괘령산 마북골
솔길 남현태
태풍 "에위니아"가 북상 중이라 이번 주말에는 계속 비가 온다고 하여, 오늘은 산행을 못 할 줄 알고 아예 포기하고 있었으나 아침에 일찍 일어나 보니 안개가 자욱한 것이 금방은 비가 올 것 같지 않아 서둘러 산행 준비를 하고 나서 보지만 주위에 워낙 안개가 짙어서 오늘은 조망이 영 없을 것 같다. 하여 근처의 가까운 괘령산을 산행지로 정하고 출발한다.
괘령산은 진달래가 한창이던 4월에 산행하고 오늘 다시 찾는다. 조망은 별로 없는 산이지만 호젓한 오솔길이 최고 수준이며, 마북골과 어우러져 이것저것 볼 것이 많으며 골짜기 물이 시원하여 여름철엔 피서객이 붐비는 곳이다. 마북지 안에 들어와 괘령산 쪽을 쳐다보니 안개가 자욱한 것이 괘령산은 보이지 않는다.
마북지 준설로 마을이 수몰되면서 함께 물에 잠길 위기에서 위쪽으로 옮겨심은 수령 700여 년의 마북리의 느티나무도 이제 다시 회춘하여 생기를 더해가고 느티나무 주위에는 화단을 가꾸어 놓았다. 마북리를 지나가다가 길가에 우뚝 서 있는 해바라기 꽃을 보고 차를 멈추고 다가가서 열심히 사진을 찍어본다. 정말 해바라기를 오랜만에 본다.
마북리를 지나니 아뿔싸 괘령산 입구까지 들어가는 농로를 시멘트 포장공사를 한다고 도로가 막혀 있다. 할 수 없이 차를 길옆에 세워두고 공사 중인 도로 우측 개울을 따라 걸어서 올라간다. 개울 물살이 제법 센 곳이 있어 카메라를 겨누어 가며 포장공사 지역을 지나 다시 길로 올라와 비포장 농로를 따라 올라가는 구름 뒤에 괘령산이 숨어 있다. 골짜기 입구가 막혔으니 오늘은 괘령산이 거의 오솔길의 독무대가 될 것 같은 예감이다. 진짜로 호젓하겠다. 멀리 구름 뒤에 숨어 있는 괘령산을 찾아서 발길을 재촉한다.
잔자갈이 적당히 깔린 괘령산의 오솔길 바스락바스락 촉감도 좋다. 골짜기 입구에서부터 고요한 산천을 울리는 요란한 매미 소리를 들으며 오솔길의 괘령산 산행은 시작된다. 계속되는 오솔길을 걸으며 날씨가 더워 이마에 땀이 난다. 상의 긴 팔을 입고 온 것을 후회하면서, 오늘은 햇볕도 없고 괘령산에는 아무도 없는 것 같아 모자를 벗고 처음으로 남들처럼 손수건을 머리에 질끈 동여매고 걸어본다. 훨씬 가볍고 시원하다. 오솔길의 꼬락서니가 어떻게 변했을까. 아마도 산적같이 되어 있겠지 카메라를 뽑아 자작으로 한 장 찍어 본다. 외로운 산적 괘령산 산적들은 이제 다 굶어 죽었다. 이어지는 오솔길은 매우 아름답고 너무 호젓하다. 아니 심심하다.
괘령산의 오솔길은 전국의 수준급이며 비가 와도 노면이 좋다. 괘령으로 이어지는 오솔길은 수천 년을 상옥 우리 고향의 조상들이 짚신 발로 다져온 한 많은 길이다. 그래서 더욱 정감이 간다. 계속 오솔길만의 연속이다. 다른 것은 별로 볼 것이 없어 심심하던 차에 저기 꽃이 보인다. 그러나 처음 만난 산나리 꽃은 한물갔다. 할머니 꽃 청춘을 돌려다오.
청춘이 머물다 간 자리 지금은 아쉬움이 머무는 곳 나리꽃 옆에 싱싱한 야생화는 아직 청춘이 머무는 곳 그냥 싱그럽고 아름다운데 이름을 모르겠다. 엉겅퀴 꽃은 부끄러워 고개를 떨군다. 또 모르는 꽃 무식이 들통난다. 차라리 찍지나 말 걸 한물간 아주머니 나리꽃에도 아직은 요염한 아름다움이 남아있다. 화장발인가? 우리네 인생도 나리꽃처럼 봄부터 각고 끝에 겨우 꽃을 피웠건만 청춘의 아름다움은 잠시일 뿐.
괘령산 정상은 안개만 자욱한데 작은 정상석만 외로이 지키고 있다. 아름다운 야생화들이 피어 있는 괘령산 정상에는 꿀을 빨러 온 벌과 나비들이 반겨주니 결코 오솔길은 외롭지 않다. 이제 막 피어나는 싱그러운 꽃에는 나비들은 한가롭게 꿀을 빨고 있다. 카메라를 가져다 대면서 "이놈들아 곧 태풍이 온다. 빨리빨리 숨어라."
안개 자욱하여 무시무시 한 오솔길을 따라 내연산 수목원이 있는 쑥밭 쪽으로 돌아서 마북골로 하산한다. 정상 주위에는 안개 자욱한 길의 연속이다. 안갯속으로 바스락 낙엽이 쌓인 길을 혼자 걸어간다. 너는 무슨 버섯인고.? 영 대답이 없다. 잔솔이 가득 자라는 오솔길이 정겹다. 전망 바위에서 내려다본 마북골 골짜기는 안개가 자욱하고 골짜기를 빠져나오는 길은 칡넝쿨과 딸기 넝쿨로 우거져 길이 거의 없다. 오늘 긴소매 입고 오기를 참 잘했구나. 올라갈 때는 후회를 했는데. 조삼모사다.
골짜기 수풀을 헤치고 나오는데, 산모기가 왜 그리도 많은지 새까맣게 떼거리로 달려든다. 하루살이까지 눈을 뜰 수가 없어 사진을 찍을 수 없을 정도로 달려든다. 사진 찍으려고 부동자세로 잠깐 멈추면 한꺼번에 달려든다. 카메라 렌즈에 자꾸 들어가 카메라를 휘휘 공중에 휘두르다가 순간 속사를 하여야 한다. 이놈들이 산골에서 오랜만에 고기 맛을 보는 모양이다.
골짜기 물길 따라서 내려오다. 봄에 복사 꽃 사진을 찍었던 산 복숭아나무에서는 쥐방울 만한 돌 복숭아들이 조롱조롱 열려 있고 아직 털이 포송포송 하다. 폭포 옆 바위에 붙어서 타고 내려오며 폭포 사진을 찍어본다. 저기 아래 알탕 자리 참 멋지다. 근데 좀 위험하다. 물줄기가 힘차다. 2단 폭포로 이루어져 더욱 아름답다.
옆에 계곡에는 더 큰 폭포가 있다. 작년에 군에 간 큰아들하고 둘이 알탕 하던 곳 오늘은 물살이 더욱 세차다. 오늘도 배낭을 내려놓고 물속으로 들어가 알탕을 하고 나니 시원하다. 시원한 물속에 들어가 담금질을 하고 나니 더위가 싹 가시고 모기도 덜 달려든다. 개울 가에 앉아서 늦은 시간에 주린 배를 채운다.
알탕 기념으로 왼손 뻗어 자작으로 사진 한 장 찍고 돌아오는 계곡 길가엔 낙엽이 쌓여 있다. 개울 길도 호젓하다. 여름 딸기도 영글어 가고 물길이 참으로 질서 정연하다. 뒤돌아본 골짜기에 매미는 쉴 새 없이 온 종일 노래를 불러대고, 달아나지 않는 한 놈은 얌전하게 잘도 폼 잡아가며 사진에 찍혀준다.
붉은 인동초가 피어 있는데 외래종인가 본데, 그러나 속은 흰 것 같다. 길가에 해당화는 피고 지는데 미리 핀 것은 벌써 빨간 열매를 맺고 있다. 해당화 꽃잎 아래 아기 청개구리가 낮잠을 자다가 카메라 셔터 소리에 놀라 귀찮다는 듯 고개만 살짝 돌려 보고는 그냥 숙이고 본체만체 잠을 잔다. 백 도라지 꽃도 연보라색 도라지 꽃도 활짝 피어서 여름을 알린다.
오늘은 비가 예상보다 늦게 북상하는 관계로 가벼운 산행을 즐길 수가 있었다. 봄에 진달래 만발할 때 화사하게 찾아왔던 괘령산을 오늘은 하산길 골짜기에서 우거진 숲길을 모기 떼와 싸우면서 좀 우중중하고 축축한 산행을 해야만 했다. 그러나 마지막에 시원한 개울물 속으로 들어가 알탕 한번 하고 나온 것이 오늘의 최대 이벤트였다. 아무쪼록 이것저것 열심히 들여다보며 호젓한 시간을 보낸 것만으로도 오늘은 의미 있는 즐산 이었으리라. (2006.07.08 호젓한오솔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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