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궁화 꽃
대한민국 사람으로서 무궁화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것이다. 애국가의 후렴에도 나오고 국가 원수를 상징 하는 자리 어디에서나 나라를 지키는 군인과 나라의 치안을 담당하는 경찰관의 계급장에도 무궁화가 있다. 무궁화가 우리나라 꽃이란건 어린 애들도 다 안다. 그러나 우리나라 국화가 왜 무궁화 인지는 아무도 모르고 근거가 되는 관련 자료도 없다고 학자들은 이야기 한다.
이웃 일본 국화인 사쿠라(벗꽃)가 날이갈수록 우리의 삼천리 강산을 화려하게 뒤 덥는데 진작 우리나라 국화라고 하는 무궁화는 주위에서 쉽게 대할수 조차 없고 어쩌다가 만나는 것은 벌래를 먹어 찌들어진것들 뿐이다. 자꾸만 무궁화가 귀한(보기힘든) 꽃이 되어가는게 안타까운 현실이다. 애국가의 후렴에서 처럼.."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이 하루빨리 이루지는 그날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으로 산행길 여기 저기서 담아 온 우리나라꽃 무궁화 사진들을 정리하여 올려봅니다..
무궁화 [無窮花]
쌍떡잎식물 아욱목 아욱과의 낙엽관목. | ||||||||||||
|
근화(槿花)라고도 한다. 대한민국의 국화(國花)이다. 무궁화는 한자어이지만 중국 문헌에는 나타나지 않고, 다만 《산해경》에 한국에 훈화초(薰華草:무궁화)가 있다는 기록이 있다. 내한성(耐寒性)으로 높이 2∼4m이고 때로는 거의 교목이 되는 것도 있다. 전체에 털이 없고 많은 가지를 치며 회색을 띤다. 잎은 늦게 돋아나고 어긋나며 자루가 짧고 마름모꼴 또는 달걀모양으로 길이 4∼6cm, 너비 2.5∼5cm며 얕게 3개로 갈라지며 가장자리에 불규칙한 톱니가 있다. 표면에는 털이 없으나 잎 뒷면에는 털이 있다. 꽃은 반드시 새로 자란 잎겨드랑이에서 하나씩 피고 대체로 종(鍾) 모양이며 자루는 짧다.
꽃은 지름 7.5cm 정도이고 보통 홍자색 계통이나 흰색·연분홍색·분홍색·다홍색·보라색·자주색·등청색·벽돌색 등이 있다. 꽃의 밑동에는 진한 색의 무늬가 있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이 무늬에서 진한 빛깔의 맥(脈)이 밖을 향하여 방사상으로 뻗는다. 꽃은 홑꽃과 여러 형태의 겹꽃이 있다. 홑꽃의 꽃잎은 대체로 달걀을 거꾸로 세운 모양으로 5개인데 밑동에서는 서로 붙어 있다. 겹꽃은 수술과 암술이 꽃잎으로 변한 것으로 암술이 변한 정도에 따라 다양하다.
수술은 많은 단체수술이고 암술대는 수술통 중앙부를 뚫고 나오며 암술머리는 5개이다. 꽃받침조각은 달걀모양 바소꼴인데 성모(星毛)가 있고, 외부에는 꽃받침보다 짧은 줄 모양의 외악(外鮫)이 있다. 열매는 길쭉한 타원형으로 5실(室)이고 10월에 익으며 5개로 갈라진다. 종자는 편평하며 털이 있다. 꽃이 아름답고 꽃피는 기간이 7∼10월로 길어서 정원·학교·도로변·공원 등의 조경용과 분재용 및 생울타리로 널리 이용된다. 한국·싱가포르·홍콩·타이완 등지에서 심어 재배하고 있다.
수필 무궁화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감격을 무궁화에 비유하여 쓴 이양하의 수필. | |||||||||
|
현대수필의 개척자이자 영문학자인 이양하(李敭河)의 수필이다. 1948년 10월 《학풍》에 발표된 뒤 1964년 1월 출판된 이양하의 두 번째 수필집 《나무》에 실렸다. 무궁화가 가장 아름답고 무성해지는 8월, 새 나라의 기초가 서게 되는 것을 배경으로 나라의 무궁한 발전을 무궁화에 비유하여 예찬하는 내용의 수필이다.
무궁화는 어떤 꽃보다도 은근하고 겸손하다. 그리고 한국을 ‘은자(隱者)의 나라’라고 한다면, 무궁화는 요염한 색채나 향기도 없는 ‘은일(隱逸)의 꽃’이며 점잖고 겸허한 군자의 풍모를 갖추었으므로, 나라를 상징하는 국화(國花)로 삼기에 충분하다. 작가가 무궁화를 처음 본 것은 연희전문학교 교정에서였다. 얼핏 보기에 국화라고 하기에는 너무 평범하고 초라하여 실망스럽기도 하나, 무궁화가 지닌 수수함과 끈질긴 생명력은 우리 나라의 민족성과 일치한다는 점에서 국화로서의 자격이 충분하다.
김진섭(金晉燮)과 함께 한국 수필문학에서 쌍벽을 이루는 이양하는 찰스 램의 수필관에 기초해서 주관적이고 명상적인 수필을 주로 썼다. 이와 비슷한 작품으로 《신록예찬》 《나무》 《나무의 위의(威儀)》 등이 있다.
무궁화의 전설 (1)
고려 16대 예종왕 때 일어난 일입니다. 예종 임금은 참으로 사랑하는 신하가 셋 있었습니다. 세 신하를 똑같이 아끼어 벼슬도 똑같이 참판 벼슬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신하들은 그렇지가 못하였습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예종 임금에게 더 잘 보이려고 하였습니다. 더 잘 보이려고 하니, 서로 시기하고 헐뜯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세사람 가운데 한 사람 구 참판만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마음이 비단결 같은 구 참판은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할 때면,"쓸데없는 소리 마오. 그 친구를 욕하면 내 얼굴에 침뱉기요." 하고, 자리를 뜨곤 하였습니다. 이러는 사이에 정 참판과 박 참판은 둘이 만나면 구 참판 이야기로 하루 해를 보내는 것이었습니다. 정참판과 박참판은 구참판을 궁궐에서 쫓아내기로 서로 짠 것입니다. 없는 죄를 뒤집어씌웠습니다.
세상 물정을 잘 모르는 예종 임금은 그것을 사실로 믿었습니다. 정참판과 박참판의 꾐에 넘어간 것입니다. "네 마땅히 사형으로 다스릴 것이나, 경상도 땅으로 귀양을 보내노라. 종 하나를 붙여서....." 임금님은 말끝을 맺지 못하였습니다. 박참판과 정참판의 흉계인 줄을 뒤늦게 알았으나, 왕은 두 사람의 말을 듣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 전하!" 구참판은 엎드려 울었습니다. 한 번 떨어진 명령은 어쩔 수 없는 것. 그날로 구참판은 귀양지에 끌려갔습니다.
귀양지에 도착한 구참판은 개성쪽으로 무릎을 꿇고 앉아 임금님 생각만 하였습니다. '나는 아무 죄도 없는 몸이다. 죄인은 정참판과 박참판이다.' 혼자서 이렇게 생각하면서 구참판은 외롭게 살았습니다. 역적으로 몰렸으니 구참판의 집안도 전부 망해 버렸습니다. 부인은 종이 되어 끌려갔고, 아들 딸들은 어떻게 되었는지 소식조차 모릅니다. 그렇지만, 구참판은 임금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임금님에 대한 충성심은 날로 더해만 갔습니다. "전하, 만수무강하소서....."임금님을 향한 기도는 계속되었습니다.
"참판님, 무엇을 좀 잡수셔야죠? 이렇게 앉아서 기도만 한다고 누가 알아주기라도 한단 말입니까? 네!" 먹쇠놈이 울면서 간청했지만, 구참판은 눈하나 까딱하지 않았습니다."좀 드시와요? 이렇게 굶으시다가는 제명을 못사십니다. 제명을......" 벌써 며칠째 굶고 있는 구참판입니다. 차라리 굶어 죽고 싶은 구참판. 마침내 가랑비가 내리던 밤, 구참판은 숨을 거두었습니다. 종 먹쇠는 양지바른 곳에 구참판을 묻어주었습니다.
다음해 봄. 구참판의 묘 앞에는 꽃이 피었습니다. 그 꽃이 바로 우리 나라의 국화, 무궁화입니다. 임금님을 사랑하던 마음이 빨갛게 달아서, 무궁화꽃 속은 빨간빛이 되고, 구참판의 죄없음을 여러 사람에게 알리기 위해 꽃잎은 하얀빛, 보랏빛등으로 피어났습니다. 꽃말은 [일편단심]또는 [영원]입니다. 임금님을 사랑하던 그 염원이 무궁화로 피었으니 그 충성된 마음이야 변할 리가 있겠습니까!
무궁화의 전설 (2)
옛날, 아주 먼 옛날 이야기이다.
어느 고을에 매우 아름답고 마음씨 착한 미인이 살고 있었다. 이 처녀는 얼굴만 예쁜 것이 아니었다. 여자로서 시도 잘 짓고, 글씨도 잘 쓰고, 그림도 잘 그렸으며 노래도 잘 불렀다. 그리하여 많은 남자들이 그 처녀를 사모했다. 그러나 어쩐 일인지? 그 처녀는 인물이 잘 생기고,벼슬이 높은 총각도 마다 하고, 또 돈 많은 부잣집 아들도 마다 하고,몹시 가난하고 앞 못보는 장님에게로 시집을 가는 것이었다. 아름답고 착한 여인은 장님인 남편을 하늘처럼 모셨다. 집이 가난하므로 남의 집에 품팔이를 하고,남자들이 하는 일도 서슴없이 하면서 남편을 극진히 모셨다. 주위 사람들은 고생하는 여인을 보고 몹시 안타까워 하였다.
"쯧쯧쯧 불쌍도 해라. 저 예쁜 새댁이..." "글세 말이오. 어쩌자고 장님한테 시집을 가서 저 고생일까?" 여인을 보고 사람마다 동정하는 눈빛으로 말하는 것이었다. 장님남편을 극진히 모시는 착한 여인의 소문은 이동네에서 저 동네로 널리 널리 퍼져 나갔다. 그 소문은 마침내 고을을 다스리는 원님의 귀에까지 들어가게 되었다.
고을 원님은 장님의 아내인 여인을 불렀다. 도대체 얼마나 아름다운 여인이기에 세상 사람들이 그토록 칭찬을 하는가 하고 한 번 만나보고 싶었던 모양이다. 여인은 고을 원님의 부름을 받고 관가로 나아갔다. 아무도 원님의 명령을 어길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여인을 본 원님은 그만 넋을 잃은 사람이 되고 말았다. 너무나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에 반해 버렸던 것이다. 원님은 지금까지 이처럼 아름다운 여인을 본 적이 없었다.
"아, 하늘나라에서 내려 온 선녀처럼 아름다운 여인이구나!" 멍하니 여인을 바라보던 원님이 정신을 가다듬었다. 여인은 얼굴과 몸매만 아름다운 것이 아니었다. 가만가만 옮겨 놓는 걸음걸이 원님에게 공손히 절하는 모습, 옥을 굴리는 듯한 말소리등 행실도 너무나 바르고 착했다. 원님은 그만 욕심이 생겨서 남의 아내인 그 여인에게 자기의 아내가 되어 달라고 말했다. 하지만 여인은 "원님,아니 됩니다. 저에게는 앞을 못 보는 지아비가 있습니다. 하고 고개를 가로 저었다. "내 그대가 원하는 것이라면 뭐든지 청을 들어 줄 것이니 제발 내 아내가 되어 주길 바란다."
원님은 여러 가지 꾀임수를 썼지만. "제발 부탁입니다. 집으로 돌아가게 해주십시오" 하고 여인은 울면서 보내 달라고 애걸했다. 그러나 아무리 졸라도 원님은 들은 척도 않고 점점 화를 내는 것이었다."네가 정말 내 말을 듣지 않으면 죽여버리겠다." 하고 으름장을 놓았다. 원님은 보잘 것 없는 눈 먼 장님 남편을 못 잊어 그토록 집으로 돌아가려는 여인이 얄밉기도 하고 자기의 명령을 어기려는 것이 괘씸하기도 하였다. "원님,저는 죽어도 원님의 아내가 될 수 없습니다. 차라리 죽여 주십시오." 여인은 눈물을 흘리면서 원님에게 말했다.
"무엇이! 독한 것...."
화가 머리 끝까지 오른 고을원님은 마침내 그 여인을 죽이라고 부하들에게 명령했다. 원님의 명령을 받은 포졸들은 여인을 말꼬리에 매달아 질질 끌고가 죽이게 되었다. 여인은 말에 끌려 가면서 포졸들에게 마지막 유언으로 "저의 마지막 청을 들어주십시오. 제가 죽거든 꼭 우리 집 울타리 밑에 묻어 주세요. 부탁입니다." 하고 부탁했다. 포졸들은 사실 그 여인을 살펴주고 싶었지만 원님의 불같은 명령이니 하는 수 없이 여인을 죽이고 말았다. 그리고 여인의 유언대로 그 집 울타리 밑에 고이 묻어 주었다.
그 다음해, 억울하게 죽은 이 여인을 묻은 울타리 밑에서 한 그루의 꽃나무가 자라 올랐다. 이 나무는 금방 울타리를 둘러싸고 아름다운 꽃을 피웠다. 이것이 무궁화이다. 죽어서라도 눈 먼 남편을 보호하기 위해서이다. 세상 사람들은 모두 이 무궁화를 남편을 위하여 죽은 아름다운 여인의 넋이라고 생각한다. 무궁화는 이렇게 아름답고 지조가 높은 꽃이기 때문에 우리 조상들의 생각이 담긴 이야기로 전해지고 있다
무궁화의 풍속과 민속
혼례 때 입는 활옷[闊衣]에 무궁화를 수놓는 것은 무궁화의 다산성에 유감(類感)한 습속이다. 무궁화의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떨어지는 하루살올 세속의 행복과 부귀영화의 덧없음을 상징한다. 나무 전체로는 끊임없이 피고지는 무궁한 영화의 나무로서 나라의 꽃으로 삼은 한국인의 종교적인 심성이 깃들어져 있다.
대표품종인 백단심(白丹心)은 꽃이 백색이어서 무구청정(無垢淸淨)을 나타내고 진홍빛 화심(花心)은 겨레의 얼을 상징한다.
옛 당나라의 어느 여왕이 꿈에서 동지섣달에 꽃이 피라고 기원하여 다른 꽃은 모두 피었는데 무궁화만은 피지 않았다고 한다. 이는 한국민족이 당에 굴복하지 않았음을 상징한다.
무궁화
온대지방에서 7~10월의 약 100일 동안 줄기차게 피는 아름다운 꽃나무이다. 보통 키가 2~4m이지만 가로수로 심는 교목도 있다. 그루 전체에 털이 거의 없고 많은 가지를 치며 나무껍질은 회색이다. 잎은 마름모꼴의 계란 모양으로 어긋나며 얕게 3갈래로 갈라진다. 잎자루가 짧고 잎가장자리에는 불규칙한 작은 톱니가 있다. 꽃은 종 모양으로 새로 자라난 가지에 돋아난 잎겨드랑이에서 1송이씩 피며 꽃자루가 짧다. 꽃은 매일 이른 새벽에 피며 저녁이 되면 시들어 말라 떨어지는데, 3개월 동안 매일 새 꽃이 피어 계속 신선한 모습을 볼 수 있다.
꽃은 홑꽃과 여러 형태의 겹꽃이 있는데, 꽃잎이 5장으로 된 홑꽃은 도란형(到卵形)이고 밑부분이 서로 붙어 있으며, 지름이 보통 6~10㎝이다. 겹꽃은 일반적으로 홑꽃보다 작고 지름이 4~5㎝이다. 꽃잎의 기부에 있는 진한 보라색 또는 적색의 원형 무늬를 단심(丹心)이라고 하는데, 화맥(花脈)이 단심과 같은 빛을 띠고 짧게 또는 길게 방사하는 것들도 있다. 무궁화는 보통 홑꽃·반겹꽃·겹꽃으로 나눌 수 있는데 반겹꽃과 겹꽃은 일반 꽃들과 같이 수술이 꽃잎으로 변한 것으로, 수술이 일부만 변한 것은 반겹꽃, 거의 다 변한 것은 겹꽃이 된다.
꽃의 빛깔은 흰색·분홍색·연분홍색·보라색·자주색·청색 등이다. 수술은 많은 단체웅예(單體雄蘂)로 되어 있고, 암술대는 수술통의 중앙부를 뚫고 위로 솟아나와 있으며 그 정상부인 암술머리는 5갈래로 갈라져 있다. 꽃받침은 난상피침형(卵狀披針形)이고 그 밑에 꽃받침보다 짧은 선상(線狀)의 외악(外咢)이 있다. 열매는 긴 타원형의 5실로 되어 있는데 완전히 익으면 5조각으로 터져서 그 속에 들어 있던 씨들이 멀리 퍼진다. 씨는 10월에 익고 모양은 편평하며 털이 있다.
무궁화에 대한 프리콜라주
국화가 왜 무궁화인지를 알고 싶었다. 국책연구기관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속에도 그 연유는 서술되어 있지 않았다. 사쿠라(벚꽃)가 일제히 폈다 지는 것에 대한 대응논리로 줄기차게 피고 지는 무궁화의 개화 방식을 두고서 사람들은 그냥 민족 역사에 빗대는 것 같다. 그러나 전혀 근거가 없다. 역사적으로 생물학적으로 무궁화가 그런 연유로 국화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인류문화학자 오오누키 박사는 일본인의 美(미) 의식과 군국주의의 왜곡된 역사를 책 제목에 담았다. '뒤틀려버린 사꾸라'. 일본 사회에서 사쿠라의 등장은 헤이안(平安) 시대이다. 그 이전까지 고대 일본의 상류층 표상은 대륙 중국의 ‘매화’에 대한 찬미이다. 결국 매화로부터 사쿠라 옷을 갈아입게 되는 자신들의 실체(identity)에 눈을 뜬 것은 겨우 1천여 년 전의 일이다. 그리고 마침내 1920, 30년대에 이르러 사쿠라 군국주의는 최고조에 다다른다. “천황을 위해서 사쿠라 꽃처럼 아름답게 죽자”이다. 야스쿠니신사 입구에 줄지어 서있는 사쿠라가 바로 그 잔영이다. 미당이 읊은 가미가제 야스쿠니 부대의 마쓰이 하사관에 대한 찬가, 마쓰이 오장 송가(松井 伍長 頌歌)는 사쿠라 찬미의 결정판이다.
오래된 중국 역사서에서는 근족·槿花族(근화족)이 자주 등장한다. 무궁화와 친하게 지내는 우리의 모습에서 그들이 지어준 한민족의 별명이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의 삶터에는 자생하는 무궁화가 한 포기도 발견되지 않는다. 전부 일부러 식재한 개체이거나, 그로부터 유래하는 것들이다. 이 땅은 무궁화의 고향이 아니라는 뜻이다. 무궁화(Hibiscus syriacus)의 기원은 중동으로부터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꽃피었던 아열대 건조지역이다. 유대교 종파에서 부르는 찬송가 ‘샤론의 장미’는 바로 무궁화를 지칭한다. 놀라운 일이다. 중동이란 지리적 위치는 아프리카 동부에서 걸어 나온 인류의 발자취가 남겨져 있는 출구이기에 인류 이동과 무궁화는 분명 연결되어 있음을 시사하고 있는 대목이다.
무궁화는 한 편의 생명 탄생을 연출한다. 꽃봉오리가 뒤틀리며 개화하는 것이 세상 밖으로 비쭉이 내미는 영락없는 출산의 형국이다. 암수술대(남근)를 감싸고 있는 꽃잎(갈피)의 형상(좆갈피)은 여자를 의미하는 말의 근원으로 발전한다. ‘조개’의 어원은 조가비이고, 그 조가비의 뿌리가 좆갈피이다. 일본에서도 여성을 ‘가이’(ガイ, 貝), 조개에 빗댄다. 일본 사람들이 생명문화의 상징으로 삼는 동백나무의 일본명, 쯔바끼(ツバキ) 또한 좆갈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한 그루의 무궁화는 수백 포기의 꽃을 피운다. 꽃이란 자식을 만드는 생식행위, 그렇다고 드러내놓고 섹스를 하지 않는다. 낮에 피어 있다가 어둡기 전에 살포시 꽃망울을 닫고서 은밀히 한다. 다음날 아침에 다시 핀다. 아직 임신에 성공하지 못한 경우이다. 자식이 잉태되면 다음날 꽃망울을 닫고 떨어진다. 그러니까 무궁화는 우주적 생명 이야기를 담고 있다.
내 고향의 큰 어른 청파 선생, 그의 '무궁화' 수필 속에는 진실을 가리는 애국주의적인 지적 프리콜라주(자신 마음대로 만들어 내는 것)가 있다. 시인의 말처럼 “무궁화는 한 송이 한 송이로 아침에 피었다 저녁에 떨어지는 꽃”이 아니다. 더욱이 “아무데나 피는 꽃”도 아니다. “피투성이 싸움에 젖은 머리를 무궁화 사랑하는 마음으로 바로잡겠다.”는 구절은 가히 촌철살인이다. 이제 더 이상 “쓸쓸한 울타리 옆, 거친 들판, 외로운 길가, 아무데나 피어 쓸쓸하고, 거칠고, 외로움을 아늑하고 즐겁게 하는 꽃”, 그런 애잔스런 꽃으로 볼 일이 아니다.
1천 년밖에 되지 않은 야스쿠니 사쿠라에 대비되는 그런 꽃으로 무궁화를 구속시키는 것은 자학이오, 비굴함이다. 45억 년 전 생명의 터전, 지구가 마련되고, 6천500만 년 전 오대양 육대주가 모양을 갖추고, 바로 엊그제 500만 년 전 인류가 시작된 이래, 우리는 한 포기 무궁화도 자생하지 않는 땅에서 그 무궁화를 품에 안고 유라시안 대륙의 동단에 지금 머물고 있을 뿐이다. 그 동쪽, 동해에서 여명이 트는 새벽 햇살의 무궁화 꽃은 눈이 부시도록 깨끗하고 아름답다. 이것이 철학자 레비스트로스의‘야생의 사고’로 그릇된 환상을 타파해야 할 생명의 꽃, ‘무궁화’이다. <매일신문>
2008.07.23 호젓한오솔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