.


나라 안이 이런 혼란스런 상황에서 여야 정치권은 지난 과거를 붙들고 서로 뒤엉켜 진흙탕 싸움이나 하고 있다. 촛불 민심을 선동하여 보수 정권을 탄핵하고, 어부지리로 집권한 좌파 정권이 적폐청산 명목으로 그 동안 쌓인 분풀이라도 하듯 지난 보수 정권들의 사건을 낱낱이 파헤치며 보복성 재조사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 좌파 서울 시장이라는 사람은 그렇게도 할 일이 없는지 이명박 전전 대통령이 노무현 전전전 대통령을 자살을 하게 만들었다며 끓는 기름에 불을 붙이는 자극성 선동 발언을 하고 나선다.


이에 야당의 한 간부 국회의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이 왜 이명박 전 대통령 때문이냐'라고 주장하며, 검찰 조사 후 부부싸움을 끝에 권여사가 가출을 하고, 혼자 남은 노 전 대통령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라고 언급하여, 여권은 죽은 사람을 욕보이는 부관참시를 한 꼴이라며, 절대로 가만두지 않겠다고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드니, 야당은 본인의 자살로 중단되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640만불 뇌물 사건도 함께 재 수사를 해야 된다고 맞불 지원을 펼치고 있다. 이제 전전전 대통령 3명이 모두가 수사를 받게 되는 우리 정치의 본 모습인 복수혈전이 시작되고 있는 듯하다.


마눌과 산행을 할 곳이 마땅치 않아 궁리 끝에 생각을 한 곳이 포항시 죽장면에 있는 수석봉이다. 배고개에서 시경계를 따라 오르는 수석봉은 산행거리도 짧고 하여 오래 전부터 짜투리 시간 산행으로 영지버섯을 따면서 몇 년간 즐겨 다니던 곳인데, 한 동안 발길을 끊었다가 근황이 궁금하여 한 번 찾아보기로 한다.


일요일 아침에 느지막이 일어나 산행 준비를 하고, 오전 10시가 넘은 시간에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가니, 내가 자동차 문을 열어 두었는지 배터리가 방전이 되어 시동이 걸리지 않아 보험사 해피콜을 불러서 시동을 걸고 시작부터 어렵게 출발을 한다. 포항 시내를 빠져나가니, 사방이 운무인지 미세 먼지인지 뿌옇게 끼어 주위의 산봉우리들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시계가 흐릿하다.

 

죽장면 쓰레기 처리장 입구에 주차하고 임도를 따라 배고개로 향하는 길은 옛날에는 이 길로 차를 몰고 올라갔었는데, 지금은 수풀이 너무 우거져 있다. 포항시와 영천시의 경계인 배고개에 도착하니, 반대 쪽으로 장뇌삼 재배구역으로 입산금지를 알리는 일부분 산주인의 팻말이 세워져 있고, 올라갈 수석봉 쪽으로도, 외부인 출입금지를 알리는 일부 산주인의 팻말이 세워져 있다.


산의 번지 수만 적어둔 팻말은 출입금지 구역이 어디서 어디까지 인지 알 수가 없으니, 별 효험이 없는 듯하나 그래도 왠지 들어가기가 꺼림찍한 기분이 든다. 숲 속으로 들어서서 영지버섯을 살피며 오르는 길에 맨 먼저 노란 미역취 꽃이 피어 반기고, 이어 묵은 영지를 뒤집어쓰고 있는 3개가 한 몸이 된 실한 영지를 만났는데, 이것이 오늘 산행에 처음이고 마지막 영지가 된다.


낙엽 위에 하얀 몸뚱어리 밀고 오른 요놈들은 허증으로 나는 기침과 허약자 보신용으로 쓰인다는 '수정난풀'이라고 한다. 햇볕을 직접 받으면 말라 죽는다고 하는 뽀얀 '수정난풀'은 꽃이 수정처럼 보여 '수정난풀'이라고 하는데, 전 세계적으로 3~4종 밖에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우리 나라에는 '구상난풀'과 '수정난풀' 2종류가 서식하고 있다고 한다. 


그늘진 숲 속은 어느덧 가을 빛으로 물들어가고, 조망바위에서 가을 햇살 내려앉는 산등성이 너머로 뿌연 운무에 시야가 흐릿한 전경을 바라보고 있는데, 조상님 산소에 벌초를 하고 오는 노인과 중년의 아들 부자가 다정스럽게 내려간다. 해발 칠백 고지 능선에 올라서니 가을빛이 더욱 완연하고, 메마른 바위 주변의 나무들은 완전히 단풍이 들어버렸다.

 

초록의 미련을 떨치고 일찌감치 가을 옷으로 갈아 입은 나무들을 카메라에 담아보고, 가을 햇살 파고드는 숲 속 능선을 걸어 수석봉(820.5m)에 도착한다. 가파른 길 힘들게 따라 온 마눌과 수석봉 정상에서 기념사진 찍어주고, 찍혀보고, 어느덧 단풍이 물들어가는 수석봉 정상에서 자리를 펴고 점심 도시락을 펼친다.


올라올 때는 산모기와 날파리가 달려들고 무척 덥게 느껴졌는데, 시원한 가을 바람이 있는 수석봉 정상에는 잠시 앉아있으니 선득선득한 느낌이 든다. 헬기장 설치 용 시멘트 블록이 흩어져 있는 수석봉을 뒤로하고, 오던 길로 다시 내려 오는 가을 빛 속의 발걸음이 가볍다. 


호젓한 산봉우리에 독야청청 오래 살다가 쓰러져 죽은 노송의 유골은 속에 송진이 엉켜있어 불이 잘 붙는 '관솔'이라고 하여, 옛날에는 장작불을 붙이는 불쏘시개로 많이 사용하였으며, 전기가 없고 석유가 귀하던 시절 저녁에 마당에 불을 밝히는 초롱불 대신 관솔불 피워놓고 그 빛으로 길쌈을 하기도 하였는데, 그을음이 심하여 코구멍이 새까맣게 되었던 추억이 새롭다.

 

서둘러 단풍이 물들어 가는 바위에 고들어 가는 쑥부쟁이 잠시 고개 숙여 접사를 해본다. 가을이 익어가는 일광봉에 오르면서 돌아본 수석봉 모습. 숲 속의 가을은 속에서부터 익어간다. 누군가가 산아래 일광리 마을 이름을 따서. 일광봉(750.5m)이라는 표식을 달아 놓았다.


쇠물푸레나무 곱게 물들어버린 곳에서 잠시 걸음 멈추었다가 하산하는 길은 마눌은 올라오던 길을 따라 걷고 나는 숲 속을 이리저리 뒤지며 영지를 찾아보지만, 올라갈 때 숲 속을 훑으면서 내려오는 세 사람의 버섯 산꾼을 만났는데, 알뜰히도 따 갔는지 아니면, 처음부터 없었는지 예전에는 더러 보이던 영지버섯이 오늘은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울창한 숲 속은 봄에 잎이 늦게 피는 참나무는 아직 윤기가 나는 푸르름이 삭을 줄 모르는데, 잎이 일찍 피어나던 잡목들은 벌써 늙어 단풍 물들어 가고, 참나무 곧은 몸뚱어리 끌어안고 칭칭 감아 올라가던 얄미운 담쟁이는 부끄러운 듯 불그스레 얼굴을 붉힌다. 얽히고 설킨 숲 속은 제각기 분주하게 가을 채비를 서두르고 있는 수석봉, 하얀 참취꽃 마지막 자태를 사른다. 


걸음은 배고개 임도에 내려서고, 커다란 나무 등에 올라 타고 뒤엉킨 온갖 넝쿨들이 서로 생존 경쟁을 벌이느라 가뿐 숨 몰아 쉬며 마지막 사력을 다하는 듯 꿈틀거리는 배고개, 방초 우거진 임도를 따라 자동차로 돌아오니, 영지버섯 생각에 행여나 하면서 찾아왔던 수석봉 미니 산행 길은 종료된다.


배고개에서 수석봉까지 잠시 올라갔다 내려오는 것이 산꾼들에게는 하찮은 산행이지만, 마눌에게는 오늘도 무척 힘이든 산행이었다고 한다. 배낭을 풀고 혹시나 조마조마 하면서 자동차에 시동을 걸어보니 다행이 부드럽게 잘 걸린다. 꼬불꼬불 한 길을 따라 내려와 일찌감치 포항에 도착하여, 저녁에 삼겹살 구워 하산 주로 소주 한 잔 나누니, 구월의 마지막 일요일 하루가 그렇게 지나간다.

(2017.09.24 호젓한오솔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