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산은 포항시와 경주시의 경계에 위치해 있다.형산강 어구의 남쪽에 북형산성 (北兄山城) 이 있고, 김부대왕(金傅大王), 즉 경순왕을 모신 용왕사가 있는 산을 북형산(고려때부터는 ‘ 형산 ’ 이라 부름)이라 하고, 그 북쪽 산을 제산(第山)이라고 한다. 형산강은 이 두산 사이를 지나 포항으로 흘러 온다.
그런데 옛날, 형제산이 단맥되기 전에는 남천, 북천, 기계천의 물이 안강일대에 모여 호수를 형성하였고, 범람하면 경주까지 그 피해를 입었다고 한다. 그래서 안강의 치수문제는 신라의 숙원사업이었다.
경순왕 김부가 왕위에 올랐을 때는 후삼국이 일어나 서로 각축을 벌였을 뿐만 아니라, 나라 안에서는 사방에서 도적떼가 일어나 치안이 극도로 문란해지는 등 신라는 장래를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답답해진 경순왕은 사관에게 신라의 장래에 관한 점을 보도록 하였다. 신라의 산천과 지세를 살펴 본 사관은 장차 신라의 왕위를 찬탈할 역적은 북쪽의궁예도 아니고, 남쪽의 후백제왕도 아니고 동쪽 임정현(臨汀縣)에서 일어날 것이라고 하였다.또, 이를 막기 위해서 형산포의 산을 끊어 안강호수의 물을 어용사(漁龍沙), 즉 영일만으로 흘러 보내면 임정현땅의 지정왕기 (地情王氣) 가 제압되어 역적이 출현하지 못할 것이라고 하였다.
이에 경순왕은 태자 김충(金忠)과 의논하여 백일간의 기도를 올리기로 하였다. 경순왕은 하늘에 올라가 목침 (木枕) 으로 삼층집을 짓고 옥황상제와 천지신명과 신라왕실의 조종(祖宗)들에게 종묘사직의 안녕을 기원하였다. 땅에서는 태자 김충이 형제산맥의 단절을 천지신명께 기도하였다. 태자는 기도 끝에 큰 뱀이 되었다.그러나 사람들이 그를 용으로 불러 줘야만 용이 될 수가 있었다.
길가에 누워 지나가는 사람이 용으로 불러주기를 기다렸다.그러나 아무도 용이라 불러주는 사람은 없고,큰 뱀을 보고는 두려워서 달아나기만 하였다. 왕과 약속한 백일이 불과 하루밖에 남지 않은 날이었다. 크게 낙심을 하고 있는데 마침 한 노인이 손자를 업고 지나가다 큰 뱀을 보고 깜짝 놀라면서 “ 저런 큰 뱀도 이 세상에 있는가?” 하고 말했다. 그때 업혀 있던 손자가 “ 할머니! 저것은 뱀이 아니고 용이에요.” 라고 했다.
뱀을 용으로 불러 준 아이에게 안강호수에 물이 빠진 후 생긴 땅과 그 일대의 논밭을 주고 들의 이름을 아이의 이름을 따라 유금들이라고 불렀다. 현재 강동면의 유금이라는 지명은 여기서 비롯되었다.
형산 산정의 왕룡사라는 절에는 김부 대왕과 김충 태자의 목상(木像)을 세워 제향을 하고 그 유덕을 추모하고 있다.
(자료 : 영일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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