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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주산 낙엽 따라 걷는 길

호젓한오솔길 2018. 1. 6. 19:13

 

운주산 낙엽 따라 걷는 길



                               솔길 남현태



계절은 어느덧 겨울의 시작이라는 12월로 접어든다. 지난 봄 최순실 국정 농단 사건으로 보수 대통령이 탄핵되고 어부지리로 집권을 하게 된 촛불 좌파 정부가 적폐청산이란 명목으로 지난 보수 세력들의 씨를 말리고 있는 속에서, 북한 김정은이 핵개발과 미국 워싱턴까지 날려보내는 장거리 미사일 발사 성공으로 한반도에 전운이 감돌고 있는 정유년도 마지막 한 장 남은 달력이 벼룸박에 걸려있다.


핵개발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에 성공한 북한이 좌파 정부가 꼬리를 내리고 있는 남한은 안중에도 없고, 오로지 핵 보유 국가로 인정받는 조건으로 미국과 일대일 협상을 요구하고 있으니, 북한 김정은의 요구 사항이 무엇인지는 불을 보듯 뻔한 사실이고 보면 나라의 앞날이 실로 평탄치만은 않아 보인다.


나라의 미래가 남한을 제외한 북한과 미국의 협상에 따라 좌지우지 하게 될 상황이 다가오는 것이 눈에 보이는데, 좌파 정부는 적폐청산 작업으로 국가의 정보 기관은 마비되고, 군 사이버 부대 댓글 사건 수사로 군의 사기가 떨어질 대로 떨어져 있는 것이 답답하게만 보이니, 이러다가 초가삼간을 다 태우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일요일은 대구에서 손녀 돌잔치가 있어 산행을 갈 수가 없을 것 같아 토요일에 가볍게 근교 산행이나 다녀오려고 하니, 산불경방 기간이라 웬만한 산길은 통제되고 하여 갈 곳이 마땅치가 않다. 아침에 늦게 일어나 갈까 말까 망설이며 집안에 죽치고 있다가 점심 때가 다 되어 가는 시간에 배낭을 들고 나선다.


별로 갈만한 곳도 없고 하여, 자도봉어 종주나 하고 올까 하다가 뻔질나게 다니던, 집에서 가까운 운주산으로 가서 낙동정맥 낙엽길 따라 잠시 걸으면서 필요한 나무스틱 재료나 두어 개 잘라 올 요량으로 포항시 기계면 남계리에 위치한 불랫재를 향하여 가는 도중에 기계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고 자동 세차까지 하는 여유를 보이며 느긋하게 차를 몰아간다.


봄에 두릅을 꺾는데 사용하기도 하고 험한 산길에서 마구잡이로 사용하기 편리한 갈고리처럼 생긴 나무스틱을 만드는 재료를 구하기 위해 스틱을 차에 두고, 주머니에 작은 톱을 하나 넣어서 산행을 하다가 쓸만한 쇠물푸레나무가 있으면 잘라서 집고 다니다가 집으로 가지고 가서 잘 다듬어 스틱으로 사용하기 위함이다.


한적한 불랫재 길가에 주차하니, 고개 너머 영천시 쪽으로는 시멘트 포장이 완료되어 있는 듯 하다. 불랫재에서 양쪽으로 오르는 낙동정맥 등산로는 별로 필요하지도 않을 것 같은 수입 목재로 만든 나무 계단이 설치되어 있고, 낙동정맥 트레일을 알리는 안내판과 운주산까지 4.2Km 임을 알리는 이정표가 설치되어 있다.


나무계단을 따라 절개지에 올라서서 내려다본 불랫재는 한적하기만 하고, 잠시 이어지는 가파른 오르막 길은 황금빛 낙엽 일색이다. 첫 번째 봉우리에 올라서니, 영천시 쪽으로 벌목을 하여 트인 조망은 멀리 보현산과 면봉산, 기룡산과 작은보현산 모습이 시원스럽게 펼쳐지고 발아래 도일리 마을 겨울 햇살이 다사롭다. 살짝 당겨본 중도일리 양지 돔에 오순도순 모여 사는 겨울 속의 한가로운 산골 마을 풍경은 늘 정겹기만 하다. 


거친 찬바람이 마른 가지 사이를 헤집고 지나가는 사늘한 낙동정맥 능선 길은 발걸음 마다 바스락거리는 낙엽들의 비명 소리만 분주한데, 오르락 내리락 이어지는 참나무 빼곡한 낙엽 능선 길엔 꽃피는 봄날에 산나물 하러 다니고, 무더운 여름날 시원한 산들바람을 찾아 거닐던 지난 날의 추억들이 새록새록 돋아난다.


운주산의 낙동정맥 능선 길은 전국의 어느 정맥 길 보다 수목이 울창하고, 오르내림이 부드러워 콧노래 흥얼흥얼 잠시 잊고 지냈던 지난 날 18번 레퍼토리들을 한곡한곡 점검하면서 호젓하게 걸을 수 있는 명품 중에 명품 등산로라고 해야겠다. 운주산의 명물인 부드럽게 가지를 드리운 아름다운 노송 아래 자연적으로 작은 바위 벤치가 몇 개 놓여 있는 멋진 쉼터를 이루고 있어, 무더운 여름 산길에 잠시 쉬어가기 일품이다. 


멋진 노송 아래 잠시 머물던 걸음은 우측 벌목을 한 사이로 올려다 보이는 운주산을 바라보며 걷는 길, 벌목을 한 비탈엔 소나무와 참나무, 잡목들이 최종 승자가 되기 위해 생존 경쟁을 하고 찬바람 부는 능선에 초겨울 햇살이 다사롭게 느껴진다. 잡목들 사이에 곧게 뻗은 쇠물푸레나무를 살피며 걷는 걸음은 안국사에서 올라오는 삼거리에 도착한다. 


안국사 삼거리 이정표를 지나, 운주산 정상으로 향하는 길은 수북이 쌓인 낙엽이 미끄럽게 느껴지고, 바스락거리는 황금빛 낙엽을 밟으며 운주산의 낙동정맥 봉우리에 먼저 오르니, 낙동정맥 해발 797m를 알리는 준.희님의 팻말이 달려있다. 낙동정맥 봉우리에서 바라본 기북면 은천지 쪽으로 트인 풍경이 유일한 조망이다.


영천시 쪽에 위치한 운주산 정상으로 가는 길은 삼거리 이정표 옆으로 잠시 오르막 길 올라 헬기장이 있는 운주산(807m) 정상에 올라선다. 운주산(806.4m) 정상에는 정상석이 여러 개 어지럽게 박혀 있었는데, 지금은 두 개로 정리가 된 것 같다. 영천시에서 운주산 정상에 설치한 제천단과 오늘은 산꾼이 한 사람도 보이지 않는 운주산 정상은 호젓하기만 하다. 


제천단에서 바라본 조망은 멀리 기룡산, 보현산, 면봉산, 작은보현산, 수석봉등 주위에 산봉우리들이 모두 펼쳐지고, 북으로 죽장면 쪽으로도 올망졸망 산줄기들 늘어선 조망이 시원스럽게 트인다. 인적이 없는 조용한 운주산 정상을 뒤로하고, 올라온 헬기장을 지나 오던 길로 돌아 내려 가는 길가에 있는 왕바위에 올라 잠시 쉬어가기로 한다.


생각보다 오르기가 별로 까다롭지 않는 운주산 왕바위, 막히는 것 하나 없이 앞이 훤하게 트인 왕바위에 올라서면, 서쪽으로 기룡산, 보현산, 면봉산, 작은보현산 등 주위에 모든 산봉우리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북서쪽으로 불랫재와 한티재로 이어지는 낙동정맥길과 그 너머 산줄기들이 겹겹이 펼쳐지고, 북동쪽으로 멀리 기북면과 하늘을 떠받치고 있는 침곡산, 사관령, 성법령, 내연지맥과 비학산지맥 능선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살짝 당겨본 아늑한 기북면과 비학산 풍경, 겨울 잠든 환상의 낚시터 은천지는 물 속에 붕어들이 사늘한 옥빛을 토해낸다. 찬바람이 불어 싸늘하게 느껴지는 조망 시원한 왕바위에서 잠시 머물던 걸음은 올라온 능선 길을 따라 멋진 노송이 있는 봉우리에서 고구마와 찰떡 등 간식으로 늦은 점심을 때우면서 잠시 쉬어간다. 


아름다운 낙엽 능선길 따라 쇠물푸레나무 지팡이 두 개 들고 오르락 내리락 돌아오는 걸음은 벌목을 한 봉우리에서 바라본 보현산을 비롯한 산봉우리들 마다 검은 그림자가 짙어지고, 건너 대우산 봉우리에 마지막 저녁 햇살 다사롭다. 산 그림자 드리워지는 시간 낙엽 길 밟으며, 조용한 불랫재에 내려서고, 길가에 혼자서 기다리고 있는 자동차에 돌아오면서 산행 길은 종료된다.


양쪽 손에 갈고리 쇠물푸레나무 지팡이 들고, 약 8.6Km의 짧은 거리에 4시간 12분이나 소요된 어슬렁거리는 산행을 마치고 자동차에 돌아오니, 동지가 가까워 오는 초겨울 짧은 해는 어느덧 서산에 기울었다. 서둘러 집으로 돌아와 쇠물푸레 굽은 허리 가스레인지에 구워서 곧게 피우면서, 혼자 어울렁 더울렁 걸어본 운주산의 낙엽 산행 길 하나 갈무리해본다. 

(2017.12.02 호젓한오솔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