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비슬산 진달래꽃 산행
솔길 남현태
다가오는 6.13 지방 선거와, 북한에 질질 끌려 다니며 잘 해야 본전이 될 것 같은 남북 정상 회담에 이은 북미 정상 회담으로 오리무중인 한반도의 정세가 뒤숭숭하니,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3대에 걸쳐 거짓말과 꼼수로 일관해온 북한의 속샘을 나무라듯 갈피를 잡지 못하는 올해의 봄 날씨가 뒤죽박죽으로 변덕이 심하기만 하다.
지난 3월 말에 이미 라일락이 피어나는 등 봄 꽃과 여름 꽃들이 질서 없이 서로 경쟁하듯 마구잡이로 피어 혼란스럽게 하다가 4월에 봄 눈을 동반한 영하의 꽃샘추위에 혼줄이 나더니, 4월 21일 토요일에는 포항의 낮 기온이 영상 33도까지 올라가는 등 이상 고온 현상으로 전국이 무더위에 헐떡이게 한다.
변덕꾸러기 4월도 어느덧 넷째 주를 맞이하는 이번 주말에는 대구 비슬산 진달래 축제가 토요일부터 열린다고 하여, 6년 전인 2012년 4월 29일에 마눌하고 다녀온 곳이지만, 일요일이 결혼기념일 이라고 하여 여행삼아 한번 더 다녀오기로 한다. 선물을 싸라고 며칠 전부터 휴대폰으로 연락을 해오는 사람들로 인하여 잊고 있었던 결혼기념일까지 빠트리지 않고 알려주니, 개인 정보가 유출된 것이 찜찜하기는 하여도 세상이 참 편리해졌다는 생각이 든다.
6년 전에 산행기를 드려다 보고 그때처럼 자동차와 사람이 몰려와 붐비기 전에 여유로운 산행을 즐기기 위해 새벽 3시 30분에 일어나 아침을 먹고 산행 준비를 하여, 새벽 4시 30분경에 서둘러 집을 나선다. 새벽에 가는 도중에 기름을 넣기도 그렇고 하여, 기름이 많이 들어 있는 마눌의 차를 몰고 고속도로를 달려 날이 훤하게 밝은 6시 20분경에 유가사 주차장에 도착하니, 어느새 주차장에 자동차들이 들어차고 있어 조금만 더 늦었더라면 일찍 출발한 보람도 없이 주차할 곳이 없어 낭패를 당할 뻔했다는 안도의 한숨을 쉬게 한다.
유가사 주차장에 주차하고, 지난 번과 반대 방향으로 대견사 쪽으로 먼저 올라갔다가 좌회전으로 비슬산 정상을 돌아 수도암 쪽으로 내려오기로 한다. 서늘한 아침 기온이 상쾌하게 느껴지는 유가사 쪽으로 걸음을 옮기니, 유가사 천방루 앞에도 자동차가 몇 대 주차되어 있다. 조용한 유가사 대웅전 앞을 지나 산행 들머리 쪽으로 가는 길가에 여기저기 돌탑이 많이 쌓여 있고 자연석의 한 면을 다듬어 시비를 세워 놓았는데, 묵연스님의 "다 바람 같은거야" 시비가 눈에 들어온다.
"다 바람 같은 거야
뭘 그렇게 고민하는 거니
만남의 기쁨이건 이별의 슬픔이건
다 한 순간이야
사랑이 아무리 깊어도 산들 바람이고
오해가 아무리 커도 비바람이야
외로움이 아무리 지독해도 실바람이고
절망이 아무리 처절해도 눈보라일 뿐이야
폭풍이 아무리 사나워도
지난 뒤엔 고요하듯
아무리 지극한 사연도 지난 뒤엔
쓸쓸한 바람만 맴돌지
다 바람이야
이 세상에 온 것도 바람처럼 온 거고
이 육신을 버리는 것도
바람처럼 사라지는 거야
가을바람 불어
곱게 물든 잎들을 떨어뜨리듯
덧없는 바람 불어
모든 사연을 공허하게 하지
어차피 바람일 뿐일걸
굳이 무얼 아파하며 번민하니
결국 잡히지 않는 게 삶인 걸
애써 무얼 집착하니
다 바람인 거야
그러나 바람 자체는 늘 신선하지
상큼하고 새큼한 새벽바람 맞으며
바람처럼 가벼운 걸음으로
바람처럼 살다 가는 게 좋아"
돌탑과 시비가 늘어서 있는 길을 따라 산행 들머리에 도착하니, 우측에 김소월의 '진달래꽃' 시비가 수문장처럼 우람하게 길목을 지키고 있다. 입구에 세워진 비슬산 생태탐방로 안내판을 지나 참꽃 군락지 대견사 쪽으로 향하던 길에 푸르러 오르는 골짜기를 따라 너덜겅 위를 지나는 나무 다리를 건너고, 삼거리 갈림길 이정표에서 같이 가던 사람들이 비슬산으로 바로 올라가는 것이 쉽다고 하여 좌측으로 가까운 비슬산 정상으로 먼저 올라가서 우회전으로 돌아오기로 한다.
지난 달 삼월에 내린 폭설로 인하여, 노송들이 통째로 허리가 부러져 초토화된 골짜기를 지나 산중턱을 지나니, 머리 위에는 산봉우리는 안개가 자욱하게 끼어 있고, 따라 오는 마눌의 발걸음은 더디기만 하다. 머리 위에 병풍듬 암봉을 덮었던 안개가 갑자기 걷히기 시작하고, 건너 산봉우리를 가리어 답답하게 느껴지던 하얀 치마자락을 걷어 올리듯 찬 바람에 스르르 말려 올라가는 안개 속으로 신비로운 진풍경을 연출한다.
고도를 높일 수록 오늘의 주인공 진달래가 멋진 암봉과 함께 모습을 드러내고, 나무계단을 오르는 마눌의 발걸음이 더욱 무거워 보인다. 변덕이 심한 날씨는 빗방울을 떨어트리며 다시 몰려들기 시작하는 안개가 사방을 뒤덮기 시작하고, 해발 1,011m 고도를 알리는 이정표가 세워진 거대한 바위 봉우리 아래 도착한다.
거대한 절벽 바위 아래를 둘러보고 우측으로 돌아서 머리에 진달래를 꽃은 덩그런 바위 봉우리 위로 올라가니, 난장이 노송 한 그루가 바위 끝에 앉아 안개 자욱한 허공을 내려다보고 있다. 모든 것을 삼켜버린 하얀 안개 구름 사이로 검은 그림자들만 유령처럼 어른거리는 바위봉우리 연분홍 이슬이 눈물처럼 뚝뚝 떨어지는 애틋한 진달래 사연은 여심을 녹인다.
외로운 노송 홀로 고독에 잠들기 시작하는 바위봉우리 뒤로하고 꼬투리 오진 진달래 초상화 담아가며, 안개바람 몰아치는 진달래꽃 길을 따라 비슬산의 최고봉인 천왕봉으로 향한다. 하얀 안개바람 몰아쳐 사방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비슬산의 최고봉인 천왕봉 정상석 앞에 올라선다.
비슬산 정상에서 기념사진 찍어보고, 둘러 참꽃 군락지(대견사) 쪽으로 발걸음을 돌린다. 안개 자욱한 억새길 지나 화사한 진달래 어우러진 곳에서 이른 시간이지만 점심을 먹고 가기로 하고 바람의지 되는 곳을 찾아 도시락을 펼친다. 바위와 진달래 어우러진 능선 길 따라 참꽃군락지로 향하는 소나무 숲 길을 지나 참꽃 군락지에 도착하니, 자욱한 안개가 조망이 가려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한물이 살짝 지난 진달래 무리 사진에 담으며, 이어지는 화사한 능선 길은 진달래 평원이 건너다 보이는 전망바위에 도착하니, 안개 속에 숨어버린 조화봉은 하얀 치마자락 들었다 놓았다 하면서, 먼 길 달려와 카메라를 들고 기다리는 산꾼들의 애간장을 태운다.
끝없이 몰려드는 하얀 안개를 원망하며서 이슬 맺혀 촉촉한 진달래 모습 살며시 카메라 겨누어 셔터를 눌러보고, 오늘은 안개로 조망이 없어 보이는 조화봉은 버리고 진달래 군락지 전망대로 향한다. 자욱한 안개가 흘러가는 속에서 자태를 뽐내고 있는 아름다운 진달래 아래서 기념사진 찍어주고 찍혀보고, 탐스러운 진달래 꽃봉우리들을 향해 연신 셔터를 눌러본다.
하얀 안개와 한물 넘긴 진달래 어우러진 사이를 가로 지르는 비단 길 따라 이어지는 발걸음 겉으로 드러난 꽃보다 보이지 않은 안개 속으로 신비로움이 흐르는 천상 화원은 이른 시간이라 사람이 별로 붐비지 않으니 여유롭기만 하다. 이슬 촉촉한 진달래 무리 속을 걸어서 대견봉 쪽으로 향하는 폭닥한 멍석이 깔린 오르막 길을 지나 안개 속에 진달래들이 서성이는 능선에 올라서고 대견사 삼거리 이정표 앞에서 오늘은 바로 유가사 쪽으로 하산하기로 한다.
능선을 덮은 진달래 화원에는 바위 사이에 피어난 진달래가 안개와 어우러져 한폭의 산수화를 그리고, 하얀 진달래를 심어놓은 곳에서 멈추었던 걸음은 나무 데크길 따라 오르락 내리락 이어진다. 가끔은 걸음 멈추고 촉촉하게 젖은 꼬투리 오진 진달래 초상화 사진 찍어가며, 천상화원 계단길 오르내리던 걸음은 전망대 삼거리에서 유가사 쪽으로 하산을 서두른다.
좌측 산아래 비슬산 자연 휴양림에서 열리는 비슬산 진달래 축제장에서 들려오는 설익은 가수들의 어설픈 노래소리 들으면서 산님들이 몰려 올라오는 비탈길과 계단길 따라 고도를 낮춘 걸음은 연초록 속에서 정겨운 물소리 흐르는 골짜기로 내려선다. 푸른 소나무 숲 사이를 비집으며, 연둣빛 초록이 꿈틀거리며 기어오르는 비슬산 자락에는 무르익은 봄의 함성이 울려
퍼지고, 맑은 물소리 풍요롭게 흘러내리는 실신골 계곡길 따라 돌탑과 시 비들이 세워져 있는 유가사 뒷뜰에 담쟁이 넝쿨이 칭칭 감은 "서산대사의 선시" 시비 앞에서 걸음 멈춘다.
"눈 덮인 광야를 걸어 갈 때는
이리저리 함부로 걷지 말라
오늘 내가 남긴 발자국은
반드시 뒷사람의 길이 되리니."
산님들이 줄지어 올라오는 낮 12시경에 유가사 주차장에 도착하니, 어느덧 대부분의 자동차들이 돌아가고 주차장이 할랑하기만 하다. 아침 6시 30분에 산행을 시작하여, 이미 한물을 넘기기는 하여도 마지막 진달래가 하얀 안개 속에서 마지막 자태를 뽐내며 관광객들을 불러모으고 있는 꽃 길을 따라 걸은 약 5시간 40분간 산행을 마치고, 정오를 살짝 넘긴 12시 10분경에 이미 먼저 온 자동차들이 빠져나가 할랑해진 유가사 주차장에 돌아 오면서 산행 길은 종료된다.
서둘러 배낭을 챙겨 오는 도중에 휴게소에 들려 커피 한 잔 마시고, 오후 2시가 조금 지난 이른 시간에 포항에 도착한다. 낮잠 한숨 자고 일어나 어제 꺾어온 두릅 나물을 삶아 소주 한잔 반주 곁들여 저녁을 먹으면서, 결혼 34주년 기념일 날 마눌과 같이 다녀온 대구 비슬산 진달래 산행길을 갈무리해본다.
(2018.04.22 호젓한오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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