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공산 황사 속으로
솔길 남현태
아침에 일어나니 하늘이 노랗다. 오늘 한마음 산악회에서 팔공산 동봉을 산행하기로 되어 있는데 사방이 온통 황사로 뿌옇다. 이런 험상궂은 날씨에 산행하려니 영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 오늘은 컨디션도 말이 아니다. 그간 남들이 감기 걸리면 감기가 왜 걸리느냐고 핀잔을 하며 십수 년 동안 감기를 모르고 건강하게 살아왔건만, 근래 집안일 등으로 피로와 스트레스가 겹으로 쌓여서 그런지 며칠 전부터 몸이 감기를 못 이겨 골골대는 상황에서 황사 먼지 속의 산행이라 내키진 않지만 그래도 약속을 한 터라 산행 준비를 하고 포항 공설운동장 호도리탑 앞에 도착하니 약속 시간 20분 전이다.
차창 밖엔 온통 흙 먼지투성이다. 약속 시간이 조금 지나 회원들은 다 모이고 버스는 팔공산으로 향한다. 오늘은 황사 때문에 태양이 완전히 공산 명월이 되어 있다. 팔공산 수태 골 입구에 하차하여 먼저 앞에서 산으로 올랐다. 내 걸음대로 걸어서 보너스 산행으로 남들보다 빨리 팔공산 서봉에 올랐다가 약속된 점심 시간에 맞추어 동봉에서 합류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일행들을 뒤에 남기고 홀로 서둘러 산행을 시작했다.
수태 골 입구에 들어서니 맑은 시냇물 소리와 진달래가 먼저 반겨준다. 흐드러지게 핀 생강나무꽃을 카메라에 담으면서 황사 속에서도 산행의 기쁨을 누리며 올라가다 길옆에 암벽 등반장을 쳐다보니 아찔하다. 개울 물소리는 졸졸졸 청량하게 들리고 팔공의 바위와 소나무의 조화가 잘 어우러져 풍경을 연출하고 있지만, 그러나 오늘은 황사 때문에 영 기분을 잡친 듯하다.
동봉 가는 길로 올라가면서 좌측으로 서봉으로 가는 갈림길을 찾으며 올라가는데 갈림길이 보이지 않아 내려오는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위에는 갈림길이 없단다. 올라갈까 내려갈까 난감해하던 차에 길을 잘 아는 사람을 만나 한참 되돌아와 이정표 뒤로 난 길을 따라 서봉으로 향한다. 먼지 속에서 알바까지 하고 나니 갑자기 걸음이 바빠진다.
거친 숨소리를 내면서 서봉으로 오르는 길에 비로봉 통신 시설이 보인다. 마눌에게서 전화가 왔다. 시내가 온통 황사 먼지투성인데 산에 오를 때 마스크 해야 된다고 걱정하는 전화다. 여기는 산이라서 황사가 별로 없고 아주 맑아 괜찮다고 대답한다. 팔공산 서봉에 올라서 바라본 비로봉과 동봉은 황사 먼지 속에 흐릿하다. 파계봉 쪽 팔공 능선도 온통 황사로 보이질 않는다. 능선도 계곡도 온통 풍경이 안 보이니 아쉽기만 하다. 서봉 근처에 삼성봉 이라는 정상석이 별도로 있는데 무슨 의미인지는 모르겠다.
간밤에 땅이 얼었는지 길바닥이 녹으니 미끄럽다. 동봉으로 능선을 따라가다가 올라오는 일행 5명을 만나고 나머지는 동봉으로 바로 갔다고 한다. 동봉으로 이어지는 아름다운 바위 능선에서 오랜만에 왼팔을 뻗어 자작으로 사진 한 장 찍어본다. 나무 사이로 비로봉은 가까워지고 비로봉은 군사 통신시설 관계로 출입통제 지역이다.
동봉으로 가는 길옆으로 '마애약사여래좌상'이 있는 곳으로 잠시 올라가니 좌불상 앞에서 어떤 여인이 자리를 깔고 이제 막 일천 배 시작 하기에 3번째 절을 할 때 몰래 찰깍 사진을 찍었는데 셔터 소리가 왠지 미안한 생각이 든다. 좌불상 좌측 암벽의 모습이 절경이고 좌불상에서 바라본 동봉도 황사 속에 가물거린다.
마지막 동봉 올라가는 길옆에는 '석조약사여래입상' 이 있다. 불상을 돌아보며 입상의 전경 및 여러 각도에서 자세하게 사진으로 담아둔다. 팔공산 동봉의 정상석은 붐비는 산꾼들의 촬영 때문에 몸살을 앓고 있다. 동봉에서 바라본 비로봉의 통신 시설의 모습이 황사 속 풍경 사진의 별미다.
동봉에서 일행들과 식사를 하고 암릉 산행을 즐기기 위해서 혼자 조금 먼저 출발한다. 아기자기 한 암릉을 즐기기 위해 우회 등산로를 버리고 암릉길을 택했다. 이상하게 생긴 바위들이 곳곳에서 걸음을 멈추게 한다. 시원한 바위 절경 황사가 원망스럽다. 올망졸망 바위 봉우리들 주워다 모은 돌무더기 같다.
스릴만점 팔공능선 암릉의 아름다움을 더듬으며 앞으로 나아갈수록 더욱 절경이다. 중간에 두 번은 오도 가도 못하고 한참을 쩔쩔매기도 하고 바위 길에 취했어 약속된 하산길은 벌써 지나 버렸다. 무슨 색다른 이름이 있을 만도 한 아름다운 바위들이 즐비하다. 병풍바위에 뿌리 박고 달라붙어 연명하는 노송은 솔잎이 노릇노릇하니 날씨가 가물어 몹시 목이 타는가 보다.
지나온 팔공 능선은 황사 속에서도 장관을 연출한다. 하산길에 돌아본 바위능선 아름답다. 암벽에 매미 같이 달라붙은 작은 바위의 정체는 무엇일까 참 신기하게 붙어 있다. 수줍은 듯 나무 뒤에 숨어 있는 부처 형상의 바위도 있고, 노송은 노송인데 분재같이 아름다운 소나무의 온몸에 난 상처는 산전수전 다 겪은 인고의 세월을 이야기하는듯하다. 암릉과 노송의 조화는 멋진 풍경을 연출하고 좁은 바위틈 길가에 뿌리내려 오가는 사람들 모두가 안아주어 사랑을 듬뿍 받은 노송은 껍질이 반들반들 윤이 난다.
솔 숲 속의 바위고개 언덕길을 넘으니 연분홍 진달래 오랜만에 반긴다. 팔공산 정상부엔 아직 봄이 이른지 꽃이 없다. 동화사를 빠져나와 다른 길로 내려온 일행을 만나고 동화사 앞 도로변엔 노란 개나리가 한창이다. 황사 속에서 봄 놀이 나온 남녀노소 모두가 즐겁기만 하다.
오늘은 단체 산행이었으나 시종 홀로 한 상행으로 주어진 시간에 맞추어 보너스 산행을 추가할 수 있는 코스였어 오랜만에 산행다운 즐 산행을 해본 기분이다. 암벽 등반을 하는 꾼들의 기분을 조금은 알 것 같다. 황사 먼지 속에서 산행한 것이 건강에 이로울지 해로울지는 몰라도 집에 있어도 숨은 쉬어야 하니까 단순한 생각으로 오늘 산행은 조금 무모하기는 했지만 나에게 그간 여러 가지 쌓인 스트레스를 해소하는데 좋은 약이 된 즐거운 산행이었다.
(2006.04.08 호젓한오솔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