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장산 추억으로 가는 낙엽 오솔길
솔길 남현태
지칠 줄 모르는 올 겨울 한파는 입춘이 지나고, 민족의 대 명절인 구정을 며칠 앞둔 이번 주말에도 연일 맹 추위를 떨치고 있는 가운데, 지난 9일부터 열린 평창 동계 올림픽에 북한에서 김정은의 여동생인 김여정이 북측 대표로 방남하고, 북한 예술단 공연에 금방 통일이라도 될 것처럼 전국이 술렁이고 있다.
북한의 핵과 장거리 미사일 개발에 대한 미국을 비롯한 국제 사회의 제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던 북한의 김정은이 돌파구를 찾기 위해 내민 손을 덥석 잡은 남한의 좌파 정부와 평화를 위장한 북한 올림픽 대표단의 평화쇼에 세계의 관심이 솔려있으니, 김정은의 시간 벌기 작전에 말려 올림픽이 끝나면 다시 현실로 돌아 갈 북핵 위협을 잠시 망각하고 있는 듯하다.
이번 주에는 원래 팀산행으로 진행 중인 호남정맥 산행을 가기로 계획이 되어 있었는데, 호남 지방에 눈이 많이 내리고, 대원들 간에 소통의 문제로 인하여 산행이 취소가 된다. 하여 마눌과 같이 근교 산행이나 다녀오려고 했는데, 마눌이 일요일에 일이 있다고 하며 혼자 다녀 오라고 하니, 이래저래 왕따를 당한 기분이 든다.
일요일 새벽에 5시경 잠결에 또 다시 아파트가 흔들거리는 지진에 놀라서 잠을 깨어 휴대폰을 확인해보니 긴급 문자가 없다가 나중에 날라온 문자에 포항 북구 5Km 지역에 진도 4.6 지진이 발생했다고 한다. 피난을 갈까 말까 하다가 매섭게 추운 날씨에 밖으로 나갔다가는 얼어 죽을 것 같아 그대로 침대에 들어가 누웠지만 불안하여 잠이 오지 않고, 겁이 나서 벌벌 떨고 있는 마눌을 보니, 오늘 새벽에 호남정맥 산행을 가지 않은 것이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새벽에 지진으로 놀란 탓일까 느지막이 일어나 아침을 먹고 나니, 추운 날씨에 밖으로 나가기가 싫어져 집에서 꾸물거리며 시간을 흘려 보낸다. 어디로 갈까 망설이다가 영천시 천장산의 낙엽 길을 떠올리고, 정오가 가까워지는 시간에 간단하게 배낭을 챙겨 집을 나선다. 포항 시내를 지나 기계면 이리재를 넘어가는 길에 낙엽을 몰고 다니는 거친 바람이 으시시한 기분이 들게 한다.
오후 12시 50분경에 영천시 임고면 수성리 마을 뒤에 있는 수령 500년을 자랑하는 은행나무 아래 도착하여 차에서 내리니, 찬 바람이 거칠게 불어대는 날씨가 으실으실 한기를 느끼게 한다. 서둘러 산행 준비를 하고 약 500년 수령의 산림유전자 보호수 은행나무와 향나무 사진을 찍어보고 천장산 자락을 향하여 움츠린 걸음을 옮겨간다.
영천시 임고면 수성리 마을을 지나서 백련암으로 가는 길가의 우람한 은행나무는 오백 년이 된 '산림유전자 보호수'라고 한다. 조선 숙종 때 성리학자 이언적 선생이 장산 서원 건립 기념식수 목으로서 역사적 사물가치가 있으며 매년 칠월 칠석날 옥산 문중 후손들이 제사를 지내고 있다고 한다.
수성리 은행나무를 뒤로하고 천장산으로 향하는 길 은행나무와 향나무 옆에 있는 파란 지붕의 외딴집 농가는 몇 해 전에 왔을 때는 빈집으로 마당에 잡초가 우거져 있더니, 도회지로 떠나갔던 주인이 돌아와 정비를 하고 별장처럼 찾아오는지 지금은 깔끔하게 단장되어 있다.
산행 들머리에서 바라 본 은행나무와 향나무가 있는 농가는 겨울 볕에 한가로운데, 수성리 마을 건너 우람하게 앉아 있는 운주산을 바라보고, 백련암으로 들어가는 길 좌측 언덕에 리본 몇 개 달린 산행 들머리로 올라선다. 잠시 오르막 길 올라서면, 너무 빼곡하게 자란 소나무 숲에 생존 경쟁에서 밀린 잎 떨어진 소나무들이 사이사이 애처롭게 알몸으로 말라 죽어가는 능선을 지나고, 음지 비탈을 따라 가파르게 밀고 오르는 바람 끝이 차갑다.
아침을 먹고 집에서 놀다가 늦게 나온 터라 점심 시간이 이미 지나서 인지 출발할 때부터 배속이 허전하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불어오는 바람이 끝이 거세고 차갑게 느껴져 배낭에 들어 있는 것을 꺼내 먹을 엄두를 내지 못하고 정상까지 그냥 참고 올라가기로 한다.
그렇게 추운 날씨는 아닌 것 같은데, 바람이 하도 거세게 불어 체감온도가 떨어져서 인지 기모 장갑을 낀 손끝이 저려온다. 배낭 속에 있는 스키용 방한 장갑을 꺼낼까 하다가 카메라 사용이 불편할 것 같아 시린 손가락을 부지런히 움직이며 그냥 올라가도 배낭 속에 두툼한 장갑이 들어있다는 것 만으로도 안심이 된다.
바람 거센 음지 능선 중턱에 조상들의 애환이 가득 서려 있는 옛날 숯가마 터에는 낙엽만 고여 있고, 거친 바위들이 박혀있는 가파른 비탈길 올라 영천 쪽으로 조망이 훤하게 트인 무덤 앞 전망바위에 올라선다. 잠시 후에 하산을 할 낙엽 능선 너머로 살짝 당겨본 당곡저수지 풍경 옛날 밤낚시 즐기던 아련한 추억들이 떠오른다.
이어지는 바람 찬 참나무 능선은 바람에 낙엽이 모두 날아가버려 삭막하게 느껴지고, 바위 사이에 낙엽 다독이는 오뚝한 봉우리 지나 바람소리 거친 앙상한 겨울 나무 사이로 바위들이 널브러져 있는 능선 길 여름철 시원한 그늘에서 밥을 먹으며 쉬어가던 식당 바위도 오늘은 초라하게 보인다.
거친 능선 길 올라 천장산 정상부에 올라서면, 바람은 높은 나무 꼭대기를 스치며 창공으로 지나가고 잠잠한 능선에 낙엽이 소복이 쌓여 있는 아름다운 오솔길은 천장산 정상으로 이어진다. 그렇게 불어대던 바람조차 잠잠한 천장산은 수목 우거진 산정에 작은 정상석 하나 외롭게 지키고 있다.
천장산(694m)의 외로운 정상석, 근처 낙동정맥 길이 흐르는 도덕산에서, 서쪽으로 돌아 앉아 있는 천장산은 찾는 산꾼이 별로 없으니 호젓한 산행을 즐기기에는 안성맞춤이다. 낙목한천에 외로운 정상석 홀로 남겨두고 이어지는 낙엽 능선 길 머리 위로 지나 가는 바람소리는 소란하게 들리지만, 산정에는 바람이 없으니 포근하게 느껴진다.
커다란 바위들이 숨어있는 양지쪽에서 허출한 배를 달래기 위해 낙엽 위에 앉아 배낭을 펼친 후 가지고 온 과일과 빵 등으로 배를 채우는데, 천장산 정상의 낙엽은 포근하여 올라 올 때 장갑을 끼고도 그렇게 손이 시럽고 저려오더니, 지금은 장갑을 벗고 간식을 먹어도 전혀 손이 시럽지 않게 느껴진다.
낙엽 위에서 점심을 먹고 일어선 걸음은 포근한 헬기장을 지나고, 이어지는 포근한 낙엽 능선 길과 낙엽이 모두 날아가버린 바람 거친 능선 길이 번갈아 가며 이어지고, 우측으로 하산하는 능선 삼거리에서 박박봉까지 다녀오기로 하고 좌측 능선을 따라 잠시 걸음을 이어간다.
박박봉(592.5m)을 지나 잠시 낙엽 능선을 따라 걸음을 이어가다가 황금빛 낙엽 길을 따라 오던 길로 잠시 돌아 나와서 삼거리봉에 도착하여, 가파른 능선을 따라 천장사(백련암) 쪽으로 하산을 한다. 능선에서 우측으로 바라본 걸어온 천장산 봉우리에는 거친 찬바람이 넘나드는데, 고슴도치 등허리처럼 참나무들이 빼곡하게 들어선 능선 길은 바람이 심한 곳에는 낙엽이 날아가버린 아쉬움만 남아 있고, 다사로운 겨울 햇살은 지나 가는 찬 바람을 어루만진다.
빼곡한 참나무 아래 낙엽 덮인 호젓한 능선 길 지나면, 설렁한 떡갈나무 숲을 스치는 바람소리 거칠고, 아련한 추억들이 굽이굽이 돌고 있는 정겨운 낙엽 능선 길 돌아보면 누군가 따라 올 것만 같은 환상에 빠져들고, 천장산 머리 위엔 힘에 부친 하얀 조각 구름들이 쉬어 넘는다.
파란 창공을 휘젓는 앙상한 떡갈나무 가지들이 바삐 지나가는 바람 소리 가르는 길 발아래 쌓인 낙엽은 바스락 바스락 숨어든 산꾼의 정체를 알리니, 낮잠 자던 고라니 잠결에 울면서 달아난다. 건너다 본 천장산 풀 한 포기 꽃 한 송이 없이 물기라고는 모두 꽁꽁 얼어버린 황량한 겨울 산행 길, 하얀 눈꽃 대신 이어지는 황금 빛 낙엽 능선은 앙상한 가지 사이로 수성리 마을 건너 운주산 모습이 점점 가까워진다.
빼곡한 참나무들 사이에 차곡차곡 내려 앉은 그냥 걸어가기 아까운 황금빛 낙엽 인생 길 미련 남아 돌아보면, 지나온 내 삶의 흔적들은 사라지고 낙엽 위에 아쉬운 추억들만 차곡차곡 쌓여간다. 올 겨울에는 아직 많은 눈이 내리지 않아 포실포실한 황금빛 낙엽 능선을 걷다 보면, 누군가 일부러 돌을 깔아놓은 것 같은 부드러운 바위 능선을 지나고, 다시 이어지는 평온한 참나무 능선 길과 바위들이 흩어져 있는 거친 험로를 지나는 인생길처럼 운주산이 바라보이는 갈림 봉우리에서 우측으로 급하게 떨어진다.
낙엽 덮인 비탈길을 좌측으로 돌아 미끄럽게 내려선 걸음은 대나무가 자라고 있는 수성리 마을 뒤쪽으로 내려서고, 누런 빛을 띤 왕대나무 사이로 지나오는 길 올려다 본 대나무 끝 하늘엔 노는 구름 정겹다. 건너 은행나무 아래 주인을 기다리고 있는 내 애마가 보여 살짝 당겨본 모습 정겹다.
묵은 밭뙈기를 지나 내려선 개울가에는 하얀 얼음이 꽁꽁 얼어 있고, 얼음 위를 살살 건너 다시 묵밭을 지나오면서 바라본 늙은 은행나무의 모습이 당당하게만 보인다. 파란 창공에 활갯짓하면서 오백 살이 다되어 가는 노령에 가을이면 은행이 주렁주렁 오지게도 열려 노익장을 과시하는 유전자 보호수 은행나무 아래로 돌아오면서 오늘 산행 길은 종료된다.
늦은 시간인 12시 50분경에 산행을 시작하여, 바람 부는 천장산 음지 능선을 올라 낙엽 쌓인 호젓한 오솔길 따라 바스락 바스락 걸어본 약 3시간 정도 소요된 짧은 산행을 마치고, 오후 3시 54분경에 은행나무 아래서 기다리고 있는 자동차에 도착한다. 까만 등산 바지가 회색 빛으로 변해버린 낙엽 먼지를 대충 털어내고, 이른 시간인 오후 5시경에 포항에 도착하면서 천장산 낙엽 산행 길 하나 갈무리해본다.
오늘도 저녁 뉴스에는 온통 평창 올림픽 이야기들인데, 북한 공연단의 서울 공연과 김정은의 친서를 가지고 왔다는 김정은의 여동생 김여정 이야기뿐이다. 김정은의 친서를 받아 들고 이번 남북 만남의 불씨를 키워 횃불을 만들자고 하는 촛불 집회로 당선되어 불꽃놀이에 재미를 붙인 듯한 대통령이나, 북한 삼지현관연학단 현송월 단장의 마지막 피날레 독창에 남한 통일부 장관이 3차례나 앙코르를 외치며 북한 김여정의 비위를 맞추기에 급급한 열광 속에서 모두가 금방이라도 통일이 될 것처럼 들떠 있는 경박한 행동들이 왠지 위태롭고 안쓰럽게만 보이는 것이 오로지 나만의 기우였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2018.02.18 호젓한오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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